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글 VS 낮의 글

밤의 나와, 낮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요?

by 박민우
DSC02689.JPG 방콕 부촌 통러의 식당, 구경만 해도 재밌어요. ^^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심호흡을 해요. 높은 곳에서 뚝 떨어지는 것 같은, 덜컹하는 느낌이 있죠. 뛰어내려야 한다가 아니라, 뛰어내릴 수밖에 없겠구나. 그런 심정으로 툭탁툭탁 글이 시작돼요. 말을 그대로 써요. 손가락과 혀는 하나예요. 저는 그래요. 얼마나 말 많은 사람인지 아시겠나요? 청춘일 땐 늘 사람 속에 있었어요. 말에 굶주릴 일이 없었죠. 자연스럽게 사람의 숲에서 떨어져 나와 살아요. 싫어서 그런 건 아닌데, 이렇게 됐네요. 낮엔 제법 덥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해요. 비네요. 비를 좋아합니다. 맞는 것까진 안 좋아하고요. 빗소리를 듣고, 저는 어제 복면가왕을 뒤늦게 보면서요. 글을 써요. 소리만 들으면서요. 밤이니까 생각이 많아지네요. 아뇨, 원래 생각이 많은 사람이죠. 낮엔 낮의 기운에 눌려서, 생각이 잘 안 들리다가요. 밤이 되면 소리가 커져요. 빗소리도 누를 만큼, 복면 가왕의 열창도 누를 만큼 커져요. 제게 할 말이 있나 봐요.


곧, 베트남을 잠시 다녀와요. 저는 여행비자로 살아요. 석 달에 한 번은 외국을 다녀와야 해요. 감사한 일이죠. 여행자를 석 달씩 머물게 해주는 태국 정부에게 감사해요. 국경선만 넘으면 별다른 시비 없이, 또 석 달을 주죠. 항상 그런 건 아니라요. 언제든 쫓겨날 준비도 해요. 쫓겨난 적도 있고요. 바보처럼 육로로 갔다가 걸렸죠. 공식적으로는 불법이 아니죠. 대신 시비를 걸면 속수무책이죠. 현금이 오백 달러 이상 있어야 한대요. 원래 규정이 그렇대요. 여행자에게 그런 현금이 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모르고 살아도,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현금 기계에서 뽑아오겠다. 그래도 안된대요. 당장 없으면 없는 거래요. 그러면, 나는 태국으로 입국 못하는 거냐? 물었더니, 비행기 타고 오면 된대요. 현금 없어서 쫓아냄. 야박하게, 주홍글씨처럼 잔인한 문구를 또박또박 여권에 적어서 되돌려주더군요.


그렇게 다시 캄보디아로 쫓겨났죠. 공항에서는 이런 여권을 가진 사람은 탑승이 안 된다면서요. 얼마나 애간장이 탔는지 몰라요. 비싼 비행기표로 어찌어찌 왔더니요. 여권에 적힌 글 때문에, 방콕 공항에서 다시 한번 꼬치꼬치 캐묻더군요. 그때 저는 책을 들고 있었어요. 제 책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를 보여줬죠. 심각한 공항 직원 얼굴이 환해지면서요. 사진이 너무 예쁘대요. 책이 예쁘대요. 글자만 박힌 책이 아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태국에서도 그런 멋진 책을 내겠다. 약속했죠. 통과야 됐지만, 얼마나 떨렸겠어요? 요즘은 어딜 가든지 되돌아갈 비행기표를 확인하잖아요.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표가 없어서요. 방콕으로 재입국할 때 또 저는 심문의 대상이 될 거예요. 두려운 여행을 곧 시작합니다.


잇몸이 어제부터 욱신욱신. 참 몸뚱이 야박해요. 잇몸쯤이야. 어제는 우스웠는데요. 더 욱신거리니까요. 겁이 덜컥 나요. 한국으로 가야 하나? 그나마 여기가 싼가? 그래도, 치과 치료인데, 한국으로 가야지. 일단 베트남엘 다녀오자. 매일 소금물로 열심히 가글 하면서. 누구나 다 저처럼 아슬아슬 살죠? 잇몸으로 심각해지는 저를 비웃어 주세요. 인사돌이 국민 잇몸약이 된 게, 효과 때문이겠어요? 그만큼 잇몸이 안 좋은 사람이 많아서겠죠. 활명수나 게보린처럼요.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 두통을 끼고 사는 사람이 별처럼 많은 것처럼요. 밤이니까요. 두근두근 내 소리가 잘 들려요. 그 소리를 한참을 듣네요. 재밌어요. 두런두런 내 안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거요. 결국엔 졸음이 오고, 배가 고파지는 걸 보면요. 오늘 반짝 이러고, 내일은 으쌰 으쌰 할 걸 알아요. 비가 너무 빨리 그쳤어요. 조금만 더 와주지. 말끔하고, 다시 더운 밤이네요. 이만 잘게요. 이 글은 언제 올릴까요? 매일 올리는 글인데, 지금 올리면 하루 두 번 올리는 글이 될까요? 늦은 밤 안 주무시는 분들을 위해서 지금 올려요. 아침에 또 글 내놔라,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달팽이처럼 천천히 모든 사람에게 닿고 싶어요. 여러분이 저의 큰 힘입니다. 가까운 도서관 학교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주세요. 그렇게 많은 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먹는 이야기지만, 먹는 이야기만은 아니라서요. 읽기 괜찮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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