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나 가 볼까? 그래요. 전 조지아에 있어요. 바투미란 도시에 있죠. 바투미에서 17번 버스를 타면요. 국경을 넘을 수 있어요. 30분이면 돼요. 솔깃한 유혹이죠. 저는 보통의 여행자들보다 건방지잖아요. 여행 좀 다녔다 이거죠. 굳이 터키를 또 가? 안 가본 나라도 아닌데... 오늘 문득 가보기로 해요. 바투미엔 굉장한 친구가 살아요. 저를 초대한 꼴통 한국인 부부요. 저를 하루도 가만 안 놔둬요. 매일 맛집 순례는 기본이고요. 집에 데려가서 또 술 먹이고요. 가방에는 오리온 초코파이, 팔도 도시락 면을 꾹꾹 담아줘요. 감사한데요. 죽을 것도 같아요. 다들 아시죠? 저 역류성 식도염 있어요. 간 해독 능력도 예전만 못하죠. 술 한 번 거하게 마시면 몇 날 며칠 시름시름이죠. 이것들이 자기들 술 세다고요. 와인, 맥주 안 가리고 먹여요. 처음엔 단호하게 버티지만요. 맛있는 안주, 즐거운 수다. 결국엔 무너져 버려요. 오늘은요. 저녁밥을 또 먹자네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친구들과요. 이 친구들이 바투미에서 에어비엔비로 방을 빌려주잖아요. 그렇게 손님이 되면, 또 친구가 돼요. 장기 체류자에겐 거하게 밥을 쏘죠. 참 장사 잘 하는 친구들이죠. 집주인이 밥도 사고, 술도 사고. 분위기 좀 좋다 싶으면 아침까지 질펀한 수다에, 몸도 좀 가볍다 싶으면 춤까지 춘대요. 사우디아라비아 손님들은 작년에 오고 또 온 손님이래요. 제대로 반한 거죠. 오늘 저녁 식사는 사양할랍니다. 저 살아야겠어요. 진짜 또 퍼마시면 죽을 거예요. 바투미에서 최후를 맞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요. 저는 터키로 갈래요. 가야겠어요. 일부러 만든 스케줄이죠. 터키가 그곳에 있어서 감사해요. 터키가 어떤지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저녁밥을 먹고요. 느지막하게 올랍니다. 알코올 없이, 밤샘 없이 숙면의 밤이 간절해요. 17번 버스를 타고요. 국경을 넘어요.
아침에요. 이라크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조지아서 공부 중인 치대생인데요. 공부가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대요. 이라크가 많이 어려운 나라잖아요. 치안도 많이 안 좋대요. 돌아가면 끝장이라더군요. 한국인이 너무 부럽대요. 여권 하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한국 사람이라서요. 그 친구는 조지아를 오는 것조차 엄청 어려웠거든요. 가족들은 오고 싶어도 못 오죠. 이라크는 지옥이지, 가족들이 그 지옥에 있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든 365일 조지아에 있을 수 있어요. 한 달도 아니고, 두 달도 아니죠. 365일이라고요. 1년 동안 얼마든지 있어도 된다고 조지아 정부가 허락했어요. 터키도 한국인은 무조건 환영이죠. 국경선을 넘는 게, 서울에서 분당 가는 것보다 쉬워요. 국경선까지 무사히 데려다준 17번 시내버스는요. 30 조지아 센트예요. 우리 나랏돈으로 120원요. 버스도 최신형 좋은 버스더라고요. 국경선을 넘어서 5분 정도 갔으려나요? 작은 쇼핑몰이 나와요. 이스탄불 바자라는 쇼핑몰이에요. 거기에 식당이 두 곳 있어요. 하나는 아카시아고요. 하나가 serender park risus country란 곳이더군요. 둘 다 규모가 어마어마해요. 바닷가에 있고요. 캬, 내 인생 이 정도면 괜찮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더군요. 아카시아 식당으로 우선 가요. 홀린 듯이요. 사진을 찍어요. 어서 오세요. 