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한 번도 안 한 사람이 여행 노다지입니다.
저라고 이럴 계획은 아니었죠. 점심 먹기 전까지는 글만 쓰자. 음악만 듣기. 유튜브로 손이 가질 말았어야 해요. 추천 영상으로 일본오쿤 유튜버 동영상이 올라왔네요. 일본 배우와 한국 유튜버가 같이 서울 온 이야기네요. 공항에서부터 배우가 촌티를 팍팍 내는군요. 여행 안 한 티가 어찌나 나는지요. 아주 유명한 배우는 아닌가 봐요. 공항 복도가 길다고, 공항 화분이 예쁘다고, 엘리베이터가 메탈릭하다며 호들갑을 떠네요. 저는 이 남자에게 충격받아요. 그게 보이다니요? 저에겐 안 보여요. 어떤 공항의 화분도 보이질 않죠. 엘리베이터가 메탈인데, 그게 메탈릭하다고 놀라다뇨? 삐까뻔적해 보였나 보죠. 사촌형님 조카들이 방콕에 왔을 때요. 에스칼레이터가 빠르다고 놀라요. 에스칼레이터에 속도란 게 있었나요? 빠르고, 느린 에스칼레이터로 나뉘기도 하는군요. 그때도 저는 충격을 받았죠. 저는 거세된 여행자로군요. 느껴 마땅한 감정을 그렇게 놓치며 살죠. 최근에야 제가 사는 단지 입구 패밀리 마트가 사라진 걸 알아요. 그 자리에 샌드위치 가게가 새로 오픈했죠. 샌드위치 가게가 있다는 것만 인식해요. 몇 달 동안 샌드위치 가게를 가볼까? 이 생각만 하다가요. 어제, 저기에 패밀리 마트가 있었지? 맞아, 정말 있었지. 그건 없어진 거야? 이제야 궁금해져요. 사라진 게, 사라진 줄 몰라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대체로 멍청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거죠. 맹렬한 속도로 주위가 변하지만, 의미가 없죠. 늘 여행이니까, 새로운 것들이 너무 당연해요. 이미 뻔하거든요. 저희 아버지는요. 방콕 여행 오셔서 그렇게 전단지를 모으더군요. 신용카드 발급받으세요. 전단지를 나눠주는데요. 일부러 가서 받아 와요. 마트 전단지도 다 챙기고요. 그걸 짐에다가 차곡차곡 쌓아서 집으롤 가져가시겠다는 거예요. 다른 나라 글자 인쇄물이 신기하셨나 봐요. 여행 천재는 촌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생전 처음 본 것들 뿐이고, 그것들에 놀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최고죠. 비행기에서 복도 자리가 좋은 사람(바깥 풍경은 관심 없고, 화장실 가기 편하니까요), 여행보다 입출국 수속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미리 피곤해져요), 숙소 안이 숙소 바깥보다 좋은 사람(호캉스가 최고여). 저 같은 사람은요. 사실 여행이 가성비가 떨어지는 사람이죠. 저라고 처음부터 이랬을까요? 인생 첫 여행지가 괌이었어요. 서브웨이 샌드위치 라이벌인 퀴즈노 샌드위치에서 샌드위치를 시켰죠. 세트 메뉴에 치토스가 있는 거예요. 샌드위치랑 치토스를 같이 먹다니. 햄버거는 프렌치프라이, 샌드위치는 치토스. 이게 미국식인 건가? 그런 거가 궁금하더군요. 호텔 조식을 먹으려고요. 동도 트기 전에 미리 가서 기다렸죠. 시간이 어찌나 안 가던지요. 미제 달걀에 미제 커피 마시니까, 미쿡사람 기분 낭낭하더군요. 얼마나 황홀하던지요. 그땐 미국이 최고였죠. 미국 치즈 꼬랑내는 달콤하고요, 딸기 잼은 설탕보다 달더군요. 아침엔 웃통 까고 뛰어야 하고요, 똥개 말고 족보 확실한 개들만 산책을 나오데요. 경험이 인간을 늙게 할까요? 젊게 할까요? 철학자 크리슈티나 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한 번 읽어보세요. 자기 자신, 자신의 경험, 자신의 지식을 의심하래요. 그것들은 사실이 아니고, '우김'에 가깝답니다. 일리 있게 들리지 않나요? 단골집 음식은 늘 맛있던가요? 그때의 내가, 그때의 요리를 먹어서는 아닐까요? 내 몸 상태가, 내 마음가짐이, 요리사의 몸 상태가, 요리사의 마음 가짐이 늘 다를 텐데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마음으로 가야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사랑해야죠. 그런 사람이 최고의 가성비로 사는 거죠. 오늘 그 동영상을 보고요. 일본 배우에게 어찌나 샘이 나던지요. 저는 이제 아무것도 못 본 사람 하려고요. 호들갑을 오버해서 떨려고요. 표현이 또 사람을 만들어요. 그렇게 오버하면, 오버하는 사람이 되죠. 즐겁자고 여행하고, 먹자고 싸는 거 아닙니까? 매일 세상 신기한 아기처럼 살기. 다짐합니다. 그 아기가 글을 씁니까. 지금까지 썼던 주옥같은 책들은 쌩까고 더 새롭고, 더 젊어져서 기가 막힌 여행기를 쓰고 있습니다. <85일 코카서스> 기대 많이 해주시라는 말씀.
PS 매일 글을 써요. 당신에게 다가가기 위해서요. 그렇게 번지다 보면 지구 끝까지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요. 가까운 도서관, 학교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주세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방콕이 인생 여행지가 되셔야죠. 이 책이 열심히 도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