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택시를 탔죠. 왼쪽 편으로 난 고가도로를 타야 해요. 오른쪽으로 가네요? 꽉 막힌 도로로요. 고가도로로 가달라고 태국말도 못 하는 제가 우선 짜증 나는군요. 네, 저 태국말 못 하고, 태국 글자 못 읽는 까막눈입니다. 10년을 살았죠. 부끄럽습니다. 치욕스럽습니다. 언어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까막눈입니다. 굉장한 교훈드릴게요. 언어는 재능이 아닙니다. 반복입니다. 매일 한 단어씩만 연습했어봐요. 지금쯤 저는 태국판 워킹맨, 왓썹맨으로 태국 유튜브 접수했죠. 마음만 먹으면 6개 안에 끝나. 건방 떨던 놈은 단 한 번도 마음을 먹지 않았어요. 여러분 독한 마음먹지 않아도 돼요. 매일 십 분만 쓰세요. 그게 일 년이 되고, 이 년이 되면요. 어마어마해져요. 까막눈이 왜 이리 목소리가 크냐고요? 저도 오늘부터 10분씩 쓸 거니까요. 2년 후에 어마어마하게 유창한 태국어 능력자가 돼있을 거니까요. 까막눈인 저를 얕잡아 보고 , 택시 기사 돌아가는 거 보세요. 그래 삥삥 돌아서 가라. 좋다 이거예요. 차가 아예 안 움직이는 곳으로 틀면 어쩌냐고요? 방콕 교통은 네 시가 다르고, 다섯 시가 또 달라요. 점점 차가 불어나요. 세계 최고의 교통지옥이라고요. 안 그래도 지옥인데, 유황불 한가운데로 차를 몰고 가잖아요. 이 뻔뻔한 인간이 라디오 볼륨을 키우네요.
이런 사기꾼들은요. 제가 백미러로 아무리 꼬나 봐도요. 시선 안 마주쳐요. 시침 떼야하니까요. 뒤에서 한숨 쉬고, 짜증스러운 표정 지어도 하나도 안 먹힌다고요. 사기 한두 번 친 놈이겠어요? 저는 왜 이리 흥분할까요? 많이 나와봤자 50밧입니다. 이천 원이요. 이천 원에 왜 이리 끓을까요? 요즘 제가 유튜브 명상 채널을 매일 따라 해요. 명상 선생님이 이르기를 화를 내는 나, 감정에 휘말리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래요. 그런 감정은 지나가는 구름이고요. 참 자아는 하늘이래요. 언제나 평온한 하늘이요. 지나갈 걸 알고, 감정을 바라보라네요. 오, 그럴듯한데. 믿어서 손해 안 보는 주장은 일단 다 믿어요. 쑥쑥 빨아들이죠. 그러니까 단돈 2천 원에 붉으락푸르락하는 감정은 제가 아닌 거죠. 그래서 어쩌라고요? 제가 아닌 놈이 계속 안에서 발광을 해대는데요. 구름이, 개똥 같은 먹구름이 우박을 쏟고 있어요. 엉뚱한 방향으로 가더라도, 뻥 뚫린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갇혔어요. 타이어가 본드에 딱 붙은 것처럼, 꼼짝을 안 해요. 라디오에서 나오는 태국 노래가 왜 이리 거슬릴까요?
아, 결말을 이야기해야 하나요? 93밧이 나왔어요. 갈 때는 얼마 나왔냐고요? 87밧이요. 정확히 6밧 차이네요. 사기꾼 택시 기사는 240원어치 돌아왔군요. 올 때가 더 차가 막혔으니까요. 차 없는 샛길로 요리조리 잘 피해 왔던 거죠. 경험 많은 1등 택시 기사님이시네요. 사기꾼이라고 하지 않았냐고요? 언제요? 바로 윗줄에 있다고요? 왜 그렇게 몰아가세요? 제가 아니라, 제 안의 구름이, 구름 새끼가 그리 경솔해요. 부끄럽고, 끔찍한 구름 새끼 하나가 입주해서 나가야 말이죠. 왜, 저를 욕하세요? 홍익인간 200대 손끼리 이럴 거예요? 말 안 통하는 택시에서, 이런 조급함, 불안함 나만 느껴요? 명상하면서, 감정 조절이 어느 정도 되는 줄 알았어요. 저는 늘 의심하고, 욕할 준비를 하더군요. 매사에 차분해지자는 욕심 버리려고요. 나는 늘 쓰레기다. 쓰레기인 걸 재빨리 알아나 차리자. 그게 현실적인 목표겠어요. 잔돈은 안 받았고요. 더 드리고 싶었는데, 잔돈도 정말 없었습니다. 아시잖아요. 씨티은행에 전 재산 이십..아, 아닙니다. 그리고 백미러로 째려보지 않았어요. 째려봐도 티도 안 나요. 세계에서 한국 사람이 눈 제일 작다면서요? 제 눈은 그중에서도 작고, 작아요. 그냥 창밖 바라보면서 한 숨 세 번, 아니 두 번 쉬었어요. 저요. 착하고, 여린 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착하고, 여린 쓰레기라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여러분에게 다가가고 싶어서요.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저를 낮추고, 조금씩 가까워지겠습니다. 박민우의 책이 여러 권 있어요. 마을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주세요. 이왕 이렇게 알고 지낸 거, 좀 더 가까워집시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태국 음식, 방콕 식당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후기 잘 읽어보시고, 흥미롭다 싶으면 구매해 주세요. 저는 착하고, 여리고, 가난한 쓰레기니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