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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01. 2021

70년대 베이비부머가 갈등의 주범이 아닐까?

세대 갈등,  정치 대립을 보는 약간은  다른 관점

-40대 좌파들은 답이 없어요.

-세뇌된 것도 모르고, 자기네가 옳은 줄만 알아요.

-4,50대가 죽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겠죠?


이십 대를 대표하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목소리를 자주 목격해요. 저는 그들이 비난하는 세대예요. 대가리가 깨진, 똥오줌 구별 못하는 좌파가 바로 저예요. 좌파? 내가? 그 누구보다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은 세대인데도, 좌파란 소리를 듣는 게 흥미롭더군요. 국민학교 내내 반공 포스터를 그리면서, 어린이날 만화영화 '똘이장군'을 보면서 얼마나 북한을 혐오하고, 두려워했나요? 괴물들만 사는 나라인 줄 알았어요. 죄 없는 북한 사람은 아오지 탄광에서, 채찍 맞으며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게 북한의 전형적인 이미지였어요. 그나마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북쪽에 가족도 있고, 북한이 고향인 사람이 많아서 북한이 남이 아니란 생각은 젊은 세대보다야 강하겠죠. 어떤 점이 좌파일까? 복지 정책이 좋으면 나쁠 거야 없지만, 설마 공산주의를 이상향으로 뽑는 그 좌파를 의미하는 건 아니겠죠? 아, 소련이 최고였어. 김일성이 통치하는 북한이 진퉁인데. 이런 좌파요? 그런 좌파는 극극소수의 운동권이고요.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이 무너질 때 그 누구보다 환호하고, 안도했던 세대라는 건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혹시, 쪽수가 너무 많은 게 문제는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요. 70년대는 거의 매년 백만 명에 육박하는 신생아들이 태어나요. 지금의 4,50대가 많아도, 너무 많아요. 나이를 먹었으면 물러나는 게 맞는데, 여전히 현역이에요. 그러니 '미스터 트로트'가 엄청난 시청률로 1위를 달리고(이건 우리보다 윗세대가 더 열광하는 것 같지만), 임영웅이 CF를 독식하며, 아이돌 스타를 산뜻하게 눌러 버려요. 젊은 층의 문화가 대세가 되지를 못해요. 아무리 멜론 차트 1위를 해도, 지금 4,50대들에게는 듣보잡 노래예요. 이십 대가 혈기 왕성한 에너지를 표출하는데도, 티도 안 나요. 지금의 40대가 보수였다면, 그들이 바라는 우파의 나라였다면 불만 없었을까요? 그럴 리가요. 그들이 좌파라서, 우파라서 성에 안 차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뜻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않아서 화가 나는 거죠.


지금의 4,50대가 많아도 너무 많아요. 그들이 이십 대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까요? 서로가 뜻이 맞는 거야, 당연히 함께 가겠죠. 문제는 뜻이 다를 때, 대립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20대는 너무 화가 나요. 4,50대들은 이십 대가 보기엔 경제적으로 훨씬 안정되어 있어요. 그러면 조금은 내려놓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죠. 이십 대의 다급함에 귀 기울이는 모습도 보여줘야죠. 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요. 집이라도 있다 이건가요? 부동산이 폭등하면, 화도 좀 같이 내줘야죠. 어째 이십 대만 분노하는 것 같다고요? 4,50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웃고들 앉아 있다고요? 방 한 칸이 없는 20대는 피눈물을 흘리는데요?

똑같은 노동을 해도, 내 집 장만은 더욱더 어려운 시대예요. 그게 억울해요. 누구는 운이 좋은 때에 태어나서, 자신들보다 훨씬 빨리 집을 갖고, 탱자탱자 노후 준비를 해요. 어려우면 똑같이 어려워야죠. 혜택을 받으려면, 똑같이 받고요. 젊은 게 죄는 아니잖아요?


이런 답답함을 바라보는 4,50대도 참 난처해요. 집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절대 숫자로는 20대 버금가게 많을 텐데요. 물론 20대보다 노동을 더 오래 했으니, 모아 놓은 돈으로 집을 장만할 확률이야 더 높겠죠. 대신 남은 수명도 짧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은 더욱더 짧아요. 그렇게 땡잡은 세대였나? 대학생이 되는 게 하늘의 별따기였는데요. 늘 경쟁의 숲에서, 숨 한 번 쉽게 쉬지 못하면서 달려왔는데요. 여전히 마트에서 과자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사는데 말이죠.


우리도 윗세대를 답답해하면서 이십 대를 보냈어요. 그들만 사라지면, 세상은 올바르게 교정될 거라 확신했죠. 솔직히 이전의 사회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요. 하지만 이전 세대의 불합리함, 독재정권의 공포정치를 경험하지 못한 지금의 청춘은, 4,50대가 가장 안 좋은 예로 보이는 거죠. 그 전 시대의 부당함을 전혀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의 자유가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닌데 말이죠.


지금의 이십 대가 가진 좌절감을 4,50대는 더 열심히 들어줘야 해요. 쪽수가 어마어마하다는 이유로, 쪽수가 적은 세대의 좌절감을 이해하지 못해요. 으쌰으쌰 힘을 합치면 해낼 수 있어. 그게 얼마나 큰 혜택인데요. 우린 그런 연대감을 누렸어요.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제거된 세대는, 좌절감이 얼마나 클까요? 목소리를 키울 수밖에 없어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요. 그 쓸쓸한 소외감을 경청해야 할 의무가 4,50대에게는 있는 거죠. 결국 또 4,50대가 7,80대가 될 거고, 지금의 청춘은 중년이 되겠죠. 지금의 이십 대도 똑같은 원망을 들을 거예요. 그건 피할 수가 없어요. 지금 초등학생들이 이십 대가 되면, 그들의 증오가 어디로 향할까요? 지금의 이십 대가 공격의 대상이 되겠죠. 꼴통, 사회적 기득권, 말이 안 통하는 저지능의 세대. 그런 피로한 공격에 착잡한 순간이 와요. 생각해 보니, 이건 피할 수 없는 거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열심히 살아도, 인간은 결국 자기가 우선이고, 다음 세대를 위해 양보를 기본값으로 살지 않아요. 자기부터 살고 봐야 하니까요. 그런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는, 획기적인 발상과 정책을 기대합니다. 미래의 대안은 한국에서 나오는 게 어울려요. 그만큼 유능한 나라이기도 하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갈등이 결국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이었으면 좋겠어요. 증오로 평생을 살고 싶지 않아요. 생은 짧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더 짧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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