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고 싶다. 나는 자고 싶다.
KHIDI 나이트클럽에서 몸을 흔들어야겠다.
몸을 흔들면 다 괜찮아질 거니까. 일이 안 풀리는 게 뭐? 왜? 언제는? 늘 그랬잖아. 지지부진하고, 암담했잖아. 못 해낼 거야. 좌절하고, 포기했잖아. 포기했다가 다시 물고 늘어져도 봤잖아. 어떤 일은 덜컥 되기도 하고, 안 되는 일은 또 안 됐잖아. 잘할 것 같아서, 잘 해낼 것 같아서 더 답답한 마음, 알지. 착각일 거야. 왜, 네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는 글자로 익숙한 세대야. 태어날 때부터 영상과 함께 한 아이들에 비하면 크로마뇽인이지. 촌스럽고, 느려 터졌지. 어설프게 분석하려 들지. 꼴에 우아하고, 주제에 참신하려고 하지. 걸음마도 못 뗀 아기가 육상 선수들을 우습게 봤어. 죗값이야. 너는 더, 더 좌절해야 해.
닥쳐. 자꾸 바람직하려 하지 마. 반성부터 하려고 하지 마. 그냥 맘 놓고 짜증 좀 내면 안돼? 누구나 자기 안에 잔소리꾼 하나씩 키우겠지만, 너는 좀 지나쳐. 회복이 쉬워? 그렇게 빨리? 헤어 왁스부터 바를게. 여행 와서 처음인가? 역시 남자는 머릿발. 신기해. 10초 전까지 겁나 못 생겼는데, 지금은 살짝 잘 생겨졌어. 개구리 왕자의 저주는 왁스로 푸는 거였어. 개구리였는데, 분명 개구리였는데 지금은 왕자님이잖아. 클럽 문전박대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어. 사람들이 다 나만 보겠군. 까만 말총머리를 왁스로 꼿꼿이 세운 아시아인이 여기에선 금발보다 귀하지. 글쟁이로, 떠돌이로 계속 살아도 될까? 유튜브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생각 다 집어치우고, 흔드는 거야. 흔들 생각을 하니까, 심장이 벌렁거려. 이십대로 돌아간 것 같아. 홍대, 막 문을 연 클럽 락스 냄새까지 다 기억나. 내가 어떤 색의 셔츠를 입을 건지를 아침부터 고민했더랬지. 게스 청바지에 갭(GAP) 후드 티로 옷 좀 입는다는 소리 들었는데.
37번 버스로 20분 거리. 버스는 15분 후에 온다. 15분. 15분 길다. 평소의 15분이 아니잖아. 왁스 냄새가 살랑대는 이십 대의 여름밤이잖아. 어플을 켜고 Bolt 택시를 부른다. 1분. 1분 후면 택시가 와. 택시가 어디쯤 오는지도 다 확인이 되다니. 새삼 좋은 세상이야. 가까워지다가 다시 멀어진다. 응? 코앞에서 왜 나를 못 찾아? 오페라 극장 앞 버스 정류장이다. 택시는 오페라 극장 뒤편으로 들어간다. 거기에 서 있다. 내가 전화를 건다. 택시 기사는 영어를 못 한다.
-Bus station(정류장)
또박또박 말한다. 차가 가까워진다. 다시 멀어진다. 무슨 일이지? 알겠다. 차도에 바짝 붙어서 차를 불러야 했다. 오페라 하우스 쪽에서 불렀더니, 내 위치가 길가가 아닌 건물 내부로 찍힌 것이다. 지금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멈추고, 멀어지고. 뭐 하는 짓이야?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그때 37번 버스가 왔다. 15분 후에 오는 버스가 1분 후에 오는 택시보다 먼저 왔다. 청춘의 15분을 이렇게 도둑맞았다. 택시를 취소해야지. 어떻게 또 그래? 바로 코앞이잖아. 택시 기사가 더 답답하겠지. 버스를 보내고, 택시를 기다린다. 택시가 다시 멀어진다.
Cancel
결국 택시를 취소한다. 가깝지만, 절대 내게 올 수 없다. 이제, 택시도, 버스도 없다. 다음 37번 버스는 20분 후에 온다. 기운이 쭉 빠진다. 자고 싶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택시를 부른다. 부른 택시는 1분 후 도착 예정이다. 1분만 기다리면 된다. 릴랙스. 흥분할 필요도, 절망할 필요도 없다. 좀 늦게 흔든다고 이 흥이 다 사라질 리 없다. 택시는 오페라 극장 뒤로 간다. 거기서 웅크린다. 다시 전화를 건다.
-오페라 하우스, 버스 스테이션
또박또박 말한다.
-노 러시아?
러시아 말 못 하냐니? 조지아어, 러시아어. 조지아에서 통하는 언어다. 못 한다고 했다. 노 잉글리시? 이번엔 내가 물었다. 노! 그가 답한다. 그와 나는 러시아와 영국만큼이나 멀어져 버렸다.
cancel
택시 어플에서 캔슬 메뉴를 누른다. 누르기 전에 택시가 알아서 멀어지고 있었다. 아예 멀어져야 손님 네 놈이 확실히 취소를 하지. 의지를 담고, 택시가 내뺐다. 처음 있는 일이다. 연달아 두 번, 택시 어플이 나를 거부했다. 3km 거리. 걸어도 3,40분이다. 살랑살랑 6월의 밤이다. 걷기 딱 좋은 날씨. 아니, 안 걷겠다. 걷기 싫은 게 아니라, 가기 싫다. 졸리다. 모든 건 다 이유가 있다. 나를 막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늙은 사람도 우리 클럽에 오는군요. 클럽 전 직원이 나를 한 번씩 만져보려 할지도 모른다. 술을 잔뜩 퍼마셔서 역류성 식도염이 악화될지도 모른다. 퀸사이즈 침대가 기다린다. 침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자는 걸 좋아한다.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기분이다. 꿈속을 나는 것 같다. 어떻게 클럽 갈 생각을 했어? 새벽까지 춤출 생각이었어? 말도 안 되는 짓을 할뻔했지 뭐야.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건 잠이 되어버렸다. 숙면을 취하고 나면 내 인생은 조금 더 괜찮아져 있을 것이다. 유튜브도 해볼 만한 도전으로 작아져있을 것이다. 내 집으로 간다. 트빌리시에 내 집, 내 방이 있다. 머리는 감고 자야지. 살짝 짜증이 훅, 그래도 6월이고, 토요일이고, 살랑살랑 밤이다.
매일 글을 올려요. 글을 올리면 책 한 권이 팔리겠지. 저만의 오체투지 방식입니다. 지금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