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들이닥친 두 명의 여자
-똑똑똑
누구지? 집주인인가? 집주인은 러시아에 있잖아. 첫날 만났던 그 여자? 현관 외시경으로는 형체만 보인다. 사람이다. 문을 열었다. 키가 굉장히 큰 여자와 60대로 보이는 여자.
-안녕, 카리나야. 이분은 우리 이모.
키카 크고 마른 여자가 카리나, 살집이 있고 인상이 좋은 여자가 이모. 두 여자가 짐을 들고 들어온다. 낮잠을 자려던 참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글부터 쓴다. 일기를 끝내고 나면 요리를 한다. 채소 수프를 끓인다. 양배추, 토마토, 콜리플라워, 양파, 마늘을 넣고 뭉근하게 끓인다. 버섯 조미료 톡톡, 소금 톡톡 간을 하다. 천천히, 일정 속도를 유지하며 먹는다. 건강식을 먹었다는 성취감에 집 앞 마트로 간다. 크림 웨하스와 초콜릿이 코팅된 비스킷을 산다. 무게로 파는 싸구려지만, 웨하스는 늘 맛있다. 매일 쭈그려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께 초콜릿 비스킷을 드린다. 더 비싼 거라서 초콜릿 비스킷을 드린다. 한 개는 내 비닐봉지에 담는다. 쉽지 않은 선행이었다. 하이에나에 빙의되어 크림 웨하스를 숨도 안 쉬고 먹어치운다. 건강하고 싶다. 역류성 식도염이 낫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수프를 먹고, 수프 시간이 끝나면 미친놈처럼 웨하스를 씹는다. 시도 때도 없이 입으로 뭔가를 넣는다. 어쩌자고 이러나? 가끔 이성이 혀를 끌끌 찬다. 수프를 정성껏 끓이는 순간을 제외하면 될 대로 돼라. 사나워져서는 식탐에 놀아난다. 불길하고, 행복하다.
아, 맞다? 이틀 후엔 다른 에어비엔비로 옮긴다. 조금이라도 멀쩡해 보여야지. 가져온 MTS 롤러를 꺼낸다. 작은 바늘이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는 롤러다. 이걸로 얼굴을 사정없이 문대면 피가 나고, 딱지를 입는다. 서서히 회복되면서 주름이 옅어진다. 그래서 효과를 봤냐고요?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유튜브에 MTS 롤러로 검색해 보길. 땀구멍이 넓어졌다는 사람도 있고, 엄청 효과를 봤다는 사람도 있다. 판단은 본인의 몫. 나는 효과를 봤다. 이 시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독한 맘으로 얼굴을 문대고 있다. 나는 평소보다 더 힘줘서 비볐다. 얼굴에 골고루 피딱지가 앉았다. 이틀이면 흉측한 부분들은 많이 희미해진다. 글도 썼겠다, 건강식으로 한 끼도 해결했겠다, 얼굴에 피 칠갑도 했겠다. 열심히 산 반나절이다. 죄책감 없이 낮잠 좀 자 주겠다. 침대에 내 수건을 깔고(주인집 귀한 침구에 혈흔이 남으면 안 되니까) 바른 자세로 누워서 스마트폰을 뒤적이는 중이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고, 잘못 들었겠지, 무시했다. 5분 정도 지났다. 또 똑똑똑. 약간 섬뜩, 약간 궁금. 그 상태로 문을 열었다. 카리나와 카리나의 이모가 거기에 있었다.
주방엔 남은 채소들이 여러 비닐봉지에 담겨서 흩어져 있었다. 유리컵 하나를 깨 먹었고(이모가 체코에서 사 온 모제르 제품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창가 식탁 햇빛이 너무 강해서 식탁을 부엌 쪽으로 옮겨 놓은 상태였다. 방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서는 책상으로 썼다.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다. 의자 위엔 ASUS 노트북이 전선에 연결된 채 있다. 활짝 열린 내 방은 심란한 부엌보다 좀 더 심란하다. 내 얼굴은 누군가의 난도질로 목숨만 경우 건진, 거의 죽을 뻔한 피해자의 몰골이다. 두 여자에게 몽땅 들켰다. 그녀는 내 옆방을 열쇠로 따고는 짐을 놨다. 내 얼굴을 보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부엌 쪽 방문을 열고 사라졌다.
-러시아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온다고 말 좀 해주지. 나는 혼자 쓰는 줄 알고, 막 어질러 놨는데...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친척들이랑 모임이 있어서 왔어.
이렇게 느닷없이 올 수도 있구나. 이런 무시무시한 피딱지 얼굴로 러시아와 아르메니아 피가 반반 섞인 변호사를 만날 수도 있구나. 서둘러 변기부터 확인했다. 깨끗하다. 주방 그릇을 정리하고, 탁자를 제 위치로 옮겼다. 나갈 때만 멀쩡하게 해 놓으면 되지. 난장판 부엌은 나만 봐야 하는 부엌이다. 의자를 다시 내 방으로 가져왔다. 양념과 채소를 한 곳에 모았다. 내 얼굴이 치욕으로 훅 끓었다.
-내가 유리잔을 깼어. 변상을 하고 싶어.
-정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이모한테 얼마짜리냐고 물어볼게. 우리 시장에 갈 건데, 같이 갈래?
- 아니, 지금 내 얼굴이 이래서. 미안해.
-어때? 그냥 모자 쓰고 가자.
'어때'. 그녀의 키워드다. 어떤 것도 대수롭지 않다. 그녀는 관대할 것이다. 관대하고, 느닷없을 것이다. 엉뚱하지만, 뒤끝은 없는... 이 집을 찾으려고 개고생을 했다. 에어비엔비 최악의 집 찾기였다. 그녀는 내가 집을 못 찾은 최초의 손님이라고 했다. 이 집을 찾느라 본인도 개고생을 했다는 댓글이 내 블로그에 달렸다. 택시 기사와 헤매다 결국 못 찾고, 사람이 나와서 자기를 데려갔다고 했다. 한국인 여행자였다. 카리나는 거짓말 좀 한다. 이해되는 거짓말이다. 내 방으로 돌아와서 의식적으로 방문을 잠갔다.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어제 침대 뒤쪽 사진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했다. 똑같은 침대를 조립해야 한다고 했다. 보내줬다. 잘 안 보인다고 침대를 좀 옮겨서 확실히 찍어달라고 했다. 침대가 무거웠다. 힘을 꽉 줘서 밀었다. 양말 신은 발이 쭉 미끄러졌다. 하마터면 목이 부러질 뻔했다. 매트리스 쪽으로 얼굴을 사정없이 박았다. 매트리스여서 뻐근한 정도로 끝났다. 다시 찍어서 보내줬다. 잘 찍었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런 메시지를 수시로 보낸 여자는 온다는 말을 안 했다. 침대 이야기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자기와 이모와 시장 구경을 가자고 한다. 내가 집에 없었다면? 자기네 열쇠로 따고 들어와 난장판을 깔끔하게 복구해놨을 것이다.
공감능력 제로
소시오패스.
떠오르는 단어였다. 잠이 싹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