손님인 줄 알고, 저에게 와요. 사진만 찍어도 되나요? 뻔뻔하게 묻죠. 그럼요. 따뜻하게 허락해 주더라고요. 아르메니아란 나라를 다녀왔잖아요. 터키 사람들이 몹쓸 짓을 참 많이 했어요.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이 강제 이주되는 과정에서 무참히 살해되거나 굶어 죽었죠. 150만 명이라뇨? 엄청난 숫자에, 그 잔혹함에 왈칵 눈물까지 흘렸더랬죠. 시간이 흘렀고, 개개인에게 죄를 묻는 건 모호한 게 아닐까? 게다가 한국 전쟁 때 우리를 도와줬던 형제의 나라이기도 하잖아. 환한 미소에 저는 불편하게도, 터키가 또 호감입니다. 국경선에 있는 식당이니까요. 외국인 손님도 좀 많겠어요? 그런데도 환대 받는 느낌을 분명하게 주네요. 한국 사람이면 무조건 최고. 터키인의 한국인 사랑은 유별난 구석이 있어요. 얌체처럼 사진만 찍고는요. Srender park risus country란 식당으로 가요. 꼴통 한국인 부부가 추천해준 곳이거든요. 너희들한테 도망 왔지만, 고마운 마음은 가득해요. 몸만 따라주면, 몇 날 며칠 퍼마시고 싶단다, 얘들아. 진심 쓰러질 것 같아. 종일 비실비실, 눕고 싶고, 토하고 싶고. 우루사라도 좀 챙겨놓고 먹이지 그랬어? 이곳 식당도 친절합니다. 어쩜 그럴까요? 사진 찍으려면 더 예쁘게 찍으라고 주변을 정리해 주고요. 눈만 마주치면 일하는 사람들이 웃어요. 그것도 수줍게요. 수줍어할 정도로 제가 특별한 존재일까요? 그냥 밥 손님일 뿐인데요. 그나저나 식당이 지나치게 화려하네요. 입구부터 주눅이 들어요. 평소의 저라면 도망 나왔어요. 터키 돈도 없어요. 달랑 신한카드 한 장뿐인데요. 안 되면 어쩌죠? 해외에선 그런 일 흔하거든요. 얼마 전 조지아 식당에서도요. 카드가 안 되더라고요. 구석에 몰리면 강해진다면서요? 여기서 안 먹고 꼴통 부부에게 돌아갈 순 없잖아요? 터키 물가 비싸잖아요. 최근에 환율이 폭락했다고는 해도요. 터키 정도면 어엿한 강대국이잖아요. 이스탄불의 살인적인 물가도 기억해요. 맥도널드 햄버거 세트가 만 원이 넘었었죠. 이런 화려한 식당이면 삼만 원은 족히 나오겠지? 오늘의 수프, 오늘의 샐러드, 쾨프테를 시켜요. 쾨프테는요. 터키식 떡갈비예요. 달러로 백 달러가 수중에 있어요. 설마 제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왔을까 봐요? 카드 안 되면, 달러 쓸 거니까요. 저는 두려움 없이 만찬을 즐겨도 돼요. 빵이 나오고요. 꿀이 나와요. 꿀에는 터키식 버터가 함께 담겨 있어요. 고슬고슬 짭짤한 터키식 치즈도 나오고요. 물은 생수병 물을 따라줘요. 왜 주문도 안 한 걸 이리 주나 몰라요. 얼마를 받으려고 이럴까요? 호텔 식당이니까요. 부가세도 붙겠네요. 못 잡아도 4만 원은 나오겠어요. 수프 한 술 떠보니, 음식 좀 하는 집이네요. 감자, 당근, 토마토를 뭉근하게 끓여냈어요. 쾨프테도 좋던걸요? 고기 곱게 다녀서 잘 지졌고요. 볶은 밥에 구운 토마토, 구운 감자까지 곁들였어요. 대충 만든 티가 하나도 안 나던걸요? 사람들이 테이블을 채우기 시작해요. 현지인들에게 인정받은 식당이로군요. 잘 왔어요. 이왕 돈 쓸 거, 맛난 거 먹고 제대로 써야죠.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요. 차까지 시켜서 마십니다. 결 고은 바닷가를 틈틈이 바라보는 것도 잊지 않았죠. 저는 얼마나 사치스러운 사람인가요? 이미 좋은 조지아를 떠나서 터키에 왔어요. 바닷가 호텔 식당에서 한 끼를 먹어요. 한 끼만 먹고 다사 돌아갈 거예요. 재벌들도 저처럼 살기 쉽지 않을걸요? 돈은 펑펑 써도, 시간은 또 펑펑 못 쓰는 사람들이잖아요. 하루에 두 나라를 오가면서 한 끼를 해결하는 거요. 저나 되니까 누릴 수 있는 사치죠. 한 5만 원 정도 나오겠네요. 5만 원 안 아깝네요. 써야죠. 제대로 만족했으니, 이 5만 원은 가장 지혜로운 5만 원입니다.
