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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May 19. 2021

태국이라 경험하는 특이한 일상들

흔한 듯, 흔하지않은 나라

태국은 매일 코로나 확진자가 이천 명을 넘기고 있어요. 한때 코로나 방역 모범국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명함 내밀기 조금 부끄러운 처지가 됐네요. 방콕은 식당, 카페에서 어제부터 주문이 가능해졌어요. 코로나가 진정세를 보이는 건 아니지만, 소상공인들은 진짜 오늘내일하는 처지거든요. 하루 벌어먹고사는 사람들 숨통은 터 줘야죠. 카페 갔더니 테이블마다 의자 하나씩만 달랑 있더군요. 둘이 함께 앉지도 말래요. 이렇게라도 장사해야지 어쩌겠어요? 매일 방에 갇혀 사는 신세라, 부분 영업 개시가 어찌나 반갑던지요. 삼십 분이라도 앉아 있으니 날아갈 것만 같더라고요. 너무 좋아서 음료를 한 잔 더 시켰어요. 조금이라도 오래 앉아 있으려고요. 절반 마시니까 배부르더라고요. 남기고 나왔어요. 마트 안에 입점한 제과점 겸 카페였는데, 나온 김에 마트 옆 인공 호수를 한 바퀴 돌았죠. 어라? 제 음료가 그대로 테이블 위에 있는 거예요. 한 바퀴를 더 돌고, 제 테이블을 또 확인했어요. 여전히 제 음료가 있는 거예요. 이해가 가시나요? 손님이 남긴 음료를 삼십 분 이상 방치하는 게요? 손님도 없었어요. 직원도 여럿이고요. 게을러서라고요? 아니요. 빈 컵, 빈 그릇 재빨리 치워요. 한 번도 너저분한 꼴을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다시 올 수도 있다. 혹시 모르니까 놔두자. 그렇게 삼십 분 이상을 놔둔 거예요. 저도 참 웃기죠. 그게 또 엄청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들어갔다니까요. 마시기 싫어서 놔두고 온 건데, 자리에 앉아서 끝까지 마셨어요. 제과점 직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신경도 안 써요. 그저 평화롭더라고요. 기분이 은근히 좋아져요. 하지 않아도 되는 배려고, 사실은 쓸모없는 일이 될 확률이 높은 배려죠. 그런데 그걸 굳이 해요. 혹시 모르니까, 혹시 나중에라도 와서, 자신의 음료를 찾을 수도 있으니까. 무신경한 듯 배려하는 모습이 태국 사람들에게는 있어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마트를 몇 년을 다녔는데, 뜬금 마트 계산대 직원이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이러는 거예요. 저를 일본 사람인 줄 안 거죠. 그 오랜 시간 눈 한 번 마주친 적 없고, 인사 한 번 나눈 적 없어요. 태국 사람들이 막 들이대듯 상냥하지는 않아요. 평화주의 초식 동물 같은 느낌이에요. 물으면 차분하게 답을 해주지만, 뭐가 필요하냐? 뭐가 궁금하냐? 먼저 다가오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무표정하다고 해서 불친절하다고 오해할 필요도 없고요. 저 역시 무신경하게 사는 편이에요. 게다가 안경까지 안 써서, 웬만한 사람들 얼굴도 잘 구별 못하고요. 그런데 마트 직원이 작심한 듯 그렇게 인사를 해요. 몇 년 전 일이기는 한데 뭉클하더라고요. 저 말을 나에게 하기 위해서 연습이라도 했던 걸까?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다시 삼킨 날이 여러 날이었던 걸까? 저처럼 관심종자는 이런 순간이 참 감사해요.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사는 형편이지만, 아무도 몰라 주는 존재감 제로의 삶은 또 쓸쓸하거든요. 


태국은 도로에서 간이 세차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다른 나라에도 있죠. 차 창 대충 닦아주고 동전 몇 푼 받는 거요. 꽃을 파는 사람도 있어요. 쌍둥이 꼬마가 있는데, 거의 매일 나와서 꽃을 팔았어요. 태국은 어린아이들도 생계를 위해 나서는 경우가 많아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한참 놀고 공부해야 할 나이에 식당에서 주문을 받거나, 테이블을 닦아요. 그렇다고 아이를 학대하는 가정이어서도 아니에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가정의 생계에 동참해요. 어쨌든 그 쌍둥이 꼬마들도 꽃을 매일 파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위험하기도 하고, 차에서 나오는 매연도 얼마나 해로워요.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숙제나 해야 할 나이에 그렇게 꽃을 팔더라고요. 비가 오는 날에도요. 한참 잊고 살았는데, 최근에 또 봤어요. 이제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더군요. 덩치가 얼마나 커졌나 몰라요.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형제가 꽃을 팔아요. 내가 태국에 너무 오래 살았나 싶기도 하고, 건강하게 잘 커줘서 고맙기도 하고요. 


한국에서였다면 당장 신고를 해야 맞죠. 일종의 아동 학대니까요. 다른 나라에 산다는 이유로, 그냥 바라보기만 해야 하나? 마음이 무거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죄책감만 느끼고 말아요. 태국 사람들도 사리분별이라는 걸 하고, 그들이 받아들이는 기준은 또 따로 있을 테니까요. 오래 머물렀지만, 완전한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늘 신비롭고, 늘 당혹스러워요. 그 덕에 시간이 흐름을, 내가 어떤 특정한 공간에 있음을 덜 무디게 감지하며 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새들이 새벽 다섯 시 반쯤에 노래를 시작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잠에서 깨고요. 당연한 건가요? 저는 그걸 최근에야 깨달았어요. 내가 의식해야 깨어나는 사물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당연한 하루에서, 의식하는 하루로 바꿔 보자고요. 지루한 일상이, 갑자기 살아나서 다가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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