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 마셨겠다, 내 안에 가득한 울컥함 쏟기
이리나 게스트 하우스(Irina guest house). 트빌리시 첫 사흘을 묵었던 곳.
아니, 주인장, 왜 이리 어수선하오? 숙소 선택 실패.
방 천장은 또 왜 이렇게 낮아?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콘센트가 여러 개인 건 훌륭하지만, 답답해 보여서 들어가기가 싫소.
오, 욕실은 또 왜 이리 커? 예전에 좀 살았던 집인가 보오. 샤워 부스 물이 한참 걸려 내려가지만 낸 돈(에어비엔비로 1박에 총 만 삼천 원 정도)에 비해 매우 훌륭하오. 아, 욕실에서 자고 싶구려.
숙소가 3층부터 시작하는데, 3층, 4층 주방이 두 개. 냄비건, 그릇이건 없는 게 없구려. 게다가 4층에 화장실만 세 개 더 있는 건 뭐요? 숙소로 개조하느라 돈 좀 썼구려. 내 방 창문이 아래서 위로 올려 닫는 건데, 쾅 소리를 내면서 닫혔던 문이 열렸소. 열리면서 벽을 사정없이 내려 찍었다오. 깨지면 내가 물어내야 해? 심장이 다 철렁. 그래서 창문 수리해 두라고 신신당부하는 거요. 여러 번 찍으면 분명 박살날 것이오. 주인 양반, 좋은 말 할 때 수리해 놓으시오.
마이크로 히뽀라는데 너무 귀엽지 않소? 러시아에서 온 손님(이겠죠?)의 애완동물.
이리나 게스트 하우스에서 파브리카 호스텔까지 두 블록 거리. 당연히 아침은 파브리카 조식 뷔페. 게스트 하우스, 호스텔의 차이가 뭘까? 호스텔 사장 리카르도(쿠타이시 Dingo back packers hostel) 말로는 게스트 하우스는 홈스테이 개념. 주인이 같이 머물면서 손님을 챙긴다. 호스텔은 저렴한 호텔 버전. 지금은 그냥 막 섞어 쓴다. 네, 그렇답니다.
강조하지만 19라리(8천 원)에 이런 조식 뷔페는 트빌리시에 없습니다. 본전 뽑으려고 오래 머무는 건 아니고, 매일 올리는 여행기 때문에 세 시간은 기본. 진상일까요? 아닐까요? 한국 사람 천 명에게 물으면 칠백 명은 진상이다라고 할 듯.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조지아 사람들은 하지 말라는 말을 참 안 한다. 물건을 안 사도, 식당에서 생수만 시켜도 딱히 정색하지 않는다. 쿨내 진동한다. 안 살 거면 꺼져가 아니라, 안 사는구나. 안녕. 이런 느낌?
거리가 엄청 깨끗하다. 못 느꼈다. 우중충한 건물들이 많아서, 그냥 지저분해 보였다. 매일 누군가가 빗자루를 들고 나와 쓴다. 개똥 같은 거 말고 쓰레기가 길바닥에 나뒹구는 걸 본 적이 없다. 조지아 사람은 열심히 쓸고 닦는다. 잔소리는 안 하면서 깔끔 떠는 사람이라니. 정말 섹시하다.
드디어, 드디어 트빌리시에서 맛집 발견. 메스티아에서 만난 살바, 타마다 커플이 추천해 준 식당. 트빌리시 토박이가 강력 추천한 식당은 마스핀젤로(Maspindzelo). 올드타운에 있다. 관광하고 꼭, 꼭 이 식당에 들르시오들. 아자리안 치르불리(Ajarian chirbuli)와 돼지고기 샤슬릭 주문. 아자리안 치르불리는 샥슈카, 혹은 에그 인더 헬과 같은 요리. 토마토를 양파, 치즈 등과 함께 조려서 달걀을 투척하는 중동 요리다. 이게 맛없다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갓 구운 빵을 톡톡톡 찍어 먹으면, 전신이 오그라들 정도로 좋다. 이 집 음식 좀 하는구려. 샤슬릭은 꼬치구이를 말한다. 쫄깃쫄깃 탱탱, 돼지고기 식감은 완벽하고, 완벽함. 화이트 와인은 치난달리(Tsinandali) 로 주문. 잔으로 파는 와인이 많지 않아서 그중 고른 것뿐인데(싼 걸로) 기가 막힘. 더 비싼 와인은 더 맛있다는 건가? 그럴 리가 없음. 조지아는 와인을 차게 내오는 경우가 많다. 화이트 와인은 차게 마시는 게 정석이지만, 레드 와인은 실온에서 마신다. 조지아에선 근본 없이 무조건 차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와인 원조국이라고 다 맞소?) 화이트 와인일 경우 더 제대로 마시는 게 된다. 부가세 12%까지 해서 43라리(만 칠천 원) 씀. 카드로 계산하고, 팁은 따로 더 안 줌. 그깟 만 칠천 원. 나, 돈 더 쓸 수 있소. 우하하하하
재즈가 듣고 싶소. 재즈 카페 Singer로 간다. 평소에 재즈를 좋아하나? 아니다. 트빌리시의 마지막 일요일. 그러니까 재즈.
