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완벽한 천국이 있을까요?
아침은 집 앞 카페에서 시작합니다. 저를 초대해 준 태국 형님은 분주해요. 나무판자가 싸게 나왔다면서요. 그것부터 좀 사러 가야겠다고요. 당장 쓸 것도 아닌데요. 사두기부터 해요. 저렇게 부지런해야 잘 사는데 말이죠. 미안한데 혼자 있을 수 있냐네요. 아이고, 큰 용기 내서 혼자 있어 보겠사옵니다. 어서 일 보세요. 제발 일 좀 보시라고욧. 호젓한 시간입니다. 덩치 큰 개들이 쫓아와서 살짝 쫄았던 것만 빼면, 아주 근사한 5분 산책이었습니다. 꽤나 시골인데도 5분만 걸으면 이런 카페가 있네요. 이젠 시골과 카페가 어울리는 시대가 됐어요. 태국도, 우리나라도요. 두 명의 남자 보이시나요? 독일인이더군요. 독일말을 쓰는 오스트리아 사람, 스위스 사람일 수도 있고요. 지금 뉴욕에서 교수를 하는 제 대학 동기는요. 독일을 그리워하더군요. 누구나 총을 가질 수 있는 미국이, 아이의 아빠로서, 불특정 다수 앞에서 강의를 하는 입장에서 충분히 위협이 되지 않겠어요? 사실 저는 뉴욕이란 멋진 도시에서 뉴욕의 대학생을 가르치는 친구의 모습이, 꿈처럼, 동화처럼 보이기만 했거든요. 뉴욕이냐? 독일이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친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독일을 택하겠더군요. 이 두 명의 남자는 이 시골 깡촌에서 사는군요(태국인 아내와 결혼해서 산다는군요). 태국 전역에, 동남아시아 전역에, 아니 전 세계 구석구석에 독일인이 참 많죠. 그 좋은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그 나라가 싫어서, 아니면 더 좋은 곳이 있어서 많이들 떠나요. 더 좋은 나라는 없어요. 살다 보면 고개를 도리도리 젓게 돼요. 외삼촌이 지금 라스베이거스에서 살아요. 어머님, 이모 둘, 이모 딸. 총 네 명이서 라스베이거스로 떠납니다. 삼촌이 차를 몰고 LA 구경을 갔대요. 시내 전체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교포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대요. 어머니 손을 꼭 잡으면서. 미국에 절대 오지 말라고요. 한국 좋은 줄 알라면서요. 미국에 이민 와서 매일매일 후회 중이랍니다. 그런 미국은 또 멕시코, 과테말라 사람들이 목숨 걸고 국경선을 넘는 나라죠. 아니 전 세계인들이 영혼까지 팔아서라도 미국 영주권, 시민권을 받고 싶어 하죠. 어디가 정답일까요? 정답이 있을까요? 그럴 리가요? 헬조선인 건 맞아요. 성장세가 둔화된 나라니까요. 직장을 구하기도, 개천에서 용이 되기도 더, 더 어려운 시대가 됐어요. 우리나라만 아니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저도 젊을 때 늘 했어요. 좆도 아닌 것들이 뭐나 되는 양 으스대고, 갑질이나 하는 지옥이었죠. 아파트 평수로 아이들까지 계급을 나누고요. 군대에서는 매일 잠을 안 재우고 얼차려를 하는 나라였죠.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죠. 내 집 장만은 어림도 없죠. 헬조선 맞죠. 저도 뭐 한국에 오래 머물지 않잖아요. 대부분 더 잘 사는 나라는 낫겠지 하잖아요. 스웨덴에 절대 오지 말라는 한국인 유튜버 동영상이 있어요. 어릴 때 다른 나라에서 많이 살아본, 이미 준비된 코즈모폴리턴인데도 스웨덴을 힘들어하더군요. 특히 날씨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힘들대요. 일 년의 절반이 어둑어둑, 우중충해서 우울증이 와버렸답니다. 집 안에 갇혀서 6개월을 보내요. 그래요. 개인차죠. 친구 만들고, 동호회 찾아가는 사람들에겐 덜 끔찍한 나라겠죠. 아뇨, 즐거운 나라일 수도 있죠. 안전하고, 복지 잘 되어 있는, 대신에 물가는 우라지게 비싼나라지만요. 아세요? 잘 사는 그 어떤 나라들보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외식을 훨씬 많이 해요. 식당에서 해산물을 주문하고, 길에서 볶음국수를 먹고, 어딘가에 앉아서 커피를 들이켜는 일상은 동남아시아가 훨씬 쉬워요. 이곳의 서민들에겐 커피값 역시 비싸긴 하죠. 그래도 마셔요. 삶의 위기감을 훨씬 적게 느껴요. 극단적으로 말하면요. 돈 없으면 밀림에 들어가 과일 따먹어도 먹고살 수 있으니까요. 크게 아프면 어떻게 해요? 그때는 선진국이 좋겠죠. 요양원도 잘 되어 있으니까요. 그게 장점이라 생각하면 선진국이 좋죠.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도 늙을 텐데, 아플 텐데. 그런 걱정은 안 해요. 그런 걱정은 늙어서 하는 거죠. 아플 때 하는 거죠. 당장은 있는 돈으로 먹고, 놀아요. 각자에게 맞는 나라가 있을 거예요. 확실한 건, 그 어떤 나라도 헬조선의 완벽한 대안은 아니에요.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한국인은 백이면 백, 한국에 오고 싶어 하더군요. 그런데 돈이 없어요. 잘 사는 나라에서 노인이 되어도요. 주머니에 쌈짓돈이 없어요. 그냥 집 한 채, 한 달 쓰기 팍팍하지 않은 연금 정도죠. 빚이 없는 정도지, 마음껏 여행 다니는 노후는 꿈도 못 꿔요. 돈이 없어서, 한국에 못 돌아와요. 그곳에서 그냥 늙어서 죽어야 하죠. 그들은요. 공감의 가치에 절실해하더군요. 한국말로 북적이는 세상 속에서 늙고 싶어 하더군요. 완벽하게 섞이지 못하는 나라에서 뭉텅 썰려진 상실감이 커 보이더군요. 완벽한 천국이 없다 뿐이지. 자기에게 맞는 천국은 왜 없겠어요? 저에게 태국이 있듯이요. 여러분에게 맞는 곳은 분명 있습니다. 맞는 나라를 찾아보세요. 물론 그 나라가 자신이 태어난 한국일 수도 있어요. 한국을 아예 경우의 수에서 뺄 필요는 없어요. 충분히 좋은 나라입니다. 변화를 기대할 수 있고, 국민의 의사가 전달되는 나라입니다. 그거 자체가 남의 일이고,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나라들이 전 세계 150개국 이상입니다. 제가 애국자가 못 되기 때문에, 더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어디서든 행복해질 수 있어야, 어딜 가도 행복해요. 참, 이런 당연한 말로 마무리를 짓는군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주 끝까지 닿으려는 엉금엉금 한 걸음입니다. 가까운 도서관, 학교에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세요. 그렇게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방콕이 더 빛나고, 맛있고, 기품 있는 도시가 되는 마법의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