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 여행이 서서히 끝나가네요

가슴이 철렁, 여행이 끝나가요. 심장이 두근, 집에 가요!

by 박민우
20190811_124826.jpg 근사하죠? 네, 제가 이런 곳에서 묵고 있습니다. 히히

'아오.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집에 다시 기어들어온 거냐고.'


마테네 집은, 이전에 며칠 묵었어요. 위치는 좋아요. 약간 산동네지만 어엿한 중심가고요. 산동네인 것도, 좀 허름한 것도 저는 되려 좋았어요. 진짜 조지아 사람들과 사는 느낌이니까요. 미리 삼일 치를 현금으로 더 냈어요. 어쨌든 트빌리시에서 비행기를 타니까요. 며칠은 머물러야 하니까요. 조지아를 다 돌고 와서 묵게 해달라고 했죠. 현금으로 내면 사실 집주인이야 좋죠. 에어비엔비(Airbnb)로 방값 내면 수수료 떼 가잖아요. 그런데요. 돈을 더 달래요. 8월은 성수기라서요. 좀 얄미웠지만 줬죠. 웬걸요? 그 후로 방이 안 나가네요. 찾는 사람도 없나 봐요. 사실 다시는 안 오려고 했어요. 새로 에어비엔비를 시작한 집이라서요. 대놓고 오래 머물기를 바라더라고요. 그래서 삼일 묵겠다고 했더니, 방값 더 내라니요? 얄밉잖아요. 그래, 그 돈 갖고 잘들 사시오. 마음 접었더랬죠. 저도 맘이 바뀌더라고요. 트빌리시로 돌아갈 때가 되니까요. 물어나 보자. 손님이 이미 있다면, 맘 편히 딴 방 알아보려고 했어요. 계획하고 여행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미리 날짜를 정하지는 않았고요. 손님이 차면 전혀 상관없으니까, 방이 비면 재워달라고 했어요. 못 머물게 되더라도, 드린 돈 편히 쓰라고 말해 놓았어요.편히 지내다 가라고 메시지가 왔어요. 고맙게도요. 대신 안방을 쓰래요. 손님방은 잠가져 있더라고요. 온 가족이 여름 별장으로 떠났어요. 안방엔 에어컨도 없지만요. 조금은 더 어수선하지만요. 좋더라고요. 일단 방이 크고요. 이웃 할머니가 오셔서요. 침대 시트도 함께 갈았어요. 찜찜할 뻔했는데, 쾌적한 잠자리로 대변신이 되더군요.


내가 미쳐요. 진짜

문제는 샤워기인데요. 갑자기 샤워기 호스가 찢어지고, 물이 이리저리 새는 거예요. 제가 잡아당기길 했나요? 칼 들고 와서 썰기를 했나요. 저는 물만 틀었을 뿐이죠. 이런 싸구려 샤워기 때문에 제가 현행범으로 몰리게 생겼어요. 까르푸 마트에 갔더니, 샤워기는 안 팔더라고요. 어디에서든 사긴 해야겠어요. 사실 선물로 고쳐주고 싶어요. 일부러 찢어진 샤워 호스 옆에 두고요. 생색내야죠. 전 생색 못 내면 착한 일 안 해요. 못해요. 무슨 재미로 착하게 살아요? 까르푸에 간 김에 화이트 와인도 몇 병 사요. 와인은 한 병만 면세가 된다면서요? 5천 원 짜리 와인은 세금을 얼마 내야 할까요? 이젠 정말 떠나네요. 얼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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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크메룰리 먹어 본 재벌이 얼마나 되겠어요? 게다가 시간은 제가 더 많음요. 인생 승자 여기 있소. 껄껄껄


니콜라, 다리안과 갔던 식당에 혼자 다시 갔어요. 멜로그라노(Melograno)란 식당이요. 저녁이라 세트메뉴가 없으니까요. 가격은 제법 해요. 치크메룰리(chkmeruli) 치킨이 20라리(8천 원) 더라고요. 닭은 반마리를 넣어요. 일단 닭을 팬에서 노릇노릇 구워서 우유로 끓여요. 마늘 잔뜩 넣고요. 특이하죠? 까르보나라랑 비슷한 맛이 나요. 빵을 자작자작 하얀 국물에 한 번 찍어먹고요. 와인 한 잔 해보세요. 특히 화이트 와인이랑 합이 좋아요. 풍부한 우유맛, 새콤, 깔끔 와인 맛. 각각이 가진 맛보다요. 함께 먹는 맛이 백 배는 좋아요. 이 요리가요. 맛집이 별로 없어요. 조지아 사람들한테 맛집이어도요. 우리한테는 좀 어려워요. 그들에겐 맛있고, 우리에겐 과하달까요? 닭을 왜 우유랑 끓였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 겉도는 경우가 많아요. 멜로그라노는 제대로네요. 마늘향, 소금 맛이 닭에 제대로 뱄어요. 닭은 좀 뻑뻑하지만요. 간도, 양념도 더하고 뺄 게 없어요. 조지아 대표 요리인 치크메룰리를 즐기기엔 딱이네요. 호텔 식당인데요. 추가로 내는 봉사료, 부가세가 없어요. 이것도 놀랍죠. 제대로 된 요리를 본전 생각 안 나게 내놓는 곳이에요. 일부러 갔어요. 여러분께 맛집 제대로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없는 돈에요. 맛에 환장해서 간 거 아니라니까요. 알아 주실 거죠?


