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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l 27. 2019

내 불평이 소중한 이유

나는 나를 보듬어줄 책임이 있소이다


간만에 쾌청한 쿠타이시는 이쁘더군요. 아주 많이


-숙소까지는 어떻게 갔나요?


쿠타이시에서 20km를 더 가고 내 팽겨졌죠? 괘씸한 운전사는 마주 오는 미니버스를 세워요. 세운 버스를 타고요. 생각보다 쉽게 갔어요. 꼴에 양심은 있더라고요. 얄미운 인간이 정상인인 척하면 더 얄밉죠. 미워하기 위해서 미워해요. 미움을 방해하는 '너'의 멀쩡함이 더 짜증 나요. 차비는 1라리(4백 원)요. 그래요. 안 써도 되는 4백 원까지 냈어요. 4천 원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쓰레기, 개자식. 온갖 저주를 마음껏 퍼부을 수 있는 기회인데 말이죠.


-술리코 할아버지는 또 만났나요?


고민했어요. 왜냐면 또 오라고 하셨거든요. 가면 또 줄곧 마셔야 하잖아요. 술이라는 거요. 즐겁죠. 과음한 다음날은요. 이상한 기분이 돼요. 우울증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어요. 모든 게 다 후회돼요. 의욕도 사라지고, 매사에 부정적이 돼요. 같은 숙소에 묵는 독일 아가씨 크리스티나에게 나 사실은 좀 유명한 작가야. 이 말은 왜 했을까요? 꼴에 뭔가 멋져 보이고 싶었나 봐요. 취해서 내뱉는 대부분의 말들이 후회라서요. 오늘 내내 기분이 안 좋더군요. 아, 그리고요. 술리코 아저씨네 숙소 에어컨요. 예전 금산 여관 주인장이요. 댓글을 달아 주셨는데요. 콴타스틱으로 유명한 Quan(본명은 몰라요) 씨가 기증한 거래요. 매트리스도요. 그것도 모르고 매트리스가 싸구려처럼 보인다고 했어요. 저는 촌스러운 침대 보를 보면서 짐작만 한 거고요. 큰 실수를 했어요. 당연히 좋은 매트리스겠죠. 어련히 알아서 골랐을까요. 그리고, 충격받았어요.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평가하기 바쁜 사람이잖아요. 좋을 때 칭찬해 준 게 어디야? 그러고 말아요. 제 말의, 글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죠. 숙소 주인이 너무 좋고, 너무 고마워서 에어컨을 달아준다고요? 어림도 없어요. 돈이 많아도, 전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마음껏 사랑하고, 그 기운으로 따뜻해지는 사람이네요. 큰마음도 부럽지만, 자유가 더 부러워요. 전 늘 전전긍긍이잖아요. 나 하나를 위해 안달복달인데요. 타인의 행복을, 기쁨을 위해 안달복달인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은 자유로울 것 같아요. 최소한 자신에 갇혀서, 비참해지지는 않겠죠. 이렇게 부러워하다 보면 닮는 날도 오겠죠? 어떻게 에어컨을 사다가 달아줄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매트리스를 바꿔줄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수억을 기증한 유명인 만큼이나, 놀랍고 감동적이네요.


-제가 묵는 숙소 Hostel fortuna. 이상해요. 주인 할머니가 웃지를 않아요. 대신 저렴해요. 10라리. 4천 원에 하룻밤을 재워줘요. 사물함도 있고요. 방도 깨끗해요. 대신 요리하면 5라리(2천 원)를 내래요.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독일 친구 크리스티나 말로는 장기 거주자가 요리를 너무 자주 할 경우에 내야 할 돈이래요. 어쨌든 아무도 요리를 하지 않아요. 아니 못해요. 저렴한 숙소로 오는 사람들이, 식당 갈 여유가 있겠어요? 그런 친구들이 빵이나 뜯어 먹어요. 토마토나 썰어 먹어요. 참 정 없죠? 오늘은요. 제가 샤워를 하면서요. 옷이랑 샤워 가방을 바닥에 놨어요. 샤워부스가 따로 있어서요. 조심히 샤워하면 안 젖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물이 콸콸 흘러나오는 거예요. 옷이랑 샤워 가방이랑 몽땅 젖었죠. 할머니는 허둥지둥 물기를 쓸어내시고요. 제겐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요. 네, 불평하는 거 맞아요. 처음 와서 살랑살랑 웃으며 인사를 했던 저는 이제 없죠. 인사를 안 받아 주니까요. 인사를 해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끝이에요. 누군가와 통화를 하네요. 아니, 중국인 말고, 한국인. 조지아 말이지만, 그건 알아듣겠네요. 제 이야기를 하는 거겠죠? 할머니라고 손님에게 불만이 없을까요? 정신없이 어질러 놓는 제 흉을 보나 봐요. 숙소에 들어오면 입꼬리조차 안 올라가요. 방금 터키에서 온 로디라는 친구가요. 요리를 해도 되냐고 물어요. 신기하네요. 그걸 왜 물을까요? 벽에 5라리, 주방 사용료가 붙어 있기는 해요. 그 친구는 못 봤거든요. 그 어떤 호스텔도, 게스트 하우스도 허락받고 주방을 사용해본 적이 없어요. 눈치가 정말 빠른 친구로군요. 할머니는 벽을 보라고 해요. 5라리라는 충격적인 숫자를 보고는요. 배낭에서 생선 통조림을 꺼내요. 그걸 따서 빵과 먹어요. 원래는 통조림을 팬에 덥혀서 먹고 싶었대요. 파스타도 사 와서 같이 끓일까 했대요. 입 닥치고 차가운 생선 통조림만 먹어야죠. 5라리면 파스타 두 번은 해먹을 돈인데요.