-언제쯤 공연 시작해요?
-20분 후요.
아, 뭘 또 20분 씩이나 기다리라고 그래? 그냥 나온다. 걷다가 되돌아온다. 연주가 이미 시작됐다. 건너편에서도 다 들리네. 어라? 하나, 둘 자리 차지하고 있는 거야?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듣게? 돈 몇 푼 아껴서 부자 되시겠소. 정말 그래도 돼? 허허, 술까지 사 와서 쳐드시면서? 이런 뻔뻔한 가난뱅이들 같으니라고. 너네들이 그러니까, 그래도 되는 것 같잖아. 나도 잠시 앉아만 볼게. 돈 아끼려는 거 아니고, 금방 갈 거라 그래. 와인에 취기가 돈단 말이야. 졸리다고. 술 더 못 마시겠다고. 너희들은 조지아의 바람이 어때? 살갗에 닿을 때, 나처럼 소름 돋고 그래? 종일 고생했으니 마음껏 시원해지세요. 위로 같고, 선물 같고 그래? 정말 조금만 앉았다 갈 거야. 그런데 너무 멋진 공연이다. 건반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네. 들어가서 맥주라도 한 잔 시킬까? 너무 미안해지려고 한다. 일어서자.
눈이 감긴다. 감기면 숙소 가서 자면 되지. 바르샤바(Warzawa)란 작은 바에 앉는다. 일부러 찾아간 건 아니고, 숙소 가는 길에 있어서, 마침.
-음악 좀 꺼 주세요.
-영어로 말해요.
-음악 좀 꺼 달라고요. 아니면 낮춰 줘요. 친구랑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요.
-손님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어요. 당장 나가요. 술값 안 내도 돼요. 꺼지라고요.
기가 죽은 남자는 술값을 내고, 여자는 술값을 또 받는다. 남자는 어깨가 처져서는 나간다. 오, 멋진 바(Bar)다. 조지아 여자가 아닌 여자, 아프리카 남자, 수염이 굉장히 멋진 남자가 술을 판다. 다리가 하나 없는 사람, 술주정뱅이, 가난한 대학생, 더 가난해 보이는 외국인 노동자, 그 누구보다 꾀죄죄해 보이는 내가 서거나 앉아서 2라리(800원) 차차(조지아 브랜디)를 마신다. 테킬라를 마시고, 와인을 마시고, 칵테일을 마신다. 나는 목발을 짚고 온, 다리 하나가 아예 없는 남자를 조심, 조심 본다. 그는 술 한 잔을 받아서 나간다. 문밖에도 술손님은 가득. 그리로 가서 섞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니 다른 나라에서도 목발을 짚고 혼자 온 술손님을 본 적이 없다. 불편하니까? 이상하게 볼까 봐? 이름이 왜 바르샤바일까? 폴란드에 가면 죄다 이런 술집일까? 사장이 폴란드 사람? 천 원도 안 되는 술 메뉴가 이리도 많다니.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지만, 오늘부터 아는 사람이 된다. 나에게 아무도 말을 안 걸어준다. 삐져서 나온다. 내가 말을 먼저 걸었어야지. 그럴 배짱은 있는데, 술이 길어질까 봐. 내일도 열심히 놀아야 하거든. 작정하고 먹고, 마신 하루다. 내가 아름답다. 차곡차곡 닳아가는 시간을 명심한다. 이곳이 과거로 빨려 들어갈 것임을 명심한다. 이 조바심은 옳다. 초조하다. 한밤을 강타하는 바람은 또 미친 듯이 시원하다. 조울증 환자처럼 오르고, 내린다.
나는 죽는다
나는 지금 죽지 않았다.
감사하면 된 거다. 나는 멀쩡히 살아서 트빌리시의 밤을 걷는다. 나는 축복이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글로 우주 끝까지 닿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우주 끝에 독자가 있죠. 동네 도서관에 제 책이 있나요? 없다면 추천해 주실래요? 방콕 갈 때,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 꼭 들고 가세요. 방콕이 두 배는 더 재밌어집니다. 세 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