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내내 나를 활활 태우고 있어요
광주 양동 시장을 지나서요. 지금은 금남로 이디야에 있어요. 3,700원 흑당 밀크티 레귤러를 시켜요. 버블티를 시킬까 하다가요. 건더기가 안 당기네요. 오우. 달아요. 목에 걸리는 게 없네요. 좋네요. 후우우. 드디어 한숨을 쉬네요.
어제는요. 애오개역에서 만남이 있었어요. 방콕에서 시작된 인연이죠. 방콕 한국 국제학교에서 강의를 했어요. 저의 책, 저의 삶에 남다른 지지를 해주던 교사 부부가 방콕에서 목포로 돌아왔어요. 저와의 만남을 위해서, 그때 국제학교 선생님들을 긴급 소집해요. 시간 때가 맞는 몇몇 분이 더 합류해요. 애오개역 행화탕 카페에서 만나게 됩니다. 오늘따라 눈이 더 침침해요. 20분 정도 시간이 남네요. 지하철 역 거울을 보면서요. 열심히 눈을 깜빡여요. 거울 속 제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네요. 인간 꼴이 되려면 2주는 있어야겠다. 여행 직후의 까맣고 찌든 모습은, 연탄재 같군요. 오징어 조림 같네요. 그냥 노화일 뿐이죠. 여행은 핑계일 뿐. 20분 동안 열심히 눈을 깜빡이다 가자. 피야 돌아라. 실핏줄아 튼튼해져라. 방콕에서 만났던 또 다른 선생님에게 이런 꼴을 들키고 맙니다. 아오, 저는 왜 굳이 지하철 거울을 택했을까요? 화장실에서 했어야죠. 행화탕 카페에서요. 저는 열심히 제 여행 이야기를 풀어요. 저지만 제가 아니기도 한순간이죠. 거울을 보며 심란해하던 저와는 달라요. 눈에 힘이 들어가고, 제 목소리는 또렷해지요. 약간의 초능력자가 돼요. 세 시간의 완전한 몰입. 그리고 다시 뛰어요. 용산역에 KTX를 타요.
-작가님, 강의 자료를 이메일로 좀 보내 주실래요?
메시지가 왔네요. 아이고, 숨 좀 쉽시다. 강의 도중에 낮술을 좀 했어요. 신나게 저의 에너지를 썼어요. 이번 여행이 제게 준 성장에 대해서요. 코카서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요. 노트북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조지아의 풍경을 보여줬죠.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요. 가까이 보려고요. 다 큰 어른들이 고개를 빼고, 눈빛을 빛내요. 제가 어떻게 신이 안 날 수 있겠어요? 내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죠. 활활 타는 것 같았죠. 기차에서 눈 좀 붙이려고 했죠. 쉴틈이 없군요. 다시 노트북을 꺼내고요. 다음날 활용할 강의 자료를 모아서요. 이메일로 보내요. 와이파이가 느려서요. 핸드폰 데이터를 써요. 눈이 감기네요. 세상 몽롱하네요. 나의 시간은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채로, 흘러요. 광주 송정역에는 조서방이 나와 있네요. 오늘 조서방네서 자요. 그냥 제가 조서방이라고 불러요. 조서방, 김윤경 부부. 안 그래도 되는데, 이리 마중까지 나오네요. 역시 방콕 인연이죠. 방콕에서 머물 때, 밥 한 번 먹자고 연락이 왔죠. 독자와 작가로 만났어요. 다음날 KDB 생명 강연이 있어서요. 광주에서 자기로 한 거죠. 이제는 누구보다 편한 사이가 됐어요. 눈치를 많이 보는 제게 고마운 존재죠. 반겨주고, 재워주는 걸 너무 잘해요. 제가 안테나를 바특 세우고 눈알을 굴려도요. 이상하게 편해져요. 이 집 부부나 저나 기가 약해서일까요? 어디서 사 왔는지 삼겹살은 말도 못 하게 부드럽고요. 고기 하나 구워 먹겠다고 그 귀한 명이나물까지 사 왔네요. 셋은 중학생처럼 삼겹살을 퍼먹어요. 비싸게 산 텐트로 하동에서 캠핑한 이야기를 들어가면서요. 캠핑 장비로 돈을 옴팡 썼군요. 내년까지는 여행 금지. 김윤경이 슬슬 변심해서 새 여행을 꿈꾸는군요. 저와 조서방이 한편이 되어서요. 꿈도 꾸지 마라. 약속은 약속. 1년은 한국에만 있어라. 그리고 조지아에 가라. 김윤경에게 반격하죠.
