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으로 무사히 잘 돌아왔어요!

여행자가 여행에서 여행으로 돌아오는 삶

by 박민우
20191103_092207.jpg 8만 동(4천 원)에 장만한 플립플롭

지금은 방콕 제 방입니다. 셋째 날도 정신없이 보냈죠. 후배 동관이가 아침부터 쌀국수, 에그 커피, 분보 남보(비빔국수)를 쉴 새 없이 먹이더군요. 베트남 최초의 형무소까지 알차게 구경했어요.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오토바이 한 대로 이렇게 네 곳. 아니죠. 호안끼엠 호수까지 한 바퀴 돌면서, 코코넛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네요. 원래는 소수민족 언어를 개인교습받는 날이라더니요. 교수지만, 배움이 필요하면 학생도 되어야죠. 이런 참 스승 밑에서 배우는 학생들도, 큰 복이지 싶어요. 그 참 스승이 오늘은 수업 째고 박민우 일대일 밀착 마크를 자청합니다. 가정도 있는 사람이 휴일을 이렇게 쓰면 어쩌나요? 사실 전날 잠을 설쳤어요. 동관이랑 전날 마신 커피 때문에요. 잠이 쉬이 안 오더군요. 뒤척뒤척했죠.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밤이었죠. 아이고, 나는 눈 좀 붙여야겠다. 늙으면 솔직해집니다.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점심 거하게 먹고 나니까, 눈이 떠져야 말이죠. 동관이를 보냅니다. 동관이의 얼굴은 의아합니다. 더 봐야죠. 더 놀아야죠. 말똥말똥 눈으로 따지는군요. 그래, 나도 마흔네 살 땐, 좀 나았어. 세 살 젊다고, 그렇게 당당하지 좀 마!


낮잠도 설렁설렁, 대충 잤어요. 오래간만에 마신 커피가 강렬하긴 했나 봐요. 카페인이 그리 지독한 성분인가요? 기분 탓이겠죠? 갑자기 예정에 없는 저녁 모임이 생겼다며, 동관이가 끝나면 또 오겠답니다. 오지 말라고 했어요. 다음날 아침 일곱 시에 또 공항 가는 택시를 타야 해서요. 단호하게, 이교수와 작별합니다. 선후배지만, 사실 이번이 처음이죠. 둘이 마주하고, 이리 오래 이야기한 적이 없죠. 같은 나라에 살았다면, 우린 서로를 찾지 않았을 거예요. 떠돌이의 연대감이, 하노이에서 참 그윽했어요.


십 년 전 하노이를 참 싫어했죠. 극성맞게 달려드는 씨클로(자전거) 운전사, 사기꾼, 바가지, 더러운 거리. 쌀국수는 맛있었지만, 눈살 찌푸릴 일이 매일 한 번씩은 있었죠. 이제 그런 하노이는 없네요. 길에서 지도 한 번 펴보기도 쉽지 않았어요. 여행자만 보면 조건 반사적으로 소리부터 지르니까요. 내 시클로를 타라. 우리 식당으로 와라. 내가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마. 경기 들 정도로 심했죠. 삼박 사일 내내 걸어도, 이제는 누구도 고함치지 않네요. 공항버스에선 차비를 더 줬다며, 알아서 돈을 되돌려 주고요. 공항에선 저보고 먼저 가라며, 줄을 양보하고요. 같은 도시가 맞나 싶네요. 변한다니까요. 안 변할 것 같아도요. 변하더라고요.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들 하죠. 흠, 지금 하노이의 사람들은, 10년 전에도 하노이 사람들이었을 텐데요. 전 국민이 짜고 치는 사기꾼 조합이 분명했는데요. 물건을 팔면서 인상부터 쓰더니요. 상냥해졌어요. 이런 도시가 분명 아니었는데 말이죠.


삼박 사일이 아니라, 삼십 박 삼십일 일을 지내면 또 모르죠. 본색을 드러낼지도요. 먹어도 배가 잘 꺼지는 베트남 쌀국수가 너무 좋아요. 마지막 밤에도 쌀국수 한 그릇 비우고요. 돌아와서는 운동화를 버려요. 비가 올 때 신었더니, 악취가 나더라고요. 비닐봉지로 꽁꽁 싸서는 버려요. 천하의 가난뱅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산 멀쩡한 운동화를 버립니다. 신발 살 돈이 없어도, 신발을 버리는 사람. 네,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알다가도 모를 놈이, 저예요. 과거의 제가 참 두려워하는, 절대 빈곤에 도달했더니요. 오히려 평화롭고요. 오히려 흥미로워요. 예측과 걱정이 이렇게 틀려 버리니, 걱정은 정말 무능한 놈이라니까요. 이 해방감 모르실 거예요. 호스텔 욕실에서 민폐 끼쳐가며 운동화 안 빨아도 되고요. 공항에서 가방 검사라도 할라치면, 젖은 신발까지 다 까야하잖아요. 난처한 악취의 순간이 안 올 걸 알아서 개운해요. 가지지 않아서, 날 수 있다는 걸, 감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요. 내일은 먹고 싶은 거 다들 드시고요. 가고 싶은 곳도 한 번씩 더 가시라고요. 버릴 것도 시원하게 버리시고요. 어? 그러고 보니까요. 하노이 가기 전에 시작된 배탈이 말끔하게 나았네요. 하노이일까요? 여행일까요? 내 몸을 치유한 힘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쟁이의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글로 당신과, 당신과, 당신의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요. 도서관, 군부대, 학교에 박민우의 책을 추천해 주세요. 그렇게 좀 친해지자고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방콕 여행이 더 즐거워지라고, 알립니다. 책 한 권 더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고요. 믿습니까?


PS 동관아, 이제 하노이는 동관이네가 사는 하노이가 됐어. 따뜻한 마음으로 가마.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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