20190812_193237.jpg 내가 아프면 너네가 치료해 줘야지. 인생 사진 찍어 줬잖아, 대신!

다리안과 니콜라는 쿠타이시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제가 추천해 준 숙소에 문제가 생겼대요. 멀쩡하게 방을 예약했더니, 캠핑장이라면서요 텐트를 가져오라 했대요. 제가 그 숙소를 추천해 준 이유가요. 메스타이에서 만난 리카르도란 이탈리아 남자 때문이 거든요. 그 친구가 쿠타이시 숙소 사장이기도 해요. 진짜 자상하더라고요. 다른 여행자들을 인솔해서 산을 타고 내려온 길인데요. 저한테 정보도 많이 주고요. 맛집도 데려가 주고요. 검색해 보니 숙소 평도 좋더라고요. 쿠타이시에 갈 거면 거기서 머물러라. 그랬는데요. 이 사달이 났어요. 그래서 다른 숙소에 머문대요. 제가 얼마나 화끈거리던지요. 원래 가려던 프로메테우스 동굴도 포기하고요. 쉬고 있대요. 니콜라가 배탈이 나서요. 누워 있대요. 그렇게 쉬다가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날아가요. 이 아이들은 왜 그랬을까요? 방값 아낀다고 맨날 만 원 방만 알아봐요. 둘이서 만 원에 잘만한 곳이 얼마나 되겠어요? 저보다 더 짠돌이들이에요. 그런 놈들이 기어이 저녁밥, 아침밥을 자기네 카드로 긁어요. 공부하는 학생 주제에 말이죠. 그래요. 제가 거지처럼 보인 죄죠. 누가 봐도 불쌍해 보이나 봐요. 이 아이들은 집은 좀 잘 사는 것 같더라고요. 우린 욕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죠. 아무리 가져도요. 더 가지려 한다. 그러니까 얼마나 갖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가진 걸 우선 쓰는 게 중요하다. 꼰대 아저씨인 제가 개똥철학을 아이들에게 풀어요.


-그래도, 최소한은 가지고 있어야지.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


다리안은 제가 치료비 없이 끙끙대다 죽을까 봐 걱정이에요. 교보생명 매달 십만 원 보험료를 내고 있단다. 제가 그 말을 다리안에게 안 했군요. 제 주제에 상당한 보험료를 내고 있죠. 그게 얼마나 보장이 되는지는 잘 몰라요. 그냥 그 정도 내면, 대충은 보장이 되겠지 해요. 누군가에게 불쌍해 보인다는 슬픔보다는, 누군가에게 내 존재가 애틋하다는 느낌이 좋아요. 그래야죠. 타고난 관심 종자인 저는, 그렇게 걱정도 좀 끼쳐가며 살래요. 어딘가에서라도 꼭 무사해야 해. 그런 바람이 저라니요? 얼마나 따스해요. 여러분도 제 글 읽으면서, 가볍게 바라 주세요. 제가 무사하도록. 제 글을 매일 읽을 수 있도록요. 저는 한결 따스해져서는요. 세상을 저벅저벅 다닐게요. 쓸게요. 요즘 글 쓰는데 목매느라, 눈도 나빠졌어요. 눈도 덜 침침해지도록요. 3초만 바라 주세요. 그 3초가 제게 블루베리가 되고, 루테인이 될 테니까요. 오늘 밤에는 비행기를 타요. 매일 일기를 쓰잖아요. 8월 15일 일기는 어디서 쓰게 될까요? 카타르 도하에서 두 시간 기다려요. 그때 쓸까요? 쓸 수 있을까요? 마음이 진하면, 닿을 테니까요. 어떻게든 닿을 테니까요. 진하게 우려낸 마음으로 어딘가에서 써볼게요. 저의 코카서스 여행기가 서서히 끝나가요. 세상에! 이런 날이 결국 오는군요. 마지막 만찬을 즐기러요. 어머니께 드릴 뭐라도 사러요. 나가 볼게요. 아이고, 마음이 급하네요.


PS 매일 일기를 써요.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글로 저를 비우고, 글로 지구 모든 이들에게 닿고 싶어서요. 혹시 동네 도서관에 제 책이 없다면, 추천해 주실래요? 저의 글이 한결 넓게 퍼지겠네요. 방콕에 가시나요? 방콕 필독서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도 데려가 주세요. 방콕이 이리 재밌었나 싶어지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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