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자유는 불처럼 뜨겁지 않고, 어름처럼 차갑다
창밖으로 점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는 새가 된다. Brobro 호스텔의 아침. 공원에서 평행봉으로 딥스 운동을 백 개 한다. 열 개씩 열 번. 아랫가슴 운동이다. 예쁜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화를 위해서. 나이를 먹으면 등이 굽고, 내장은 갈비뼈에 눌려 찌그러진다(고 한다). 딥스를 하면 꼼짝 않던 위장이 꼬르륵 댄다. 신기하다. 위장도 기를 좀 폈으니, 파브리카로 간다. 하루도 안 빠지고 간다. 숙소를 옮긴 주제에 옛 숙소로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다. 택시까지 타고서. 19라리(8천 원) 조식 뷔페 노예가 됐다. 아침에 눈 번쩍 떠진다. 굿모닝! 파브리카. 파브리카의 빵이, 파브리카의 케이크가 부엌에서 정신없이 구워지고 있다. 오해 없기를.... 공장 따위를 개조한 파브리카에 애정 없다. 망한 부잣집에서 업어온 가구와 단순하기 그지없는 가구들로 잘난 척이 하늘을 찌른다. 스트리트 파이터, 패크맨. 80년대 오락기계까지 모셔 뒀다. 허를 찔리기는 했지만, 뭐. 나는 정 뗐다. 덕지덕지 벽화 중에 대단한 그림도 눈에 띄지만, 알 바 아니다.
일하러 가는 거다. 글을 써야겠고, 밥도 먹어야 하니까. 맛들린 조지아 체리는 1kg에 8.5라리. 허접한 채식 식당에서 주스, 밥, 수프 먹었더니 34라리(약 만 5천 원). 파브리카의 19라리는 사랑이다. 베풂이다. 5성급 호텔에서나 나오는 생야채 주스, 삶은 병아리 콩 스프레드 후무스, 페타 치즈와 딸기, 오렌지 샐러드(어떻게 이런 걸 같이 넣을 생각을 했지?), 프랑스인들도 입 다물게 하는 바게트, 그럭저럭 호두 파이. 좀 먹어본 나 같은 사람이나 경의를 표하는 조식이 파브리카에 있다. 심지어 오늘은 또 다른 숙소로 옮기는 날이다. 택시를 타고 아침 일곱 시에 도착, 세 시간을 먹었다. 총 세 접시를 천천히. 아홉 시쯤 되면 빈자리가 거의 없다. 아예 없었다면 눈치 보는 내가 그렇게 못 버틴다. 듬성듬성, 하지만 대체로 찬다. 내가 앉은 테이블만 아무도 안 앉는다. 인종으로 따지면 백인 95%. 황인 5%. 내가 단독으로 5%다.
내게 얼마나 말 걸고 싶은지 않다. 내 앞에서 먹고 싶지만, 엄두가 안 니지? 오늘따라 하나같이 잘 생기고, 예쁜 친구들이다. 그래서 내가 자랑스럽다. 세계에서 가장 눈이 작은 민족이 한국인이다. 한국 사람 중에 나보다 눈 작은 사람 거의 못 봤다. 행운인 줄 알아라, 이것들아! 김태희, 조인성처럼 생겨서 좋냐? 흔하면 가치는 떨어지는 거야. 눈인가? 흔적인가? 바다로 가는 길이 막혀 눈이 퇴화한 아마존 분홍돌고래가 나다. 그래, 내 눈이 미래의 눈이야. 안구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오지. 텔레파시로 대화하고, 초음파로 윙크하는 시대. 쓸모없는 눈구녕에 뭘 그렇게 푸르고 영롱한 수정을 집어넣었니. 안 무거워?
택시를 타고 파브리카로 갔다가, 다시 택시를 타고 브로브로 호스텔로 온다. 좀 서둘러 짐을 싸야 한다. 조지아의 카카오 택시라 할 수 있는 Bolt를 이용한다. 웬만한 곳은 4라리(1,700원). 역 주변, 변화가 주변에선 Bolt를 모르는 나이 든 택시기사들이 죽치고 있다. 스마트폰을 모르는 손님들이 그들의 먹잇감이다. 10라리(4,300원)를 내야 4라리 거리를 갈 수 있다. 그들은 빙하기 직전 공룡이다.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사라질 때 사라지더라도 먹어야 한다. 그 큰 덩치를 굴리려면 많이 먹어야지. 불행한 예감으로 늘 화가 나 있다. 아닌 줄 알아도, 붙잡고 있을 건 이것뿐. 아닌 것 같은 동아줄 하나가 전부. 사라질 걸 안다. 오늘 사라지지 않았으니, 오늘의 발버둥을 친다. 서서히, 재미없고, 서서히, 목이 조여진다. Bolt 기사는 활기가 넘친다. 끝없이 콜이 온다. 부자가 될 수 있겠어. 이 희망은 10라리 택시기사가 아니라, 4라리 택시기사에게 있다. 손님에게 별 다섯 개 평점을 받기 위해 짐을 들어주고, 꺼내 준다. 트빌리시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은 Bolt 택시 기사다.
일부러 숙소를 자주 옮기는 중이다. 보통의 한 달 살기는 방 하나를 구해 한 달이다. 여러 곳에서 묵으면 여러 개의 한 달이 된다. 시침 떼고 새로워질 수 있다. 짐을 싸고, 옮기는 거 무지무지 귀찮지만, 새로 태어나는 값이다. 싸다.
어젯밤. 브로브로 호스텔 입구에서 한 남자가 서 있고, 한 남자는 앉아있었다. 앉아있는 남자가 서 있는 남자의 허벅지에 한쪽 볼을 문대면서 쓰다듬는다. 둘 다 숙소에 묵는 이십 대였다. 한 남자는 러시아, 한 남자는 조지아 사람이다. 게이 커플. 조지아는 동성애에 관대한가 봐. 둘은 터키, 요르단 친구들과 매일 밤 열두 시에 저녁을 해 먹는다. 그들은 이성애자들이다. 그들 앞에서도 키스한다. 거침이 없다. 조지아 청년은 무전여행으로 이란을 다녀왔다. 이란은 없는 마약이 없는 천국이라고 했다. 3년 간 떠돌았다. 이란에서 과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겼을까? 겁대가리를 상실한 미친놈. 원리주의자들이 세운 이슬람 국가 IS에서 동성애자를 공개 처형하는 장면을 뉴스로 본 적 있다. 목에 밧줄을 매고 높은 빌딩에서 밀쳐진다. 숨어서 몰래 사랑을 나누다 들킨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들처럼 당당했을 수도 있겠다. 내 사랑을 왜 숨겨? 밀쳐지기 전에 스스로 뛰어내린 건 아닐까? 미친놈은 밤 열 두시 요리가 끝나면 똑소리 나게 정리하고, 설거지를 한다. 마약에 찌든 동성애자. 우리는 어떤 모습을 상상할까? 수염에 가려진 그의 얼굴은, 굉장히 아름답다.
용기를 내야 하는 용기와, 그럴 수밖에 없는 용기. 후자 쪽은 훨씬 자연스럽고, 조용하다. 어차피 갈 길을 하나. 물러섬은 없다. 원래 나는 새로 옮긴 숙소와 우연히 발견한 놀라운 카페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스물두 살의 아이가 눈에 밟혔다. 강렬한 아이였다. 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