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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l 25. 2019

조지아 쓰레기 버스의 행패

숲에 내동댕이 쳐지다


바투미에 며칠 있었더라? 거의 2주를 머물렀다. 가야지, 가야지. 발길이 안 떨어졌다. 꼴통 한국인 부부가 오늘은 뭘 먹여줄까? 오늘의 흑해는 또 어찌 생겨먹었을까? 흐린 바다, 두툼하게 말아올라간 거품을 몇 시쯤에 볼까? 비빔면과 수육으로 꼴통 부부는 새벽 세 시까지 나를 붙잡는데 성공했다. 매일 여행기를 올리는 나는, 숙소에 돌아와 다섯 시까지 글을 썼다. 오타가 나도, 불완전해도 써야 한다. 내가 기괴하다. 이런 내가 아닌데, 이런 내가 됐다. 며칠 조용한 숙소가 꽉 찼다. 러시아거나 독일이거나, 벨기에거나 한 친구들이 매트리스 밖으로 발을 내밀고는 잔다. 도미토리에 오래 머물면, 신이 된 기분이 가끔 든다. 첫날의 여행자들은 아기처럼 초롱초롱, 긴장하고, 어려진다. 하루만 지나도 당연해지고, 나갈 때쯤엔 홀쭉 늙어서 짐을 싼다. 버스로, 비행기로 가는 동안 다시 젊어져서는 새로운 곳에서 짐을 푼다. 여행의 처음과 끝이 모두 읽힌다. 모두가 떠날 걸 안다. 그걸 명심하는 사람이 된다. 그런 사람이 의외로 없다. 삶도 떠남이 있다. 평생 살 것처럼 자신만만, 그런 부류가 더 분노하고, 집착한다.  

-쿠타이시(Kutaisi)까지 15라리요.

쿠타이시로 간다. 15라리면 6천 원.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 차로 두 시간 거리. 트빌리시에서 바투미. 다섯 시간 거리. 25라리를 냈다. 애매하다. 삐끼의 표정이 멈칫멈칫. 꼴통부부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에이 그깟 5라리(2천 원). 거지한테 적선한 셈 치지 뭐. 1분, 2분. 손님이 찰 때까지 기다린다(조지아 장거리 이동은 기차 혹은 미니버스다. 미니버스는 마쉬루카라고 한다. 손님이 어느 정도 차면 이동한다). 2분, 3분. 기다릴수록 5라리가 커진다. 한 번도 거지에게 2천 원을 준 적 없다. 시내의  수많은 환전소가 1라리를 더 주네, 덜 주네로 경쟁한다. 1라리는 4백 원이다. 5라리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이때쯤 내 안의 소리는 한결같은 논리를 편다.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 나를 호구로 봤어. 내가 호구가 되면, 제2, 제3의 호구가 끝없이 나오게 되지. 나만 참아서 될 일이 아니야. 끝없이 피해자가 나온다니까. 정의의 문제고, 윤리의 문제잖아. 돈 안 섞인 윤리 문제는 잘 참는데, 돈이 들어간 문제는 훨씬 정의로워진다. 전사가 되어, 세상의 비도덕을 단죄하고 싶어진다. 

-내 친구가 10리라랬어요. 

삐끼는 좀 더 늙은 남자에게 데려간다. 둘 다 표정이 좋지 않다. 늙은 남자는 오피스, 오피스. 이러더니 사무실로 데려간다. 그리고 영수증을 끊어준다. 봤지? 영수증까지 끊어줬잖아. 정가를 낸 거야. 나는 종이 쪼가리를 받고, 인정하려 애쓴다. 


아침 다섯 시까지 못 잤다.  매일 술까지 퍼마시고, 속은 메슥메슥. 그깟 5라리에 발끈하는 건 피곤해서다, 신경 쓰지 말까? 내가 동양인이 아니었더라도 그랬겠어? 다시 볼일 없는 여행자라 이거지? 안 그래도 피곤하고, 힘든 나를 그깟 5라리로 모욕해? 구글 검색을 한다. 마침 바투미에서 쿠타이시로 가는 버스 값이 나와 있다. 10라리. 스마트폰을 들이민다.  

-아니,  그건 아침 가격이고. 지금은 오후니까. 

젊은 삐끼가 길게 길게 말한다. 진짜일 수도 있다. 구글이 전지전능 정답도 아니다. 그 사이 가격이 올랐을 수도 있다. 누구나 내는 차비를 기어이 깎는 개진상일 수 있다. 삐끼가 내게 5라리를 돌려준다. x발 5라리 등쳐먹기 x라 힘드네. 그 표정이다. 너 때문에 쿠타이시 가기가 싫어졌어. 이 개새끼야. 죄는 네가 지었는데, 왜 내가 죄지은 기분이 드는 거야? 시원시원하게 5라리 기부하고, 좋게좋게 가면 다 좋았잖아. 그 분위기를 깬 내가 눈치를 봐야 하는 거냐고? 이 쓰레기야? 울분이 정리되지 않은 채, 버스길에 올랐다. 굽이굽이 윤기 있는 녹지가 펼쳐진다. 산이다. 바투미의 바다에서 산으로 간다. 좋은 배합이다. 숲 냄새만 실컷 맡겠다. 분노는 쓸데 없다. 누구 좋으라고? 분노는 나를 갉아먹는 셀프 학대다. 쿠타이시(Kutaisi). 보통은 오래 머물지 않는 곳. 메스티아에서 트레킹을 하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곳. 메스티아에서 트레킹을  끝내고, 잠시 쉬어가는 곳. 그러니까 내 취향이다. 특별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겠지. 바투미처럼 서서히 스며들 테지. 잠을 좀 더 자자. 잠이 부족해서다. 몸이 피곤해서다. 내 분노는 내 책임이다. 

-쿠타이시에서 안 내렸어요?

버스가 선다. 사람들이 다 나를 본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한 여자가 영어로 말한다. 운전기사가 저 놈 왜 아직까지 안 내리고 있었던 거야? 이런 말을 하며 차를 세웠던 것 같다. 나는 쿠타이시 간다고 했다. 삐끼가 나를 쿠타이시 가는 버스로 안내했다. 그런데 이 버스는 쿠타이시를 이미 지났다. 구글맵을 켠다. 20km를 더 왔다. 이 버스는 쿠타이시를 지나치는 버스다. 쿠타이시가 목적지인지, 경유지인지도 모르고 잠만 처자는 내가 천하의 머저리다. 고속도로에 내팽개쳐져도 할 말 없는 등신이다. 나는 그렇게 미니버스에서 퇴출됐다. 5라리의 복수인 건가? 설마. 거기까진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어쨌든 나를 깨웠다. 스무 명을 태우는 운전기사가 있다. 늘 여행자를 태운다. 외국인 손님도 흔히 볼 것이다. 외국인 손님 단 한 명이 탔다. 그 손님이 쿠타이시에서 내리거나 말거나. 쿠타이시에 가는지는 돈 받을 때만 궁금하다. 조지아인의 무신경함을 퉁쳐서 비난하면, 나의 억지일까? 바투미에서 쑥쑥 자라던 나의 호감은, 또 한 번 무너졌다. 평생 살 것처럼 분노한다. 이가 갈린다. 

-쿠타이시에 간다며 돈을 받고, 왜 나는 쿠타이시에서 못 내리는 거죠?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모두 들으라는 양 외치고, 나는 낭떠러지 같은 숲속 도로에 떨궈졌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천천히, 끝까지 여러분께 닿고 싶습니다. 매일 한 권의 책이 더 팔리0면 행복하겠습니다. 지금은 '입 짧은 여행 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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