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복이 터졌을 때, 배가 터지도록 먹는 거라 배웠습니다만
-가고 싶은 초밥 뷔페집이 있는데, 혼자는 못 가겠어서...
요즘 무슨 날인가요? 이번엔 태국인 형님이군요. 저는 혼밥이 왜 그렇게 쉬울까요? 저도 남들 눈 의식하죠. 평균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걸요? 그런데 혼밥은 즐거워요. 혼밥이 왜 어렵죠? 힐끗거리는 사람들은 힐끗거리게 놔두세요. 제가 잘 생겨서 보는 거지. 혼자라서 보는 거겠어요? 초밥은 돈이 없어서 못 먹는 거예요. 동행이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요. 사실 오늘은 망설여지긴 하네요. 이틀 연속 먹어댔잖아요. 말도 안 되는 호사였죠. 사실 위가 신통치 않아서, 과식하면 며칠 끙끙 앓아요. 역류성 식도염도 평생 끼고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말짱해지지는 않네요. 요즘 증세가 거의 없긴 하지만요.
태국인 회계사 형님. 이름도 카리스마 있게 '땅'입니다. 땅도, 집도, 현금도 부족한 게 없는 양반입니다. 나름 용기 내서 말을 꺼냈을 텐데요. 거절하면 되겠어요? 잘 사는 이웃은 식권이에요. 식권은 한 번 떠나면 다시 오지 않아요. 오늘부터 식권 십계명, 하나씩 알려드려요? 오늘부터 소식해야지. 다짐했죠. 어제 먹은 저녁은, 지금도 안 믿기네요. 탱탱 랍스터 회의 식감이, 감찰 맛이 혀에 여전히 맴돌아요. 오늘은 초밥이 유혹합니다. 남자 둘이 그런데를 무슨 재미로 가냐? 저는 그런 사람들이 제일 이해가 안 가요. 즉, 남자는 음식에 집중할 능력이 없으니, 여자 사람 보는 재미로 가야 한다굽쇼? 맛은 즐기는 게 아니라, 목구멍에 쑤셔 넣을 필수 영양소일 뿐이라굽쇼? 음식이 주인님입니다. 저는 노예고요. 철저히 모시며 살았어요. 음식에 집중하는 시간이, 신에게 닿는 시간입니다. 제게는요.
갈까? 말까? 고민하는 척만 했지, 고민 안 했어요. 먹어야죠. 알아요. 먹고 탈이 날 수도 있어요. 망나니처럼 아픈 몸 무시하다가 피눈물 흘리며 뒈질 수도 있겠죠. 다 알고도, 가겠습니다. 가야죠. 800밧 뷔페라고요. 600밧짜리, 800밧짜리가 있어요. 손님을 그 안에서 또 계급별로 찢어놔요. 잔인한 식당이로군요. 800밧짜리를 먹을 걸 알아요. 식당 앞에서 600밧, 정확히는 599밧 메뉴를 먹자고 했죠. 얻어먹는 자는 최소한의 염치를 한 번은 드러내야 해요. 끄덕끄덕하지만 마시고, 메모하면서 읽으세요. 그깟 200밧 차이로, 왜 더 나쁜 걸 먹냐고 태국 형님이 발끈하는군요. 돈 있는 사람은 이런 게 멋있어요. 제가 못 보는 걸 보는군요. 200밧 더 좋은 거 먹어봤자, 다 똥으로 나온다. 이게 제 평소 소신이거든요. 똥으로 나오는 건 맞지만, 부자들 똥은 아무래도 색감이나 향이 다르겠어요. 이리 생각이 깊은데, 비싼 똥을 누지 않겠어요?
SUZAKU라는 곳인데요. 태국은 뷔페의 나라, 푸드 코트의 나라죠. 백화점, 마트, 상가 건물에 다 입점해 있어요. 골라먹는 게 재미가 아니라, 일상인 나라죠. SUZAKU는 최근에 생긴 프랜차이즈예요. 바비큐를 먹을 것인지, 샤부샤부를 먹을 건지를 골라야 해요. 우린 바비큐를 골랐어요. 초밥이나 숙성 회도 얼마든지 시킬 수 있고요. 야, 마블링 낭낭한 프리미엄 쇠고기도 800밧 손님은 양껏 먹을 수 있습니다(600밧 손님은 프리미엄만 빼고 모두 시킬 수 있어요. 세상에!). 뷔페인데 주문하면 가져다주는 식이니까요. 우리나라 뷔페와는 좀 달라요. 생굴은 한국에서, 프리미엄 소고기는 호주에서, 왕새우는 태국에서. 원산지까지 다 밝히면 가며, 각 잡고 과시하는군요. 디저트도요. 토피넛 토스트를 주문했더니요. 바삭한 토스트에 견과류 듬뿍 초콜릿 시럽 뿌리고요. 하겐다즈 급(하겐다즈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곁들여 나오더군요. 그냥 구색 맞춰서 나오는 후식이 아니라요. 호텔 수준으로 나오네요. 좋은 고기로 배 터지게 먹을 사람. 왕새우에, 왕가리비 우아하게 구워 먹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 추천해요. 연어에, 프리미엄 소고기에, 왕새우구이까지 먹고 3만 원이 비싸다고요? 하겐다즈에 페페로 로쉐 시럽이 듬뿍 올라간 후식을 먹고도요? 글로벌 세상, 염치 있는 한국분들만 여기로 가십니다. 나머지는 애쉴리를 애용해 주세요.
-콜레스테롤 약 먹을 시간이다.
맛나게 먹고, 형님은 처방받은 콜레스테롤 약을 입에 넣네요.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죠. 안 먹어야 되는 걸 알지만, 먹어요. 꼭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그건 양보 못하죠. 물론 가끔요. 자주 하면, 감동도 없고, 수명 연장도 없죠. 내일 죽을 수도 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린 뽕을 뽑았습니다. 후회요? 그건 그때 가서 하면 되죠. 왜, 후회를 미리 하죠? 고품격 하겐다즈 트림은, 뒤끝조차 감미롭군요. 사실, 이 밤 벌써 후회가 밀려듭니다. 속이 불편하니까, 죽을병 걸린 건 아닌지. 각종 암 초기 증세를 검색해 보고 있어요.
인간으로 태어나길 잘했어요. 안 태어날 수 있었는데, 제가 지구에 오고 싶다고 했죠. 재밌을 것 같아서요. 배부르니까 개소리도 좀 하게 해 주세요. 내일 되면, 멀쩡해질게요. 아오, 배가 안 꺼지네요. 바늘로 쿡 쑤시면 터질까요? 미련하게, 그렇게도 처먹어 대더니요.
PS 구글맵에 Suzaku Yakiniku & Japanese Buffet로 검색하세요. 지하철 MRT Thailand cultural center역 3번 출구로 나오시면 Esplanade 빌딩 있어요. 2층인가? 3층인가에 있어요.
PS 매일 글을 써요. 글로 세상 끝까지 닿겠습니다. 저를 찾는, 저의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부쩍 늘었군요. 자, 저와 한통속이 되기로 하신 분들. 일단 가까운 도서관, 학교, 군부대, 관공서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하십니다. 제가 잘 되면, 여러분도 더 재미나집니다. 더 멀리멀리 쏘다닐 테니까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방콕이 인생 여행지가 되셔야죠. 이 책이 도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