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시장에만 잠깐 나가고, 종일 방에만 있었네요. 어제, 오늘 이틀 째네요. 신기해요. 답답함을 견디는 인간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북적이는 카페라도 가야, 덜 외롭고, 덜 지겨울 텐데요. 글을 핑계로 카페를 가지만, 무심한 사람들에 파묻히려고 가요. 밤에 잠깐 나가 봐요. 세븐 일레븐에서 바나나라도 하나 살까 하고요. 건너편 샤부샤부 집 Suki teenoi 평일인데도 대기줄이 길어요. 규모도 어마어마하거든요. 최소 이백 명? 삼백 명은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식당인데, 번호표까지 받고 줄을 서요. 이백 밧. 우리나라 돈으로 8천 원만 내면요. 고기며, 해산물을 양껏 드실 수 있어요. MK 수끼가 태국 국민 샤부샤부인데요. Suki teenoi가 훨씬 싸고, 질도 결코 안 떨어져요. 체인점이니까요. 혹시 가까운데 있으면 가 보세요. 샤부샤부 좋아하시면, 여기가 천국입니다.
Suki teenoi가 엽기적인 게, 새벽 다섯 시까지 열어요. 평일 꼭두새벽에도 해산물 뷔페를 양껏 먹고 싶은 사람이 방콕에는 바글바글하답니다. 이 동네에 뷔페집이 대여섯 개 있어요. 다 잘 돼요. 전투적이지도 않아서, 금방 나가떨어질 텐데도, 참 많이들 가요. 그래서 뷔페집을 너도 나도 여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본전도 못 찾는 얼치기 손님들 덕에, 이익이 쏠쏠할 테니까요.
저도 가 봤죠. 맛나게 먹었지만, 다시 가기가 겁나더군요. 많이는 먹어야겠고, 많이는 안 들어가고요. 그게 얼마나 슬프고, 초조했는지 모르실 거예요. 스무 살 때는 제가 먹는 양에 다들 놀라곤 했어요. 말라서 어디로 그렇게 다 들어가냐고요. 저도 모르죠. 먹어도, 먹어도 금방 배가 꺼지니까, 허기가 무섭더라고요. 하루는 배가 고파서 백 미터 전방이 아득해진 적도 있어요. 스무 살 때는 그랬죠. 그게 당연했죠. 지금도 그런 위장을 가지고 있다면, 8천 원 뷔페집에서 매일 살죠. 얼마나 즐거워요. 입도 즐겁고, 속도 즐겁고. 청춘은 소화력이에요. 늙으면 소화가 안 되거나, 다 지방으로 쌓이죠.
언제 이렇게 늙었을까요?
마흔일곱이고, 곧 마흔여덟이 돼요. 서른 되기 전엔 서른이 그렇게 겁나더니요. 쉰은 겁이 안 나네요. 쉰 살의 저는 지금의 소화력을 부러워하고 있겠죠? 마흔일곱이 얼마나 젊은 나이인지를 깨달으려면, 삼 년 정도는 더 늙어야 할 거예요. 세월은 하나씩 하나씩 뺏어가요. 당연했던 것들이 줄어요. 예전엔 분명 어울렸던 색들이 하나도 안 어울려요. 이제 노란색 하나 남았네요. 팔다리를 자르듯,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도려내갈 걸 아는데 왜 안 두렵죠? 씹는 것도,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당연해지지 않을 텐데요. 겁을 내야 맞을 텐데요. 감사함이 채워주더라고요. 없어질 걸 아는 게, 지혜더라고요. 가진 것들이 넘치면, 불편하다는 것도 늙어봐야 알아요.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불안감이 어찌 마냥 좋을까요? 팔도 비빔면 세 개에, 삶은 달걀 두 개. 그리고 던킨 도너츠. 그렇게 먹어야 잠이 오는 나이가 지금은 무섭네요.
지금 당장 스무 살로 갈래? 쉰 살로 갈래?
타임머신이 있다 칩시다. 당연히 쉰 살을 골라요. 군대도 싫고, 손바닥 만한 원형 탈모로 매일 절망했던 삼십 대도 싫어요. 몇 가지는 너무 건강해서, 더 극단적인 청춘이었죠. 이젠 뭔가 균형이 맞아가요. 소화도 안 되고, 머리털도 빠지고, 피부도 윤기가 사라져서 손발이 착착 맞는 느낌이랄까요? 절뚝거리지 않고, 늙고 있죠. 가만, 진짜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있나요? 잠시 진지해집니다. 간사해서, 또 싱숭생숭해지네요. 아, 그래도 안 되겠어요. 전 고문관이라 군대 생활도 잘 못 했어요. 강원도 양구 첩첩산중에 있는 포병 생활 더는 못할 것 같아요. 태권도를 핑계로 다리를 찢고, 치약 뚜껑에 대가리를 박던 시절로 어떻게 돌아가냐고요. 이가 갈리는 시간들이었어요.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남미로 도망갔죠. 내 젊음은 끝장났어. 모든 절망의 끝에, 남미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바닥을 쳐야, 전성기가 온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도 싫습니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춤추고, 와인 마시고, 강도에게 개 털리는 시간으로 안 갑니다. 얼얼하게 황홀했지만, 타임머신을 탄다는 건, 결과도 이미 안다는 거잖아요. 좋을 줄 알면, 그만큼 좋지 않아요. 그냥저냥 좋죠. 모든 절망 뒤의 남미여야 해요. 저의 찬란한 남미는, 딱 좋은 그때 등장했어요. 쉰 살, 예순 살이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마흔일곱, 마흔여덟을 살아보려고요. 오, 설레네요. 스무 살 때만큼은 아니지만요. 두근두근!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쟁이의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닿고 싶어서, 천천히, 쓰고, 나아갑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시면 좀 더 빨리 세상 끝까지 닿을 수 있어요. 저의 책을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신청해 주시면, 언젠가 감사의 춤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제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잘난 척 홍보했는데요. 오늘 yes24 후기 중에 어수선하다. 내 취향은 아니다. 이런 솔직한 후기를 봤어요. 찬찬히 살펴보시고, 신중하게 구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