55리라
계산서에 55리라고 찍혀 있네요. 이게 얼마일까요? 조지아는 라리, 터키는 리라. 화폐 단위가 헷갈려요. 대충 계산해 보니 빵값, 물값은 안 받나 봐요. 그냥 주는 건가 봐요. 그냥 주는 거라면 놀랍네요. 꿀과 버터, 치즈와 빵 조합이 고급스럽기 그지없었거든요. 55리라는 얼마일까요? 엄청 비싼 액수겠죠?
만천 원? 환율 애플리케이션으로 계산했더니요. 만천 원이 나오네요. 그럴 리가 있어? 다시 계산해도 만천 원. 만 천 원에 호텔 만찬이라뇨? 십만 원 정도 쓰는 손님이어야 받을 수 있는 친절은 또 어떻고요. 팁도 못 줬어요. 터키 돈이 있어야 말이죠. 신한 카드가 아무 시비 걸지 않고 무사히 지지직 지지직 계산까지 해냈죠. 안 와도 그만이었던 터키가요. 안 먹어도 그만이었던 식당이글쎄 큰 충격을 줍니다. 여러분 혹시 터키 여행 준비중이시라면요. 어서들 가세요. 이스탄불은 모르겠어요. 지방 소도시 물가는, 비상식적이고, 두려워요. 이 나라 이러다가 거덜 나는 거 아닐까? 웃고 있지만, 이들의 삶은 가난하고, 고단하기만 한 건 아닐까? 두렵고, 안타까워요. 아뇨. 그냥 기뻐만 할래요. 손님 하나라도 더 와야,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테니까요. 이번 여행의 여섯 번째 황홀로 손색이 없네요.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단 돈 만 원으로 모든 걸 누렸어요. 제게 커다란 요술봉이라도 생긴 것 같은 밤이었네요. 양탄자를 타고 가는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였네요. 무모하게 기대하며 살아도 되겠어요. 무한한 반전도 믿으며 살래요. 끝까지 가봐야 알겠어요. 이 여행도, 이 삶도요. 놀라운 일들에 열심히 놀라며 살게요. 꼴통 부부가요. 1회용 물수건 좀 가져다 달래요. 화상채팅할 때 테이블에 있는 걸 봤나 봐요. 제가 못 살아요. 돼지고기 수육 보들보들 해놨다고요. 얼른 오래요. 사우디아라비아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는 취소가 됐다면서요. 가야죠. 어떻게 해요. 1회용 물수건 다섯 개 챙겨서요. 저는 일어섭니다. 친구들이 기다리는 바투미로 가요. 따뜻한 기분이기도 하고요. 또 마시면 죽을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해요. 오늘 하루 이미 황홀했으니, 저는 좀 더 착해지렵니다.
PS 매일 일기를 써요.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천천히, 더 많은 분들께 다가가고 싶습니다. 작은 최선으로, 소소하게 깨닫고 싶어요. 방콕 맛집 책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댜. 매일 책 한 권이 더 팔렸으면 해요. 아뇨. 정정합니다. 책 한 권이 더 닿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