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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28. 2019

아르메니아 여행 위기? 포기?

머물 것인가? 뜰 것인가? 기로에 섰다. 

길쭉한 감자 크로켓이 완전 예술이었어. 수고했어.

카리나와 이모의 등장으로 방안에 갇히게 된다. 이모와 카리나 역시 방에 주로 있었다. 문 열 때 얼핏 본 이모 방은 상당히  길다. 거실 겸용 침실로 충분하다. 둘은 거기서 먹고, TV를 봤다. 짧게, 짧게 카리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아르메니아 자연이 조지아보다 아름답고, 아르메니아 사람이 조지아 사람보다 친절하다고 했다. 아르메니아와 러시아 혼혈인 카리나는, 어릴 때 조지아에서 자랐다. 흘려듣지 않게 된다. 카리나는 내게 아르메니아에서 꼭 가봐야 할 곳들을 여럿 추천해 줬다. 래프팅이나 짚라인 등을 꼭 해보라고 했다. 도시에서 카페나 찾으며 빈둥거리는 내겐, 약간 비켜가는 정보들이었다. 예고 없이 러시아에서 여기까지 날아온 그녀를 나는 경계한다. 이모와 살갑게 지내는  사람이다. 이모의 집을 에어비엔비로 내놨다. 이모에게 용돈을 벌게 해 주려고 일을 벌였을 것이다. 직업이 변호사다. 이모와 돈을 반반 나누는 사람으로는 안 보인다. 내가 깨트린 잔이 체코 moser  잔이라며 11달러까지 따박따박 받았다. 원래 여섯 잔이 한 세트. 65달러. 여섯 개로 나누면 개당 십 달러가 조금 넘는다. 확실한 계산으로 내 의심을 봉쇄했다.  따박따박. 내 표현에 가시가  돋쳤음을 인정한다. 그런 잔은 좀 숨겨둘 것이지. 그 잔을 바닥에 떨어뜨린 게 아니다. 철제 선반에서 싱크대로, 물 씻는 개수대가 아니라 철제 선반을 놓은 그 지점으로 잔이 떨어졌다. 2cm 높이를 못 견디고 박살 났다. 


주방 끝 식탁. 내가 글을 썼던 자리.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노트북을 펴서. 요리를 해서는 방으로 들고 가는 모습에서 쓸쓸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지들 말고, 편히들 드세요. 내가 방에 있는 게 이래저래 편했다. 낮 기온이 급격히 올라 36도를 넘겼다. 에어컨을 켜고 생토마토와 생양배추를 토끼처럼 씹었다. 이 방은 두고두고 기억할 첫인상을 선물했다. 작정하고 나를 놀라게 했던 화사함이었다. 쥐들의 무덤 같은 현관과 엘리베이터를 지나쳐서인지, 더 극적이었다. 인도와 차도가 뚜렷이 구분된 아르메니아는 또 얼마나 반가웠는지. 조지아 트빌리시는 길 건너는 게 일이었다. 음침한 지하도를 이용하거나, 그마저 없으면 무단 횡단을 해야 했다. 평화의  다리 부근 광활한 8차선을 무단횡단할 때가 제일 어이없었다. 가장 유명한 관광 포인트가 몰려있는 곳이다. 얼마나 사람이 뒷전이면 이런 일이 벌어질까? 아르메니아는 인도 하나는 확실하다. 그것만으로도 기특했다. 예뻤다. 조지아에 없는 상식이 유쾌했다. 지금 나는 변두리 구석 방에 갇혔다. 이 방만 벗어나면, 예레반은 여전히 좋을까? 잘 모르겠다. 예레반은 분명 좋았다. 좋았던 곳인데, 답답하다. 돌변하는 내가 두렵고, 한심하다. 내 사랑은 얄팍하고, 내 사랑은 의심스럽다. 


다시 다짐한다. 


애쓰지 않기로. 내 변심이 나다. 36도의 더위, 딱히 갈 곳도 없는 변두리, 방, 한 상 거하게 차리는 이모와 조카. 그래도 마냥 편하고, 좋을  수 있다. 그게 불편할 수도 있다. 독방으로 지내다, 갑자기 나눠 쓰는 공간이 됐다. 부당하다는 게 아니다. 불편하다는 거다. 이제 나는 몇 번 더 노력할 것이다. 아르메니아를 떠날 것인가? 좀 더 깊이 보려고 애쓸 것인가? 아르메니아! 그리울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벌써부터 그리우니까. 길 건너 빵집 할머니는 내가 주문한 케이크가 별로라며, 더 싼 케이크를 추천했다. 다 똑같이 생겼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흠 없는 걸 골라서 줬다. 서빙을 보던 청년이 더듬더듬 아르메니아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당연히 좋다고 했다.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활짝 웃었다. 내 대답이, 내 관심이 모두 의미가 됐다. 단지 입구 쪽 또 다른 빵집은 모든 빵이 훌륭했다. 결이 살아있는 페이스트리에 치즈를 녹이고, 으깬 감자를 넣었다. 천 원도 안 한다. 장사가 어찌나 잘 되는지 아침부터 오후까지 늘 따끈한 빵이 있었다. 계속 굽고,  계속 팔았다. 그리울 것이다. 밤 여덟 시쯤이면 돌풍 같은 바람이 불었다. 창이 벽에 닿을 정도로 젖혀졌다. 숭숭 바람이었다. 한낮을 달궜던 더위가 그렇게 지워졌다. 기다리면 온다. 기다리면 된다. 이솝우화 같은 바람이었다. 바람도 생각날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르메니아가 그리워서 다시 올 수도 있다. 한 달만 다녀올게. 급하게 비행기를 끊을지도 모른다. 그럴 리는 없다. 그리울 것이다. 


아직 아르메니아는 끝나지 않았다. 이 집은 끝났다. 어떤 집에서 묵는가? 내 여행은 집 여행이 되고 있다. 한국인이 강력 추천한 곳으로 간다. 매일 아침 집 밥을 먹여주는 곳이다. 위치도 좋다. 방구석에 처박힐 필요가 없다. 아르메니아에 더 머물 것인가? 


집이 답해줄 것이다. 

이 바람, 이 빛. 잊지  않을게.

PS. 매일 글로 오체투지를 해요. 매일의 글로 책 한 권을 더 팔고 싶어요. 한 명의 독자, 우주의 한 칸. 우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아서 더 좋아요. 지금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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