-문을 열자마자 느꼈지. 아, 여기서 자기 싫다. 느낌이 팍 오는 거야.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니까, 어깨만 씰룩하는 거야. 하루만 잘 거지만, 하루도 싫다.


할머니 혼자 숙소 살림을 도맡아 해요. 숙소 일이 얼마나 많은 줄 몰라요. 청소하랴, 세탁하랴, 돈 받으랴. 점점 웃음을 잃으신 거겠죠. 그래도 왜 내가 눈치까지 봐야 하는 걸까? 억울하기는 해요. 이 숙소가 평점이 좋아요. 어떻게 좋을 수가 있을까요? 바투미에 있을 때 영국 친구가 추천해 줘서 왔어요. 그럭저럭 잘만 하다. 그것까지는 이해해요. 추천은 다른 영역이죠. 생각해 보세요. 웃지 않는 할머니가 늘 거실에 있어요. 거실에 있는 소파는 아예 앉을 수도 없어요. 앉기도 싫죠. 웃지 않는 할머니 옆에 앉아서, 손님끼리 낄낄낄 대화를 주고받을 수가 있겠어요? 특유의 떠들썩함이나 활력이 없는 곳이 됐어요. 이곳을 추천한 영국 친구는 눈치를 아예 안 본 거겠죠? 내게 보이는 모든 일들이, 그에겐 안 보였겠죠? 세상이, 이 숙소가, 이 숙소의 할머니가 자기처럼 선할 거라 생각하는 거겠죠? 이러쿵, 저러쿵. 세상을 정확히 보면 뭐가 달라질까요? 뒷담화로 해결되는 게 뭘까요? 로디가 차가운 캔을 먹을 때, 제가 오리온 초코파이를 줘요. 우리 둘은 이곳이 차갑고, 어려워요. 초코파이 하나가 아니죠. 상처받은 자의 연대죠. 그 감정은 소중해요. 약한 존재니까 아파하는 거죠. 왜 아프냐고 저를 꾸짖으실 건가요? 누구는 에어컨까지 달아주는데 말이죠. 내가 어떤 대접을 받느냐만 집중하는 제가, 저도 불만이에요. 부당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느끼고 살게 해 주세요. 더 큰 사람이 되어서 개의치 않을 때까지는요. 불평은요.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요. 숨 쉬는 것만큼이나 제겐 절실해요.


-내일 메스티아로 넘어가는 사람?


동행 싫어요. 혼자가 좋다고요. 오스트리아에서 온 친구가 저와 로디를 빤히 보네요. 네, 저 내일 떠나요. 메스티아로요.이곳에선 하루도 더 못 있겠어요.


-나랑 같이 4일간 트레킹할래?


아, 정말 싫은데. 쉽게 쉽게 여행하는 게 좋은데. 저는 격랑을 택하고, 파도타기를 할까요? 격랑을 피하고, 바다에 발만 살짝 담글까요? 제게 달렸어요. 작은 드라마 일단은 시작됐어요. 트레킹은 여전히 부정적이지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저를 낮추고, 우주에 닿고 싶습니다. 독자가, 여러분이 저의 우주입니다. 매일 한 권의 책이 더 팔리면 족합니다. 지금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팔고 있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959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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