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돌려다오! 저는 마흔일곱 살 작가입니다.

늙고 싶지 않고, 죽고 싶지 않지만 젊어지고 싶지도 않아요.

by 박민우


suki teenoi 옆집, 역시 뷔페집. 징글징글합니다.

아침에 시장에만 잠깐 나가고, 종일 방에만 있었네요. 어제, 오늘 이틀 째네요. 신기해요. 답답함을 견디는 인간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북적이는 카페라도 가야, 덜 외롭고, 덜 지겨울 텐데요. 글을 핑계로 카페를 가지만, 무심한 사람들에 파묻히려고 가요. 밤에 잠깐 나가 봐요. 세븐 일레븐에서 바나나라도 하나 살까 하고요. 건너편 샤부샤부 집 Suki teenoi 평일인데도 대기줄이 길어요. 규모도 어마어마하거든요. 최소 이백 명? 삼백 명은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식당인데, 번호표까지 받고 줄을 서요. 이백 밧. 우리나라 돈으로 8천 원만 내면요. 고기며, 해산물을 양껏 드실 수 있어요. MK 수끼가 태국 국민 샤부샤부인데요. Suki teenoi가 훨씬 싸고, 질도 결코 안 떨어져요. 체인점이니까요. 혹시 가까운데 있으면 가 보세요. 샤부샤부 좋아하시면, 여기가 천국입니다.


Suki teenoi가 엽기적인 게, 새벽 다섯 시까지 열어요. 평일 꼭두새벽에도 해산물 뷔페를 양껏 먹고 싶은 사람이 방콕에는 바글바글하답니다. 이 동네에 뷔페집이 대여섯 개 있어요. 다 잘 돼요. 전투적이지도 않아서, 금방 나가떨어질 텐데도, 참 많이들 가요. 그래서 뷔페집을 너도 나도 여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본전도 못 찾는 얼치기 손님들 덕에, 이익이 쏠쏠할 테니까요.


저도 가 봤죠. 맛나게 먹었지만, 다시 가기가 겁나더군요. 많이는 먹어야겠고, 많이는 안 들어가고요. 그게 얼마나 슬프고, 초조했는지 모르실 거예요. 스무 살 때는 제가 먹는 양에 다들 놀라곤 했어요. 말라서 어디로 그렇게 다 들어가냐고요. 저도 모르죠. 먹어도, 먹어도 금방 배가 꺼지니까, 허기가 무섭더라고요. 하루는 배가 고파서 백 미터 전방이 아득해진 적도 있어요. 스무 살 때는 그랬죠. 그게 당연했죠. 지금도 그런 위장을 가지고 있다면, 8천 원 뷔페집에서 매일 살죠. 얼마나 즐거워요. 입도 즐겁고, 속도 즐겁고. 청춘은 소화력이에요. 늙으면 소화가 안 되거나, 다 지방으로 쌓이죠.


언제 이렇게 늙었을까요?


마흔일곱이고, 곧 마흔여덟이 돼요. 서른 되기 전엔 서른이 그렇게 겁나더니요. 쉰은 겁이 안 나네요. 쉰 살의 저는 지금의 소화력을 부러워하고 있겠죠? 마흔일곱이 얼마나 젊은 나이인지를 깨달으려면, 삼 년 정도는 더 늙어야 할 거예요. 세월은 하나씩 하나씩 뺏어가요. 당연했던 것들이 줄어요. 예전엔 분명 어울렸던 색들이 하나도 안 어울려요. 이제 노란색 하나 남았네요. 팔다리를 자르듯,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도려내갈 걸 아는데 왜 안 두렵죠? 씹는 것도,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당연해지지 않을 텐데요. 겁을 내야 맞을 텐데요. 감사함이 채워주더라고요. 없어질 걸 아는 게, 지혜더라고요. 가진 것들이 넘치면, 불편하다는 것도 늙어봐야 알아요.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불안감이 어찌 마냥 좋을까요? 팔도 비빔면 세 개에, 삶은 달걀 두 개. 그리고 던킨 도너츠. 그렇게 먹어야 잠이 오는 나이가 지금은 무섭네요.


지금 당장 스무 살로 갈래? 쉰 살로 갈래?


타임머신이 있다 칩시다. 당연히 쉰 살을 골라요. 군대도 싫고, 손바닥 만한 원형 탈모로 매일 절망했던 삼십 대도 싫어요. 몇 가지는 너무 건강해서, 더 극단적인 청춘이었죠. 이젠 뭔가 균형이 맞아가요. 소화도 안 되고, 머리털도 빠지고, 피부도 윤기가 사라져서 손발이 착착 맞는 느낌이랄까요? 절뚝거리지 않고, 늙고 있죠. 가만, 진짜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있나요? 잠시 진지해집니다. 간사해서, 또 싱숭생숭해지네요. 아, 그래도 안 되겠어요. 전 고문관이라 군대 생활도 잘 못 했어요. 강원도 양구 첩첩산중에 있는 포병 생활 더는 못할 것 같아요. 태권도를 핑계로 다리를 찢고, 치약 뚜껑에 대가리를 박던 시절로 어떻게 돌아가냐고요. 이가 갈리는 시간들이었어요.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남미로 도망갔죠. 내 젊음은 끝장났어. 모든 절망의 끝에, 남미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바닥을 쳐야, 전성기가 온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도 싫습니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춤추고, 와인 마시고, 강도에게 개 털리는 시간으로 안 갑니다. 얼얼하게 황홀했지만, 타임머신을 탄다는 건, 결과도 이미 안다는 거잖아요. 좋을 줄 알면, 그만큼 좋지 않아요. 그냥저냥 좋죠. 모든 절망 뒤의 남미여야 해요. 저의 찬란한 남미는, 딱 좋은 그때 등장했어요. 쉰 살, 예순 살이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마흔일곱, 마흔여덟을 살아보려고요. 오, 설레네요. 스무 살 때만큼은 아니지만요. 두근두근!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쟁이의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닿고 싶어서, 천천히, 쓰고, 나아갑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시면 좀 더 빨리 세상 끝까지 닿을 수 있어요. 저의 책을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신청해 주시면, 언젠가 감사의 춤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제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잘난 척 홍보했는데요. 오늘 yes24 후기 중에 어수선하다. 내 취향은 아니다. 이런 솔직한 후기를 봤어요. 찬찬히 살펴보시고, 신중하게 구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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