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최고다. 너!
지금 여기 숙소에 머문 지 8일? 9일? 그전 숙소까지 계산하면 바투미에서만 열흘이네요.
바투미가 좋아?
좋네요. 너무 좋네요.
스페인 친구가 이 숙소에 있다가,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를 다녀왔어요. 트빌리시 너무 좋대요. 저보고 볼 것도 없는 바투미에 왜 이리 오래 있냐네요. 볼 것이 없다니? 매일 해변을 걸을 수 있어요. 바다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바투미는 좋네요. 이유가 웃긴데 인공적(?) 이어서 좋아요. 신도시처럼 잘 닦아 놨어요. 바닷가 깨끗한 산책로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어요. 아이들은 비눗방울을 불고요, 러시아 가족은 4인용 자전거 페달을 밟아요. 엄청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Luca polare를 지나고요. 화려한 식당, 2층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카페도 지나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딴생각을 열심히 하죠. 최근 이틀 술 퍼마시고요. 아침이면 속이 울렁거려요. 밤이 되면 잦아들고요. 한국 커플과 어울리다가요. 저, 제 명에 못 삽니다. 얼른 도망가야겠어요.
네, 바투미가 좋아요. 너무너무 좋아요. 조지아에 오기 전에 머릿속으로 그렸던 조지아 사람들이네요. 어제도요. 요 한국 커플이 저를 타바두리(Tavaduri)라는 식당으로 데려가요. 조지아 음식들 딱히 대단치 않더라. 이 말을 했던 제 입을 꿰매고 싶네요. 번복합니다. 조지아 음식 대단해요. 특히 바투미요. 현지에서 오래 산 귀요미 커플이 아니었다면요. 언감생심 올 수나 있었겠어요? 고기를 양념에 잘 재서요. 조려요. 일종의 스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차슈슐리(Chashushuli)고 해요. 와. 우리가 먹은 건 소고기고요. 버섯이나 닭고기 차슈슐리도 있대요. 치킨 차슈슐리는 우리나라 닭도리탕 맛이 난대요. 고기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식감, 정성껏 스며든 양념, 양념과 공존하는 적당한 육즙.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이 절로 터져 나오더군요. 킨칼리도요. 조지아식 만두죠. 한국 만두보다 맛없다고 했죠? 이 식당 만두는 너무 맛있어요. 고기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식당의 킨칼리 에 반하실 겁니다. 샤롱바오처럼요. 육즙이 더 중요한 만두니까요. 꼭지를 잘 잡고요. 작게 구멍을 낸 곳으로 국물부터 쭉 들이켜세요. 꼭지는 안 먹어요. 버리세요. 참, 먹기 전에 후추를 듬뿍 치셔야 해요. 그렇게들 먹는다네요. 진하고, 짭조름한 고깃국물이 꿀렁꿀렁 목젖을 타고 들어갑니다. 꼬치 바비큐 므츠바디도요. 짭짤하게, 육즙 낭낭 잘 구웠어요. 돼지고기는 좀 질겼지만, 닭고기는 최고더군요. 조지아 국민 와인 사페라비로 목을 축여가면서 이 많은 음식을 싹싹 긁었습니다. 저처럼 거지 여행자는 케밥만 먹어요. 빵만 먹죠. 진짜 조지아 맛은 근처도 못 갔던 거예요. 향신료로 고기를 가지고 노는 걸 기가 막히게 잘하네요. 재료가 풍요로운 곳이니까요. 와인을, 호두를 아낌없이 재료에 써요. 이렇게 근사한 식당에서 성인 셋이 먹고 마시고요. 3만 원 정도입니다. 네, 한국 커플이 저를 위해 큰돈 썼어요. 3만 원에 이런 호사를 누리실 수 있어요. 바투미라면요.
바투미가 좋아요.
이렇게 바쁜 식당인데도요. 창가 자리 앉고 싶다고 하면요. 종업원들끼리 무전기로 접선하면서까지, 빈자리를 챙겨줘요. 서서 기다리지 말고, 앉아서 기다리라고 의자를 가리킵니다. 작은 친절 같지만요. 바쁘고, 큰 식당에서 그런 친절이 쉽나요? 음식을 나르면서도요. 웃어줘요. 찡긋, 신기해요. 트빌리시에서는요. 다들 좀 무뚝뚝하더이다. 가끔은 개무시도 하더이다. 아니, 이것들이 나를 뭘로 보고. 자존감 약한 저를 발끈하게 하더이다. 바투미에선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과일을 사려고 집으면 남자가 비닐봉지를 가져와서 담아요. 손으로 들고 다니면 불편하다고요. 엄청나게 붐비는 도나 베이커리에서도요. 제가 앉은 자리 귀신같이 알고 차를 가져다줘요. 숙소 주방에서도 혼난 적이 없어요. 아제르바이잔에서는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무서웠어요. 찬장 문을 안 닫는다. 수저를 통에 넣어야지. 저를 쫓아다니면서 '제자리 놓기' 신공을 펼치시더군요. 결국 요리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헐렁한 제가 딱히 달라졌을까요? 숙소에선 그 누구도 잔소리를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깨끗해요. 차를 끓여 놓으면, 누구라도 가서 따라요. 자기의 차인 것처럼요. 혼날 일을 많이 하는 저는, 바투미에서 혼나지 않아요. 할 거 없고, 볼 거 없는 바투미? 어느 정도는 인정해요. 바다가 좋네요. 사이사이 아기자기한 조형물도 잘 어울려요. 일렁일렁 바다 곁을 따라 걷는 게 좋네요. 웃는 사람들이 좋네요. 매일 작은 친절을 보려고 길을 나서죠. 볼 걸 다 봤어요. 또 보러 가요. 그게 좋네요. 조금씩 달라지는 석양, 다른 사람들, 달달한 솜사탕 냄새가 좋네요. 맛난 음식까지 알아버렸어요. 남들이 조지아가 인생 여행지라고 할 때 괜히 콧방귀 뀌었어요. 이제 저에게도 인생 여행지가 되어가고 있어요. 조지아 음식은 더, 더 먹어봐야 한다. 즐거운 조바심까지 생겨버렸어요. 아, 전전날 갔던 Sazandari 식당도 강력 추천해요. 바투미는 제게 소름 돋게 맛있는 도시입니다. 최고의 와인, 최고의 요리. 프랑스에서라면 십오만 원 이상이 들어갈 만찬을 조지아에는 3만 원원에 즐기실 수 있습니다. 조지아는 사랑 맞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로요. 여러분에게 작은 기쁨이고 싶어요. 많이 읽히고 싶어요. 최근에는 방콕 맛집 책 '입 짧은 여행 작가의 방콕 한 끼'를 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