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 될 걸 아니까, 지금은 즐겁게 고생하자!
나를 보자고 한 건 고맙지. 그래도, 좀 덜 힘들 때 보자. 너도 거지, 나도 거지. 조화라는 게 있는 거야. 두 거지가 마주하면 안 돼. 상극이지. 빈곤의 우울함이 고슴도치 가시처럼 우둘두둘해가지고는, 서로의 가시를 측은하게 보자는 거잖아. 사업 잘 되면, 그때 보자꾸나. 부리람? 거기는 도대체 어디니? 태국 십 년 살았지만, 처음 듣는다. 이싼 지방이라고 그랬나? 아내의 고향에서 화장품 가게 한다고 했지? 너는 행정병이었고, 나는 FDC(포탄이 목표물에 명중하기 위해 거리와 방향을 재는)였지. 같은 포대였지만, 딱히 접점은 없었어. EBS 세계 테마 기행에 나온 나를 우연히 네가 봤고, 페이스북으로 가끔 좋아요 눌러주는 사이지. 그래도 네가 페이스북에 글 올릴 때마다 화풀이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 장모님과 아내가 잘 안 도와줘서, 수중에 돈이 없어서 저주에 가까운 푸념을 마구 늘어놓더구나. 내 흉내 내냐? 솔직함이 과해서 내가 다 아슬아슬해. 태국 아내는 너만 믿고 한국까지 왔는데, 애 둘 키우는 게 보통 일이야? 그냥 고맙다, 그냥 잘할게. 그러면서 살아야지. 너만 떨어져 나와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거 힘들겠지. 안 힘든 가장이 얼마나 되겠어? 장모님이 화장품 가게 일을 남의 일처럼, 영혼 없이 도와준다고 불평하지 마. 원래 태국 사람이 느리고, 천하태평이야. 가족끼리 사업하는 거 아니야. 이제부터라도 정식으로 구인광고 내고, 제대로 채용해야지. 그래야 사업이 굴러가는 거야. 가게 하나라고, 쉽게 생각하면 안 돼.
그, 그런데. 오늘 나 보려고 비행기를 탔어? 전재산 삼천 밧이라며? 십만 원 탈탈 털어서 비행기를 탄 거야? 이 미친놈아. 돈 없다는 거 거짓말이지? 나도 너 밥 사주려고 천 밧 주머니에 쿡 쑤셔 넣고 왔어. 그러고 보니, 나도 삼천 밧이 전부네. 십만 원짜리 인생 둘이 모여서, 무슨 밥이냐고?
-사업이 더 커졌어요. 지금까지는 화장품 보따리 상이었는데요.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보려고요. 투자하려는 사람도 나타났어요. 형님이 매일 글을 쓰시잖아요. 거기에 저희 제품을 광고해 주세요. 공짜로 해달라는 거 아니고요. 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거예요. 취업비자는 확실히 발급해 드릴게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럴 줄 알았냐? 신제품 나오고, 매장도 열려면 넘어야 할 고개만 백 개는 될 걸? 신기루 같은 사업으로 나를 꼬시겠다? 너 때문에 한식 고기 뷔페에 왔는데, 먹는 게 왜 이리 시원찮아? 뭐, 먹는데 딱히 관심이 없어? 전 재산의 삼분의 일을 쓰는 박민우 병장님 맘을, 그렇게도 모르겠어? 고기 뷔페집에서 불판을 한 번만 바꾸다니. 태국 싫다. 한국 가고 싶다. 페이스북에서 노래를 하더니, 한식이 이유가 아니었어?
일하는 회사마다 망하고, 큰 맘먹고 시작했던 PC방도 망하고. 막내 동생은 저 세상으로 떠나고.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못 견디고, 농약을 먹어버린 거예요. 목숨이 붙어 있으면 뭐해요. 내장이 다 썩어나가는데요. 하루에 소주를 열 병, 열 다섯 병을 먹었어요. 마지막 3년을요. 그렇게 안 마시면 못 견디니까요.
원래 사업은 관심도 없었구나. 안정적인 직업 하나면 되는데. 정규직이 참 어렵지. 필기, 적성 검사 다 붙어도 면접에서만 스무 번을 떨어졌어? 애 둘의 아빠지. 4남매의 장남이지. 말 잘 안 통하는 태국 아내는, 한국이 답답하지. 뭐라도 하고 싶다. 너만 보면 울상이지. 몸부림을 치는 거였구나. 페이스북에 그렇게라도 풀어야 했구나. 희망을 보고 싶었어? 그 간절함으로 비행기를 탔어? 나를 보면, 작은 답이라도 보일까 봐? 희망이라도 보일까 봐? 제륭아, 나는 네가 신기해. 이 순간이 신비로워. 거지 둘이 만나, 무슨 영양가 있는 이야기가 오갈까 싶었지. 너의 삶이, 어떻게든 나를 보겠다는 그 마음이 절절히 전해져. 고기를 씹지만, 맛은 안중에도 없어. 너는 무조건 잘 살아야 해. 내가 나만 가난하지, 다들 부자로 만들어 줬어. 살짝 과장이긴 하지만, 나만 믿어. 매일 15분씩 명상을 하고, 너의 꿈을 당연한 걸로 여겨. 대단하고, 머나먼 꿈. 그러면 망하는 거야. 꿈에 절대 지지 마. 꿈은 네가 당연히 지나칠 정거장 정도로 생각해. 그래야, 꿈에 도달할 수 있어. 목적지로 생각하면, 닿지 못해. 목적지 직전에 피로해지는 거야. 더 대단한 꿈을 꾸고. 화장품 사업은 중간역 정도로 보자. 중간역은 당연히 지나칠 거잖아. 그렇게 화장품 사업 성공하고, 쭉 달리는 거야. 너는 더 대단한 걸 해낼 인재야. 수영장 있는 방콕 집에서, 나도 선탠 좀 해보자. 제륭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취업 비자를 주겠다고? 내 간절함도 너의 성공에 실을게. 비자 연장한다고 여기저기 떠도는 것도 신물 난다. 이러려고 만났구나. 그래, 커피는 네가 사. 남은 2천 밧으로 이번 달 잘 살아보자. 또 보자.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세상 끝까지 닿고 싶어서요. 그럴 수 있을까요? 그렇수 있겠죠? 네, 여러분이 도와주시면 됩니다. 가까운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주세요. 제 이름으로 나온 책이 열 권입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홍보 중입니다. 방콕 여행 제대로 하셔야죠? 이 책이 기특하게, 영리하게 도와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