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저란 놈은 구제불능 맞아요. 이리 실망스러운 놈이었나요? 최소한은 써야죠. 매일 조금씩이라도 써야 할 거 아닌가요? 그래야 코카서스 여행기가 나오죠. 여행기 팔아서 멕시코 가고, 아르헨티나 가야 하는데요. 눈뜨자마자 페이스북 댓글 보고요. 인스타그램 좋아요 개수 세고 앉아 있어요. 확인했으면, 차분하게 글 써야죠. 또, 또, 또 확인하고, 확인해요. 도파민이라면서요? 마약 주사 팔뚝에 꾹 눌러 짜 넣으면, 퐁퐁퐁 도파민이 솟는다면서요? 쾌락을 담당하는 도파민이 뇌에서 콸콸콸 쏟아진다면서요? SNS도 마찬가지라면서요? 댓글 확인하고, 좋아요 개수 셀 때마다 도파민이 나오는 거라면서요? 마약 중독과 본질적으로 같다면서요? 횟수나, 종일 끼고 사는 시간을 보면 더 심각한 마약이겠네요. 인정해야죠. 인정해야 치유가 되죠. 그래요. 저는 마약 중독자와 동급이네요.
중독을 인정하고 나니까, 제법 심각해집니다. 제가 너무 쓰레기로군요. 치유해야죠. 자가 치료해야죠. 매일 인스타, 페이스북 끼고 살 순 없잖아요. 재미있지도 않아요. 불안해서 봐요. 남들의 사연, 사진 가끔 재밌고, 대체로 재미없어요. 재미없으니까, 더 재미있는 건 없나? 뒤적이고, 기다려요. 하, 중독 말기네요. 어쩐지 요즘 더 늙어 보이고, 주름이 뼈에 착 붙어서, 미라처럼 보이더라니요. 이게 다 인터넷 때문입니다. 이게 다, SNS 때문이란 말입니다.
SNS에 글 올리고, 영상 올리는 것도 일종의 창작이죠. 책이 별건가요? 소통하고, 공감하자고 내는 거죠. 그러니까 SNS 글도 쉽게 생각 안 해요. 심호흡하고 써요. 반응이 실시간으로 오네요. 이야, 빠르고, 짜릿하다. 글쟁이의 보람을 퀵서비스로 느끼는 시대로군요. 느끼고 나면, 허무해요. 아까워요. 당장의 반응만 반응이 아닐 텐데요. 창작이 끝나면, 다음을 생각해야죠. 다음 글을 써야죠. 늘 달리고, 리듬을 타는 글쟁이. 제가 꿈꾸는 글쟁이입니다. 당장 반응이 어떨까? 그걸 왜 조마조마해하냐고요? 촐싹촐싹, 가볍고, 저렴한 글쟁이가 접니다. 돌 좀 던져 주세요.
그래서 저는 SNS에, 운동을 얹습니다. 무슨 개소리인가 싶죠? 읽고 있는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요. 부정적인 습관을 굳이 하고 싶으면, 좋은 습관을 곁들이래요. 즉, 맛난 거 먹고 싶으면, 먼저 더럽게 맛없는 생당근을 하나 처먹어. 이런 식인 거죠. 그래서 저는 댓글 한 번 확인할 때마다 팔 굽혀 펴기나 아령 운동을 하기로 해요. 처음엔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어요. 댓글을 확인하려면, 팔 굽혀 펴기 백 개를 해야 한다. 팔십 둘, 팔십 셋. 백 개가 멀지 않았다. 백 개가 끝나면, 궁금하고, 진솔한 댓글을 확인하는 거야. 힘들지만, 열 개 남았다. 아홉 개. 힘내자. 아, 댓글이 이토록 소중한 거였군요. 이렇게도 궁금한 거였군요. 하트 뿅뿅. 이모티콘이 댓글이로군요. 감사하죠. 그게 어딘가요? 그런데, 제가 82개에서 떠올렸던 댓글은 아니로군요. 백 개를, 백 개를 했다고요. 무언가를 읽고 싶었어요. 흐뭇해지고 싶었다고요. 괜찮아요. 저는 또 팔 굽혀 펴기를 할 거고요. 더 진솔한 댓글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왼쪽 어깨가 잘 안 펴지네요. 어깨 회전근이 파열된 걸까요? 약속은 약속. 물러설 순 없어요. 댓글이 달릴 때마다, 팔 굽혀 펴기를 합니다. 근육이 찢어진 것 같아도 해야죠. 막다른 골목이로군요. 약속은 정말 꼭 지켜야 하나요? 엄한 곳에서 저는 철저하군요. 경련이 일고, 입술이 허옇게 메말라 가요. 어쩌겠어요? 계속 누군가가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데요.
차분하게 내 글을 쓰자. SNS를 자제하자. 팔구펴기를 하는 이유가 이거 맞죠? 종일 팔 굽혀 펴기와 댓글 보기만 하고 앉아있습니다. 글은 하나도 안 쓰고요. 지금 샤워를 끝내고 거울을 보는데요. 스무 살 때 꿈꾸건 몸이 거울 안에 있네요. 하아. 몸짱 소원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 이루어줬어요. 말로만 하지 말고, 인증샷이라도 올리라고요? 무슨 소린가요? 몸자랑은 입으로 하는 거라고 배웠습니다만. 어깨 근육과 가슴 근육이 특히 마음에 드는군요. 가슴 아래 근육이 평평, 직각으로 예쁘게 잘 빠졌네요. 스무 살 때 이 몸이었어야죠. 바다에서 웃통 까고, 종일 싸돌아다녀야 했는데 말이죠. 에휴, 그래요. 괜히 엄청난 기대하실까 봐 자수합니다. 원래 엄청난 몸짱이 꿈은 아니었어요. 배 안 나오고, 약간 탄탄해 보이는 정도였고요. 그걸 이루었단 말입니다. 너무 강렬한 상상 은 몸에 해롭습니다. 도파민을 아까운 상상에 허비하지 마시라고요. 몸짱 글쟁이 정신 차리고 여행기나 마치라고 욕 좀 해주세요. 욕!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제가 조금씩 다가가겠습니다. 밀쳐내지만 마세요. ^^. 아, 뭐, 또 도서관에 자주 가시면 박민우 책도 신청해 주시면 좋고요. 학교, 군부대도 도서관 있죠?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덕에 제가 존재합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방콕의 음식과 식당, 카페. 저의 단골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