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sammo, 트빌리시의 사랑스런 카페
이 따위니까 공산주의가 무너진 거야.
기가 막히는구먼. 있기만 하다고 다 육교야? 무단횡단을 조장하는 거리잖아. 육교로 건너서 다시 여기까지 되돌아오려면 십 분은 족히 걸리겠어. 죽어도 무단횡단이지. 참, 우스워. 그깟 십 분이잖아. 십 분 알차게 아껴서 페이스북 보고, 게임하잖아. 지금은 왜 이리 치열하게 쓰고 싶을까? 고속도로를 끼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절대로 이곳에 안 묵었다. 경기도 광주 집이 고속도로 옆이다. 고속도로가 가까우면, 차도가 집을 먹어버린다. 길 건너기는 지랄 맞고, 차들은 악령이 잡아당기듯 질주한다. 차만 다니는 사막이 된다. 건너기로 한다. 로드킬을 각오하고 늙은 개처럼 엉금엉금, 으악, 차가 S자로 커브를 틀며 나를 비킨다. 아슬아슬, 어찌어찌 건넌다. 10분을 아꼈다. 육교로 건넜어야지. 살았지만 후회되고, 무사하지만 화가 난다. 사람 꽤나 죽어나갔겠어. 그래도 눈 하나 깜짝 안 했을 테지. 참다, 참다가 국민들이 들고 일어선 거지.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된 건 육교가 멀어서야. 육교 하나만 세워줬어도, 공산주의는 살아남았을 거야.
응?
사람들이 땅 밑에서 하나씩 나오고 있다. 지하 통로가 있다. 내게만 안 보였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눈에 너무 안 띄긴 하지만, 있다. 혹시 지하 통로가 있을까 꽤나 두리번거렸다. 없을 것 같았다.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영향을 미치면, 안 보인다. 있을 것 같아야, 눈에 띈다. 희망이다. 가능성이 보여야 찾아낸다. 공산주의자들은 지하에 땅은 정말 잘 파는구먼. 그렇게 어둡고, 으슥한 곳으로 사람들을 내몰았어야 했어? 땅을 파지 말고, 육교를 차라리 더 만들라고. 존중받으면 존중해주는 거야. 존중받지 못하니까 레닌 동상을 끌어내린 거야. 소련이 망한 거라고.
소련 분위기 물씬 길을 걷는다. 우리나라에선 망해 나간 프랑스 마트 까르푸가 나온다. 생각보다 작잖아. 마트 구경을 기대했다. 밀가루와 설탕을 모종삽으로 퍼담아 파는 게 놀랍기는 했다. KFC에서 4.5라리(2천 원) 치킨 세트를 먹어볼까?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서 봤다. 매장에서 4.5라리 메뉴가 안 보인다. 그러면 그렇지. 있겠지만, 숨겨 놨겠지. 미쿡놈들, 너네들은 그래서 안돼. 남의 나라까지 와서, 사기나 쳐? 낚시나 해? 너네도 소련 꼴 안 나려면 잘해라.
어디를 갈까?
구글맵 카페들을 뒤적인다.
saamo 카페.
구글맵 평점 4.7.
딱딱한 나무 의자에 나무 테이블이 몇 개 있고, 그 뒤로 산이 펼쳐진 사진이 함께 보인다. 사진발일 확률이 높지만 4.7점이다. 5점 만점에 4.7점이다. 342명이 준 점수다. 100명만 넘어가도 꽤나 믿을만한 점수가 된다. 지하철로 두 개 역이다. 앙코르와트보다는 씨엠립의 떠들썩한 거리가 좋다. 이구아수 폭포의 아르헨티나보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아르헨티나가 좋다. 그깟 카페를 찾는 게 내 여행이다. 절박하지 않지만, 콧노래가 나온다. saamo 카페가 있는 아블라바리(Avlabari) 역은 꽤나 떠들썩하다. 식당과 와인 상점, 과일 가게들이 오밀조밀하다. 찌들지 않고, 화려하지 않다.
살고 싶다.
살고 싶은 동네를 드디어 발견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을까? 잠시 흔들렸지만 참겠다. 약간 덥다. 끓는 더위까지는 아니다. 루프탑에는 잠시만 앉아 있겠다. 스마트폰이 생기고, 구글맵을 쓰면서 헤맨 적이 거의 없다. 망해서 없어진 적은 제법 된다. Saamo 카페는 망하지 않고, 3층 건물로 우뚝 서 있다. 1층엔 손님이 두 테이블. 2층은 텅텅. 좋은 징조는 아니다. 드디어 옥상. 한 테이블엔 러시아 중년 여성 두 명, 한 테이블엔 조지아 여성(으로 추정되는) 한 명. 나머지 테이블은 텅텅. 나는 잠깐 주춤. 내가 뭘 본 거지? 내가 본 것과, 내가 반응해야 할 반응이 서로를 찾는다. 잠시 찾는 과정, 잠시 주춤. 낮고 평평한 산이 주변을 완벽히 감싸고 있다. 완벽한 자연 성곽이다. 벽인지, 언덕인지, 산인지 모를 평평한 푸르름이다. 이런 풍경은 또 처음이다. 거대하고, 반듯하게 푸르다. 하늘은 딱 좋게 파랗다. 서빙을 하는 타미는 두 개만 시키라고 한다. 세 개를 시켜도 될까? 물었다. 두 개면 충분할 거라고 했다. 두 개면 충분해. 그 말에 또 기분이 좋다. 이런 곳에 이렇게 빈자리가 많을 수가 있지? 성삼위 일체 성당이 코앞이다. 트빌리시를 대표하는 명소다. 몰랐다. 모르고 온 자에겐 모든 것이 놀랍다. 아무도 트빌리시의 자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 풍경은 카즈베기나 메스티아에 있다고 했다. 몰랐으니까, 내가 이겼다. 너무 몰라도, 게을러도 여행은 이길 수 있다. 편견도 없고, 기대감도 없다. 그 굉장한 빈 공간으로 놀라움이 급박하게 차오른다. 요가나 헬스를 끊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저녁이면 이곳에서 와인 한 잔을 홀짝대며 석양을 기다리겠다. 숙소로 돌아가 체리 1kg로만 배를 채우겠다. 일주일에 두 번은 NO5 유황 온천에서 2천 원에 몸을 담그고, 어떤 날엔 파프리카에서 8천 원 조식 뷔페를, 어떤 날엔 Entree에서, Hurma에서 스무디 볼을, 팬 케이크를 먹을 것이다. 조지아식 가지 샐러드나 그린 토마토 샐러드에 빵을 찍어 먹으며 한 끼를 해결할 것이다. 평평하고 기이한 푸른 꼭대기에 꼭 올라볼 것이다. 저렇게 길쭉하니까 여러 곳에서 여러 번 올라야 하나? 여러 번의 즐거움을 기대할 것이다.
내가 트빌리시에 있다.
열 개의 황홀 중, 두 번째 황홀을 찾았다.
Cafe saamo
PS 가격도 저렴해요. 사진 위의 메뉴 세 가지. 낀칼리(조지아식 만두), 치킨 수프, 음료 포함 8천 원 정도 나왔어요. 조지아식 만두는 만두피가 두꺼워요. 식감은 한국 사람에겐 좀 아니네요. 잘하는 곳에서는 더 맛있겠죠? 여기는 맛집으로는 흠. 다른 메뉴를 더 먹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