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어쩌라는 거지? 전 이 사람을 몰라요. 본 적이 없어요. 저에게 연락이나, 댓글로 방콕에 온다는 사람이야 왜 없겠어요? 작가님, 혹시 그날 시간 되시나요? 용기 내서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고요. 댓글로 저도 방콕인데요. ㅋㅋㅋ. 이런 식으로 소심하게 흘리는 이들도 있죠. 이 양반은 너무 당당하군요. 이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 이 양반의 페이스북 친구들을 봐요. 오오. 영선이의 친언니구먼. 둘이 같은 신 씨니까 뻔하지, 뭐. 영선이는 딱 한 번 만난 적 있어요. 학교 후배인데요. 책, 그중에서도 시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친구였죠. 인문학 깊이가 상위 1%인 친구였어요. 대화가 참 즐거웠죠. 같은 신 씨니까 언니가 분명하다. 보니까 학교도 같군. 자매가 같은 학교를 다녔나? 이제 알겠다. 동생을 통해서 내 이야기를 들었던 거지. 이 집 식구들은 책을 좋아하니까. 책으로 만난 인연도 실물 인연과 다르지 않은 거지. 그래서 내가 이미 친구인 거군. 이렇게 정리했어요. 그래도 참 난감하더군요. 연락 오는 분들 다 만나지도 못하는데, 돌직구를 어떻게 맞받아 치지? 못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람 차별한다고 욕이나 듣는 거 아닐까? 걱정을 사서 하는 저는, 방콕에 오니 만나 주시오. 단도직입적인 가족을 고민해요. 아는 사람도 아닌데 환영한다는 것도 웃기고요. 제 책을 즐겼고, 책의 저자를 만나고 싶다는 그 마음은 감사하고요. 감사하지만, 감사함에서 끝내도 되잖아요. 아이고, 방콕 잘 있다가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가시오. 이렇게 댓글을 달면 또 얼마나 매정한가요?
-아이고, 선배님. 환영합니다.
저는 댓글로 연기를 해요. 다른 사람들이 봐도, 선배구나. 아는 사람이구나.
-저, 후배인데요.
아오. 저의 연기가 어긋났군요. 영선이와 나 사이의 학번이군요. 사진은 없었거든요. 그냥 아이 둘을 키우는 어머니니까, 영선이와 나이차가 나는 언니일 거라 착각했네요. 94학번이나 95학번이겠군요.
-아니, 음식책을 쓰면서 이렇게 마르셨어요?
새우튀김 텃만꿍이 맛있는 '사보이'에서 우리는 드디어 만나요. 얼굴에 팩도 하고 나갔지만, 역시 저는 말랐어요. 첫인상 도전 실패. 안 말랐다는 소리를 듣는 건 불가능한 몰골입니다.
-저, 영선이가 제 동생이 아니라, 동아리 후배예요. 영화 동아리 돌빛이요.
아, 선후배였어? 성이 신 씨였을 뿐. 저도 영화 동아리 돌빛에 있었어요. 딱 1년만 있었지만요. 그녀가 제게 친밀감을 느꼈던 이유를 알겠어요. 후배, 후배의 남편. 그리고 두 딸, 5학년 지호, 3학년 지수. 비행기에서 밤새 시달렸을 텐데, 엄청 쌩쌩하네요. 짜뚜짝 시장도 다녀오고, 짐 톰슨 하우스도 더녀왔대요. 수영도 했다네요. 지호, 지수는 방콕에 온 게 너무 신나요. 그것만으로도 참 예쁘군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제 조카 리안이도 또래인데요. 이 녀석은 게임이 최고예요. 아르헨티나 놈답게 축구도 좋아하지만요. 여행 자체를 감사하지 않더군요. 게임이 최고고, 축구가 그다음. 나머지는 그냥 나머지인 거예요. 입은 어찌나 짧은지 스팸, 김, 오징어 채 정도만 먹어요. 채소는 입에도 안 대려고 해요. 무슨 음식이든 일단 맛보려고 하고, 대부분은 엄청 잘 먹는 두 자매가 얼마나 이뻐 보이는지요. 쏨땀도 척척 입에 넣습니다. 생선 액젓에 생소한 채소를 버부린 건데요. 거침없이 즐기네요. 이뻐요. 이뻐. 건강미가 철철 넘치더군요.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감정이 절로 솟더군요. 얘네들 먹는 거 보는 게 더 즐거워요. 제 책도 이미 다 읽었다네요. 책을 좋아하는 자매래요. 주말이면 양수리 외할아버지 집에서 뛰어노는 요즘답지 않은 아이들이죠. 들꽃 같더군요. 스스로 싹을 틔우고, 뿌리를 단단히 박는 민들레 같은 아이들이에요. 건강 그 자체인 아이들이었어요. 어른보다 더 잘 먹는 아이들이라서요. 싹싹 비우고, 또 시키고, 또 시켜요. 여행 천재인 아이들, 여행 천재인 가족들이었어요. 그 밝은 기운으로 제게 다가왔어요. 막상 만나면 모든 사람은 우주라서, 엄청난 세상이고, 여행이죠. 저에게도 큰 여행인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에고가 그걸 밀어내죠. 불편할 거야. 어차피 다 못 만나는데. 핑계를 대고 피하려고만 하죠. 그런 인연을 연결해 주는 힘은 대부분 상대방에게서 와요. 정성 가득한 메시지라든지, 이렇게 당당한 돌직구라든지요. 이런 만남은 제게 훌륭한 양분이 돼요. 아, 이러려고 만났구나. 피하려던 저를, 스스로 꾸짖게 돼요. 앞으로도 요. 편하게 만나려고요. 네, 연락 주세요.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형편이 안 되면 못 만나더라고요. 저도 자유로울 테니, 자유롭게 문 두드려 주세요. 참, 큰 선물을 받았어요. 베스트셀러죠? <아주 작은 습관의 힘>. 후배가 제게 준 큰 선물입니다. 물론 맛난 밥도 잘 먹었고요. 이 책이 또 얼마나 큰 영향을 제게 미칠까요? 인연의 힘을 실감하는 하루였어요.
PS 매일 글을 써요. 글쟁이의 오체투지입니다. 글로 세상 끝까지 닿기를 원합니다. 가까운 도서관 학교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주세요. 저는 그렇게 세상과 닿게 됩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방콕 여행이 두 배는 즐거워지는 책이 될 거예요. 그런 책이 아니라면 세상에 내놓지 않았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