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취한 거 아닙니다. 사람에 취한 겁니다.
여러분! 저 엄청 취했습니다. 여러분에겐 즐거움일 거라 생각해요. 매일 쓰는 일기 맞춤법도 삐뚤뻬뚤. 글 쓰는 놈이 왜 이래? 허접하죠? 책을 낼 때는요. 스무 번은 봐요. 일기로 쓸 때는요. 그렇게까지는 볼 수 없어요. 후우우우. 지금 쿠타이시고요. 와인을 또 엄청 마셨네요. 메디코 앤 술리코 게스트 하우스에서요. 저는 호스텔 Fortuna에 머물러요. 왜 메디코 앤 술리코 게스트 하우스까지 갔을까요? 일단 잠을 편히 못 잤어요. 윙윙, 모기 두 마리를요. 제 뺨을 후려갈기며 잡았어요. 모기는 윙윙대지. 선풍기 한 대는 러시아 놈이 자기한테 고정해 놨지. 뒤척뒤척. 영양가 없는 잠을 잤어요. 게다가요. 주방을 쓰려면 5라리(2천 원)를 내시오. 요리를 하려면 돈을 내라뇨? 이런 근본 없는 숙소는 또 처음이네요. 평이 엄청 좋더군요. 보기나 할까? 날씨도 거지 같아서요. 뭐든지 우울하고 시시해서요. 빗방울 후두둑 맞아가면서요. 메디코 앤 술리코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가요. 머무는 곳에서 10분 걸으면 되더군요.
일흔네 살의 노인이 저를 반기더군요. 은발의 고운 할머니도 보이네요. 포도 넝쿨이 주렁주렁한 단독 주택이네요. 조지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이에요. 메디코 앤 술리코. 둘의 이름이에요. 메디코가 아내, 술리코가 남편. 외우기도 쉬워요. '술'리코가 '술'에 절어 사는 남편이거든요. 매년 시월이면 천오백 리터의 와인을 담가요. 1.5리터 아니고요. 천오백 리터요. 천육백 리터일 때도 있대요. 담근 와인에 풍덩 빠지면 질식할 수도 있겠죠? 신혼 때부터 쭉 여기서 사셨대요. 오십 년 가까이 한집에서만 산 거죠. 쿠타이시에서 최초로 게스트 하우스를 연 장본인이기도 해요.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엔 모조리 소개된 곳이죠. 론리 플래닛에도 물론 소개됐죠.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딱히 할 일 없어서 갔다니까요? 게다가 첫인상도 후줄근하더라고요. 매트리스를 안 만져봤지만요. 싸구려 매트리스라는 건 대번에 알겠더군요. 술리코 할아버지가 저를 앉히더니 와인을 가져와요. 메디코 할머니가 담근 와안이죠. 버팔로 뿔로 만든 잔에 가득 담아서요. 러브샷을 하재요. 했죠. 이런 상황에서 정색할 수가 있어요? 거절할 수가 있어요? 저 좀 가르쳐 주세요. 샐러드가 나오고요. 빵과 치즈가 들어간 튀긴 딤섬 같은 게 나와요. 안 건드려요. 전 손님이 아니잖아요. 돈도 안 되는 놈이 준다고 허겁지겁 다 먹으면 안 되죠. 어떻게든 폐 안 끼치려는 마흔일곱의 청년을 너무 몰라 주네요. 한 방울도 안 남기고 잔을 비우는 것만 중요해요. 비우면 같은 양을 재빨리 따라주고요. 바투미에서 며칠 고주망태로 취했잖아요. 어제도 시름시름 앓다가 잤어요. 술을 더 마시면 되겠어요? 오늘 내내, 아니 일주일 내내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다. 벅차오르는 노인을 단칼에 거절하실 수 있겠어요? 주는 대로 마셔요. 와인의 어떤 맛을 좋아하세요? 조지아는 와인의 종주국이에요. 프랑스, 이탈리아가 멋모르고 으스대도요. 원조는 조지아라고요. 조지아 와인 맛있어요. 프랑스, 이탈리아 와인에 익숙해지면요. 