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는 고통, 슬픈 유튜버 탄생 설화

이까짓 게, 엄청 괴롭고, 귀찮음. 이까짓 게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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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용 사진 재촬영. 원래는 동영상 중에 캡쳐해야 하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요.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제가 누군가요? 박민우라고요. 박민우. 유튜브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아, 이건 뭐 절 위한 거네. 자신감 뿜뿜했죠. 제가 유튜버가 되려고 태어난 건 아닐까요? 너무 늦은 거 아니냐고요? 너무 늙은 거 아니냐고요? 에이, 저를 너무 모르시는군요.


2년 노예 약정이지만 갤럭시 노트9을 가지고 있죠. 카메라는 이거면 끝이죠. 동굴형으로 울리는 제 목소리 잘 담기라고 핀 마이크, 수전증이지만 흔들림 없이 찍으라고 짐벌, 공중샷으로 미쳤다리 영상미를! 드론 카메라. 대부분 싸구려지만, 카메라 삼발이 나사는 벌써 나갔지만, 이 정도면 구색 제대로 갖췄죠? 장비요? 좀 후져도 돼요. 후져야 해요. 그래야 제가, 저의 능력이 빛을 발할 테니까요.


돈? 유명세? 건강?


아니죠. 행복의 조건은 그게 아니죠. 내가 잘하는 거, 그걸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거죠. 나는 노는 것뿐인데, 사람들이 즐겨주는 거죠. 반겨주는 거죠. 아니, 제 동영상이 그렇게 좋아요? 그렇게 재밌어요? 더 재미난 건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요. 이런 걸 해도 될까? 그런 걱정을 왜 하나요? 욕먹으면 지우고, 칭찬받으면 쭉 그대로 갈게요. 엉뚱하고, 신박한 동영상 기대하세요.


- 찍지 마세요. 지워요. 어서


지하철에서, 기차에서, 마트에서, 시장에서 다들 왜 그리 정색하세요? 과일 찍어도 안돼요? 인물 촬영 아닌데도요? 팔도 도시락 라면이, P&G 주방 세제가 그렇게 큰 비밀인가요? 나도 상식 있고, 배려 아는 사람이에요. 너무 까칠하시네요. 공산주의 시절 그렇게 찍어가서 당 간부에게 찌릅디까? 배급 안 나오고, 쫓겨나고 그랬나요? 나한테만 이러는 건 아니죠? 공평하게 까칠한 거죠? 나한테만 까칠한 거면, 상처 받아요. 제가 그쪽으로 두부 멘털이라서요. 알겠어요. 알겠어요. 안 찍을게요.


그래요. 어려울 줄 알았어요. 날로 먹으려 하지 않을게요. 제가 재미있어서 하는 건데요, 뭐. '재미'를 위해 희생도 있어야죠. 아무런 장애물이 없으면, '재미'도 별로더라고요.


찍어 놓은 동영상을 편집해야 하는데. 어떤 프로그램을 써야 할까요? 대세는 어도비 프리미어더라고요. 공짜가 아니네요? 어둠의 경로로 다운로드하는 건 안되죠. 암, 안되고 말고요. 저, 창작하는 사람이라고요. 그런데 매달 내야 하네요? 만 원이 넘네요? 그나마 싼 거고, 포토샵이나, 인디자인(책 출판 프로그램) 등등을 일괄 구매하면 6만 원이 넘네요? 그것도 1년 약정이고, 달달이 내면 93,000원이네요? 매달 93,000원요? 1년이면 백만 원이 넘네요? 어도비님. 거대하고, 유능한 소프트웨어 어도비 사장님. 사장님이 맞아요. 옳아요. 소프트 파워, 지적 재산. 거저 나오는 거 아니죠. 투자한 돈은 얼마나 많았겠어요? 저는요? 책 한 권 팔면 천 오백 원 남는 저는요? 도서관에서 제 책 돌려 읽는다고 십 원 하나 챙겨 주나요? 세계 테마 기행에서 재방송 나가면 백 원이라도 입금되나요? 힘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몫을 챙길 수 있죠? 제가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저는 도서관에서 더 널리 읽히는 게 좋아요. 방송에서 노출돼서 책 한 권이라도 더 팔리면 그게 좋아요. 그렇게라도 닿기를 원해요. 그냥 어도비 프로그램이 비싸서 해본 푸념이었어요.


-아이. 제길 때려치운다. 내가.


동영상 편집을 해본 적이 있어야죠. 찍어 놓은 동영상에서 필요한 부분만 오리고, 그걸 앞에다 붙이고, 뒤에다 붙여요. 이것만으로도 하루 가더군요. 더빙을 해요. 꼭 할 필요는 없지만,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사람 없는 곳에 숨어서, 목소리를 녹음해요. 끝이라고요? 무슨 말씀! 자막 달아야죠. 나 혼자 산다, 정글의 법칙. 자막 없이 한 번 보고 오세요. 오지게 재미없죠? 자막 없으면 채널 돌아가요. 유튜브는 더 심하죠. 재미난 동영상이 널렸잖아요. 그래서요. 자막도 달아요. 자막이 술술 달리면 좋으련만, 화면을 클릭하면 코딱지만 한 글씨 창이 나오고, 그걸 키우고, 거기에 글자를 넣다가, 틀리면 또 수정. 프로그램이 무거워서인지 수정은 버벅버벅. 오늘 내로 속 터져 죽을 수도 있겠다. 그 마음으로 자막 달았어요.


아, 이젠 끝이다.


끝인 줄 알았어요. 썸네일 아세요? 요약 화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네요. 무심코 클릭하지만, 사실 자극적인 문구나 사진에 홀려서 하는 경우가 많죠. 책으로 따지면 표지라고 해야겠네요. 이걸 또 따로 작업해야 해요. 동영상 화면을 캡처해서 포토샵에 올리고요.


-포토샵?


네, 포토샵이 필요해요. 11,000원. 매달 11,000원을 또 지불해요. 캡처한 사진을 포토샵에 올려서요. 글씨를 올려요. 글씨에 입체감을 주려고요. 오른쪽 아래 눈동자 아이콘을 클릭해요. 그러면 '획'이란 메뉴가 떠요. 앗, 획을 잘못 넣었어요. 정정해야 해요. 그런데 '획' 나오는 메뉴가 사라졌어요.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요. 사진 올리고, 글자 올리고, 획으로 음영을 넣는 것까지요. 썸네일 작업만 여덟 시간 걸렸다고요. 획 메뉴는 어디로 간 걸까요? 우주선에 탄 것 같아요. 어도비는 필요한 메뉴는 계속 추가만 하나 봐요. 평생 이렇게 복잡하고, 거대해질 건가 봐요. 사막에 떨궈진 느낌이네요. 집에 가고 싶어요. 집으로 갈 길은 사라졌어요. 사막이니까요.


-X발, 못 해 먹겠다. 안 해, 안 해.


노트북을 덮어요. 안 합니다. 못 합니다. 유튜브가 저를 구원할 동아줄인 줄 알았어요. 그 동아줄 끊습니다. 굿바이 동아줄. 깨끗한 포기, 나를 위하자. 나만 생각하자. 저는 자유롭겠습니다. 극도로 흥분한 저는, 바깥으로 뛰쳐나갑니다. 저의 분노가 이제 저를 상처 줄 차례입니다.


-KHIDI


춤을 추고 싶습니다. 미치고 싶습니다. KHIDI 나이트클럽으로 달려갑니다.


PS 글을 올리면 책 한 권은 더 팔리겠지. 제 방식의 오체투지. 영혼에 닿을 때까지, 쓰겠습니다. 최근엔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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