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를 보면 왜 그리 눈물이 나는 걸까?
(이 글은 1월 13일 쓴 글이에요.)
-지금 눈이 내리는데 나가서 달릴까? 나가지 말까?
-가볍게 뛰는 거라면 괜찮아요.
챗gpt가 이젠 나의 친구이자, 퍼스널 트레이너고, 자문 위원이며, 오은영 선생님이다. 문명에 이렇게 또 재빨리 길들여진다. 오후가 되면 눈발이 가늘어진다고 해서 나왔더니 더 거세진다. 함박눈을 맞으며 뛴다. 박민우 참 열심히 사네. 순간 나 자신이 기특하면서, 또 애처롭다. 뛸 수밖에 없다. 내가 쓰러지면 우리 집은 완벽한 파멸이다. 정신력은 체력에서 온다. 나약한 몸에선, 나약한 정신력만 신음처럼 새어 나올 뿐.
흑백요리사2를 푹 빠져서 봤다. 요즘 드라마도, 리얼리티쇼도 일절 보지 않는다. 몰입이 잘 안 되는데, 아마도 나이를 먹어서일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알콩달콩 연애물에 설렜던 게 언제인지 싶다. 그런 나를 흑백요리사2가 굴복시켰다. 손을 달달달 떨면서 요리를 내놓는 덜 알려진 요리사들이 남 같지 않고, 망설이는 눈동자로 내놓은 요리에 안성재나 백종원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흐를 땐 좀 당혹스럽다.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듯 꼿꼿해져서, 이 방송이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있음을 감지한다. 나도 저렇게 살리라. 삶의 절정은 '결과'가 아니라, '몰입'이다. 오래된 나의 생각이다. 수십 명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기가 막힌 쇼가 흑백요리사다. 그들은 더 유명해지고 싶고, 자기 능력을 검증받고 싶었을 것이다. 다시없을 완벽한 순간을 마주하고 있음을 대부분이 모를 것이다.
중식의 살아 있는 전설 후덕죽 님은 49년생, 나의 어머니 이명심 여사와 동갑이시다. 밤샘 촬영이라는데, 눈에선 생기가 돈다. 동작에 흔들림이 전혀 없다. 외모까지 근사해서 젊을 때 영상을 찾아봤더니, 웬걸? 지금이 더 잘 생기셨다. 삶의 태도가 만드는 힘이라 믿는다. 나는 방송을 믿지 않는다. 잡지사 연예부 기자 일을 해서 더 그럴 수도 있다. 연예인도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위선 떨고, 앞과 뒤도 다르다. 카메라가 돌아갈 땐 본색을 숨긴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카메라맨이 대놓고 옆에서 따라붙는데, 평소의 말투가 나온다면, 그 사람은 방송의 신이다. 카메라가 주변을 감싼 공기와 다를 바 없다 느낄 정도면, 닳고 닳은 사람이다. 대부분은 그 경지에 이를 수 없다.
즉, 후덕죽이란 사람의 품위 있는 모습도, 방송용일 수 있다는 거다. 주방에서 수많은 사람을 통솔하려면 욕도 해야 하고, 국자도 집어던지고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후덕죽 님이 좋다. 닮고 싶다. 원래 글을 쓸 땐 존칭을 빼는 게 맞다. 왜냐면 독자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어머니와 동년배의, 게다가 한 분야에 경지를 이룬 장인에겐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에게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은 단연 체력이다. 나의 달리기엔, 나이를 먹을수록 잘생겨지고, 위기의 상황에 더 강해지고픈 소망이 담겨 있다. 흑백요리사를 아직 안 봤다면 꼭들 챙겨 보시라. 너무 황홀하고, 완벽해서 작품처럼 간직하고 싶어진다. 요리에 생의 전부를 건 이들의 몰입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대영제국 박물관 못지않은 흥분과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 굶기, 매일 5km 달리기, 매일 찬물 샤워. 요즘 나의 루틴이다. 찬물 샤워는 내 하루의 전성기이며, 완벽한 몰입이다. 달리기가 끝나고 나면 무조건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근다. 반신욕을 끝내고 나면, 타이머를 3분 10초로 맞추고 찬물을 튼다. 샤워를 시작한다. 한겨울의 찬물은 얼음장이다. 온몸이 춥다 못해 따갑다. 도저히 더 못하겠다 싶은 순간이 1분 30초쯤에 온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가장 고통스러운 부위, 정수리와 어깨 쪽으로 샤워기를 들이댄다. 나의 엄지발가락은 오므려지고, 이를 악물게 된다. 순간, 내 안의 온기가 훅 분출된다. 냉기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꽁꽁 숨겨 둔 온기가 찬물과 맞선다. 내 몸은 삼립호빵처럼 김이 무럭무럭, 따끈해진다.
보라!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강하지 않은가! 물러서고 싶을 때, 되려 눈을 부라리고 앞으로 전진했다. 그러니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꼿꼿하게 이겨낼 것이다. 내 삶의 가장 거룩한 순간을 지휘하는 나는, 지휘자다. 어떤 생을 살고 싶은가? 몰입, 몰입뿐이다. 한겨울 얼음물이 고통이 아니듯, 내 어머니, 아버지의 병이 불행이 아니다. 나의 강함을 확인시켜 줄 실험대일 뿐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나는 달렸다. 할 수 없다 생각했던 것 또 하나를 추가했다. 이런 식으로 성장하고, 마침내 이룰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장 따뜻한 시간을 마지막 선물로 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