울컥
명이나물에 삼겹살을 씹다가요. 울컥해져요. 광주 부부, 목포 부부가 저를 울컥하게 하네요. 참, 목포에서 서울이 어디라고 오늘 그 자리까지 왔을까요? 선생님들을 모으고, 자리를 만들었을까요. 아침 기차로 서울까지 와요. 밤기차로 다시 목포로 가요. 차비만 해도 둘이 이십만 원이에요. 밥을 사 먹이고요. 살며시 봉투도 하나 더 찔러 줘요. 빚도 있다는 부부가요. 어쩌려고 이렇게 큰돈을 쓰는 건가요? 저를 위해 얼마를 쓴 건가요? 소중한 일요일, 황금 휴일에요. 저는 더 잘 살아야 해요. 더 열심히 써야 해요.
아침에 광주 KDB생명 24층에서 설계사 백 명과 만났어요. 방콕 여행이 얼마 안 남은 분들이죠. 여러 번 가본 분들에게도 방콕이, 태국이 궁금해질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여행 도사들에게 설렘을 줘야 하죠. 노란 망고가 아닌 파란 망고 먹는 법. 방콕의 야경을 새롭게 만나는 루프탑과 시큼해서 뱉고 싶어 지는 발효 소시지 싸이 크록에 대해 말해요. 랍스터보다 맛있는 큰 징거미 새우와 태국 사람들의 식습관에 대해 이야기하죠.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라서요. 제가 어설퍼 보일까 봐요. 제 이야기가 시시할까 봐요. 전날부터 잠이 안 오더라고요. 막상 마이크가 손에 쥐어지면요. 그 전의 나는 참으로 쓸데없는 존재가 돼요. 미래도 과거도 없는, 가장 완벽한 지금이 되어서 제가 가진 것들을 써요. 몽땅. 그러고 보니 이 인연도 방콕이군요. 저와 방콕에서 식사를 했던 독자가 KDB생명에서 일해요. 이렇게 저를 연결해 줬어요.
연결
연결이 연결이 되어서, 저를 돕고 있죠. 가진 게 없는 저는요. 정말 정말 바닥이다 싶을 때, 세상을 향해 손을 벌려요. 돈 좀 벌게 해 주세요. 용기를 내죠. 용기를 내기까지, 용기를 내고 싶지 않은 제가 말리고, 딱해해요. 마침내 용기를 내고, 용기에 답한 이들과 마주하게 돼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한심한 자존감이 저를 괴롭힐 때가 있어요. 어제, 오늘 제가 만난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의 눈빛이 콕콕콕 제게 박혀요. 어찌나 강렬한지 몰라요. 저의 여행이, 저의 글이 쑥쑥 자라도록 물을 뿌리고, 거름을 줘요. 잘 자라고 있나? 제 연약한 이파리가 조금이라도 싱싱해지기를 바라며 마음을 쓰고, 시간과, 돈을 써요. 어제오늘 저를 쏟아서요. 저는 기분 좋게 텅 비었어요. 이렇게 제가 써 내려간 문장을 눈으로 함께 좇는 여러분들의 힘이 유난히 선명하게 전해져요. 얕고, 가벼운 사람에게 과분하게 주셨어요. 이미 이루었어요. 저는. 매일 텅비우고, 채워지죠. 이리 이루었어요. 앞으로 저를 만날 모든 분들에게 미리 설렐게요. 매일매일 타오르다가, 폭발하는 그 날을 기다릴래요. 기대해 주세요. 기다려주세요. 당장은 한숨 자야겠어요. 훨훨 날고 싶은 따끔한 8월의 오후네요. 여기는 광주, 여기는 이디야입니다.
PS 매일 글을 써요. 저만의 오체투지 방식입니다. 달팽이의 속도로, 지구 끝에 다다르는 상상을 해요. 저는 달팽이, 독자가 지구 끝입니다. 천천히, 끝까지 닿겠습니다. 동네 도서관에 제 책이 없다면, 제 책들을 추천해 주실래요? 아참,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라는 기가 막힌 책이 있어요. 방콕 여행 갈 때 데려가세요. 방콕 여행이 두 배, 세 배는 즐거워지실 겁니다. 네, 제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