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방의 아늑함에 대해
오늘 밤엔 꼭 쌀국수를 먹고 말겠어.
가진 게 없을수록, 꿈은 작아지죠. 아플수록 꿈도 작아지고요. 구체적이기도 해요. 복통으로 쩔쩔매는 제게 남은 꿈은 쌀국수뿐이죠. 왜 배가 뒤틀릴까요? 이지경이 된 이유가 뭘까요? 큰 병이라도 잠복해 있는 걸까요? 그냥 단순한 배탈이기를. 잦아들기를. 하노이에서 쌀국수와 맥주로 자축하기를. 몸은 왜 이리 또 변덕스러울까요? 오한까지 느끼며 벌벌 떨더니, 방콕 공항에선 허기가 찾아와요. 허기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시죠? 위가 남들보다 허접한데, 식욕만 왕성한 저는 폭식을 해요. 허기진다 싶으면, 왕창 먹어요. 탈이 나고, 과식하고, 또 탈이 나고. 어리석은 저는 눈앞의 허기만 보여요. 개와 고양이보다 못한 지능이죠. 꼬르륵, 꼬르륵. 드디어 신호가 왔어요. 반가운 허기에 면세점에서 과자를 골라요. 이틀만의 꼬르륵이네요. 튀긴 과자는 안 돼요. 초콜릿도 안 되죠. 배탈, 설사에 기름진 음식 쥐약이니까요. 설탕을 쏟아부은 초콜릿도 백해무익이죠. 오오. 호박을 얇게 말린 과자가 있네요. 이럴 수가요. 이럴 리가요. 배탈, 설사로 신음하는 환자에게 이보다 좋은 간식이 있을까요? 지구엔 없죠. 없어요. 한 봉지를 말끔하게 털어 넣어요. 천천히 먹을 수도 있었어요. 누가 쫓아와요. 속도 조절이 안돼요. 평생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말린 호박칩이었나 봐요. 누가 쫓아오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네요.
대신 기내식은 건너뛰겠습니다. 어차피 저가 항공이라 기내식은 사 먹어야 해요. 카트가 천천히 구르고, 승무원은 주문하실 분. 승객을 유혹해요.
-잠깐만요.
감자튀김을 골라요. 이건 정말 저도 화가 나는군요. 호박 말린 거 있죠? 150밧. 거의 육천 원이었어요. 그 비싼 걸 우걱우걱 털어 넣었으면 자중해야죠. 쌀국수까지 먹겠다는 놈이, 내내 배앓이를 했던 놈이 감자튀김을 탈탈 털어 넣어요. 스스로를 괴롭히는 이유가 뭘까요? 맛있을 거야. 달콤할 거야. 유혹하고, 괴롭혀요. 네, 저는 미친놈입니다.
하노이에 도착했어요. 86번 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일단 내려요, 갤럭시 노트 9를 들고 숙소를 찾아 나섭니다. 요란한 핼러윈 복장으로 거리가 어수선해요. 축제 분위기는, 남일이군요. 들뜬 청춘을 보는데, 요가 중인 것처럼 호흡이 미동도 안 해요. 인도에도 오토바이를 가득 주차하고. 도대체 어디로 걸으라는 걸까요? 10년 만의 하노이는 여전히 개떼 같은 도시로군요. 갤럭시 노트 9에는 구글맵 애플리케이션이 있죠.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로드하면요. 와이파이 없어도, 길안내를 해줘요. 이런 세상에 살고 있어요. 길을 잃기가 불가능한 세상이죠. 분장하고, 변장한 사람들, 오토바이 떼, 쌀국수와 분짜 냄새. 잠을 재워다오. 밤 열 시가 넘었어죠. 저는 피곤하지 않아요. 배고프지 않죠. 숙소를 찾기 전까진, 어떤 감정도 허락하지 않아요. 십오 분을 걸어서 숙소를 찾아요. 문을 연지 두 달 됐다는 숙소는 1박 칠천 원인데요. 7천 원 도미토리 중에선 세계에서 제일 좋은 방이겠네요. 아침까지 주면서 7천 원이라뇨? 화장실도, 샤워실도 깨끗하기만 해요. 샤워를 하고, 이를 닦고, 옷을 갈아입어요. 2층 침대 중에 1층에 누워요. 2층 침대 두 개. 총 네 명이 잘 수 있는 방. 단 한 명이 자고 있네요. 1층 침대가 마침 남아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2층은 무서워요. 떨어지면 죽지 않나요? 침대 커튼을 닫고, 저만의 아늑한 감옥을 만들어요. 휴대폰을 충전하고, 페이스북을 열어요. 쌀국수? 쌀국수를 포기합니다. 먹으면, 내내 부대낄 걸 알아요. 가끔은, 현명해집니다. 늙은 걸 수도 있어요. 첫날, 첫 밤의 한 끼를 포기하고 잠을 택해요. 수고한 날이니까요. 여행의 성취는, 베개입니다. 바삭 소리가 은근한 베개에 코를 비비는 시간이죠. 타발로 호스텔(Tabalo hostel)의 베개는 별 다섯 개를 줘도 되겠어요. 진짜 굿 나잇이, 이 감옥에 있군요.
PS 하노이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후배를 만나고 돌아왔더니, 좀 늦었네요. 그 이야기는 내일 해드릴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세상 끝까지 닿겠다는 꿈을 꿉니다. 작은 오체투지죠. 가까운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주세요. 같은 꿈을 꿔 주세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방콕으로 우리 좀 더 재밌어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