좀 독할 수도 있겠네요. 신맛도 강하고요. 메디코 할머니가 만든 와인은요. 과장 아니고요. 지금까지 먹었던 와인 중에 가장 맛있네요. 비싼 식당 그 어떤 와인보다 맛있어요. 목넘김에 아무런 저항감이 없어요. 부드럽고, 깔끔해요. 술리코 할아버지가 염력을 쓰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제 혀를, 입맛을 조종하는 것 수도 있다니까요. 마라톤을 완주하고 게토레이를 마시는 이봉주처럼요. 벌컥벌컥 마시게 돼요. 맛있는 와인은요. 마실수록 목말라져요. 병 째로 원샷하고 싶어져요. 한국 사람들도 참 많이 머물다 갔어요. 방명록을 보면요. 이곳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알게 돼요. 종일 무제한으로 와인 마실 수 있죠. 메디코 할머니의 요리 솜씨는 최고죠. 그 솜씨로 아침, 저녁을 챙겨주죠(저녁 만찬은 10라리 4천 원이요). 떠날 때는 샌드위치까지 만들어서 가방에 넣어주죠. 볼 것도 없는 쿠타이시가요. 노부부 때문에요, 조지아 최고의 여행지가 돼요. 아니, 세계 최고의 여행지가 돼요. 사진 뒤에 에어컨 보이시나요? 한국 여행자들의 선물이래요. 얼마나 행복했으면요. 얼마나 감동적이었기에요. 에어컨을 달아줄 생각을 할까요? 한국 여행자들이 이래요. 한 번 마음 주면요. 끝을 보죠. 한국 사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이분들이 준 사랑이 그 이상이었겠죠. 네, 믿어요. 그렇다고 제가 머무는 곳까지 바래다주실 필요는 없었다고요. 어르신. 팔짱까지 끼시고요. 하하하.
아, 저 많이 취했어요. 자고 싶어요. 자고 싶으면서, 또 이렇게 쓰고 있어요. 여러분. 저는 가난한 여행자고요. 매일 글을 쓰는 글쟁이이기도 해요. 유튜브에 동영상 열심히 올려야 하는데요. 글 쓰는 거에 밀려서요. 네 개 올리고 정체 중이고요. 저 잘 살 수 있겠죠? 여행 좀 했으니, 인생 좀 살아 봤으니 느긋할 것 같나요? 늘 불안해요. 가난한 만큼 불안해요. 불안을 힘으로 믿으며 살아요. 왜냐고요? 안 믿으면 어쩔 건데? 이 질문에 답을 몰라요. 그래서 불안에 비틀비틀, 흔들리고, 넘어져도 그 힘을 믿을 수밖에 없어요. 기댈 수밖에 없어요. 새벽 두 시가 넘었어요. 졸려요. 눕고 싶어요. 그래도 써요. 어떻게든 여러분께 다가가고 싶어서요. 술 취하면 저도 외계인이거든요. 여러분은 존재로, 자체로 기적이에요. 우리 행성에서 여러분을 놀라워하며 지켜보고 있어요. 저도 기적이고, 여러분도 기적이죠. 기적이, 기적을 알아보고 이렇게 쓰고 있는 거라고요. 다가가는 거라고요. 후우우. 맛있는 와인은 콧김으로도 좋은 향만 뿜뿜이네요. 전, 이제 잘게요. 제가 작은 즐거움인가요? 그렇다면 작은 댓글 달아주세요. 아오, 귀찮아. 무슨 댓글을 구걸해? 그런 분은 당연히 쌩까 주세요. 편한 선에서 위로하고, 위로받자고요. 저는 이제 자러 갑니다. 굿나잇. 아, 여러분에겐 굿모닝.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라고나 할까요? 천천히, 끝까지 다가가고 싶어요. 그래서 글을 써요. 저에게 조금씩 다가와 주실래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 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방콕 여행자에겐 필수 아이템입니다.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