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 바퀴벌레가 책상 위를 기어 다니네요!

미쳐요, 미쳐. 너무 손쉽게 죽였지만요.

by 박민우
20191115_093529.jpg 우리 찡쪽이가 여전히 잘 먹고 있다는 증거. 밥알을 이렇게 흘려주심.

오늘은 뭘 써야 하지? 고민할 것 같죠? 오래 안 해요. 아예 안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불쑥 나오는 감정을 우선시해요. 잘 쓰려고 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기다리면, 진실성이 떨어지는 거니까요. 순수하게 감정에 충실해야죠.


-아, 뭐야?


순수한 마음으로, 알흠다운 글 쓰기를 시작하려는데요. 바퀴벌레 하나가 책상 위로 기어올라오네요. 아오, 몇 달 종적을 감추더니요. 감히 노트북 키보드로 기어올라와? 너를 글감으로 써달라고? 고마워서 손바닥으로 찰싹 내장 터뜨리며 죽여요. 고맙다, 새끼야. 내 안의 소시오패스가 으르렁으르렁. 몹시 흥분했어요. 물론 바퀴벌레 앞에서만 등장하는 소시오패스입니다. 철저하게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찌질이 쏘시오 패스입니다. 변기에 탈탈 떨어뜨리고 물을 내려요. 알 하나라도 노트북 옆에 까고 갔을 걸 생각하니, 전혀 안 불쌍해요. 저는


-작가님, 벌레 좀 드실 수 있나요?


몇 년 전에 세계 테마 기행 출연할 때요. 제작사에서 이런 메일을 받았어요. 뭐야? 벌레 먹어야 출연할 수 있다는 거야? 못 먹어요. 이렇게 답하면, 날아가는 거야? 그래서 잘 먹는다고 답했죠. 아니, 열심히 먹어보겠다고 했죠. 방송 출연해야죠. 알아요. 많은 분들이 세계 테마 기행 출연이 꿈이란 거요. 생각만큼 꽃길 아닙니다. 세상 공짜 없어요. 새벽부터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강행군이고요. 카메라 앞에서 청산유수 말도 잘해야 해요. 평생 이래라저래라 가르치기만 했던 교수님들! 갑자기 유치원 막내처럼, 쭈글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뭐라도 내뱉어야 하죠. 그 멘트 맘에 안 들면, 분위기 싸해지고요. 또 하고, 또 하고, 또또 하셔야 해요. 동틀 때, 해질 때. 시간은 없는데, 멘트 계속 버벅대 보세요. 눈앞에서 PD가 담배 깊게 한 번 빨고요. 다들 말수가 확 줄어요. 주무실 때 소주 한 잔 하고, 베개에 눈물 한 방울 또르르 적시셔야죠. 자, 꼭두새벽에 산 정상에 올랐어요. 한 시간 기다립니다. 해가 떠요. 이 태양을 보려고, 지금까지 착하게 살았나 봐요. 없는 개소리, 있는 개소리 마구 쏟으세요. 네, 저처럼요. 수십 번 다른 멘트 칠 수 있어요. 신이 내린 말발. 그냥 하는 소리 아니라, 팩트이옵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지금 제 방에 바퀴벌레가 나왔는데요.


저의 인생은 캄보디아 시골로 촬영 가기 전과, 간 후로 나뉩니다. 캄보디아에서요. 타란튤라라고 하죠?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털 수북한 거미요. 거미 튀김을 양껏 먹었습니다. 맛이요? 맛있어요. 지금은 먹으라고 하면, 얼마든지요. 맥주 한 병에, 주모 거미 튀김 한 접시 더! 이럴 수 있습니다. 게랑 맛이 비슷해요. 게 튀김이라고 생각하고, 눈감고 드셔 보세요. 게 튀김보다 더 맛있을 수도 있어요. 갓 튀긴 거는요.


문제는 시장에서 파는 식어 빠진 튀김들이죠. 한 번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죠. 시장에서는 메뚜기 튀김을 또 먹어야 하는 거예요. 이미 튀겨놓은 식은 걸요. 기름 맛, 차가운 메뚜기 맛이 섞어서요. 제가, 착한 놈이라서요. 이 밤에 자세한 묘사는 삼가겠습니다. 씹고, 삼키는데요. 곤충 파는 아주머니가 날개는 떼고 먹으라고. 삼키고 난 저에게, 친절히 알려주시더라고요. 덕분에 날개까지 잘 먹었습니다. 아주머니! 개미탕도 먹었어요. 시큼하더군요. 소심해져서 국물만 먹으려고 했죠. 날개며, 개미며 입으로 우수수 들어오더군요. 입술에 경련 일어도 맛있다 맛있다 했어요. 정색하고, 이걸 어찌 먹나요? 이런 장면을 시청자가 좋아하겠어요? 며칠 밤새면서 편집하는 PD가 좋아하겠어요? 저는 제작진이 겁나 사랑하는 출연자입니다. 생글생글. 뭐가 그리 좋냐는 이야기까지 제작진에게 들었어요. 이왕 하는 거, 좋아야죠. 행복해야죠. 바람직해진 저는, 청산유수 나불대고, 아이처럼 들떠요. 타고났어요. 에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요. 바퀴벌레님이 방구석에 수백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데요. 바퀴 벌레 한 마리가 보이면, 안 보이는 곳에 수백 마리가 있는 거라면서요?


우리 찡쪽이가 아픈 게 아닌가 걱정이네요. 찡쪽이 뭐냐고요? 손가락 크기 도마뱀이요. 동남아시아 시골 가시면 흔해요. 처음 보면 기겁해도요. 며칠 지나면 귀여워져요. 이놈들이 벌레란 벌레를 다 잡아먹어요. 얼마나 기특한가요? 보약이라도 지어 먹이고 싶어요. 지금 제 방엔 찡쪽 한 마리뿐인데요. 아무래도 몸이 안 좋은 것 같아요. 어딘가에 숨어서 오늘내일하는 거 아닌가 몰라요. 매일 밥알은 꼬박 줘요. 도마뱀이 밥알을 먹어요. 신기하죠? 얼마 전 욕실에 요놈이 등장했어요. 욕실 구석 있는 거미집을 노렸던 것 같아요. 저를 보자마자 당황하긴 하는데, 도망가는 속도가 예전만 못하더라고요. 벌레라도 몇 마리 잡아서 밥알 옆에 놔줘야 하나요? 꼬리 힘 쌩쌩해서 든든했었는데, 언제 이렇게 허약해진 건가요?


아, 예전의 저라면 잠은 다 잤죠. 지금요? 먹을 것들이 책상 위에 기어다는데, 왜 잠을 못 자요? 튀기지 않아서, 안 먹는 거예요. 누가 튀겨주면 바삭바삭 잘 먹죠. 이런 사람이 됐어요. 사람이 이리 무섭습니다. 에효. 그래도 방에서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 새끼들 불쾌하네요. 바퀴 박멸을 위해 검색 좀 해보렵니다. 우리 찡쪽이 건강하길 빌어주세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지구 끝까지 닿는 작가가 될게요. 여러분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그 시기가 앞당겨집니다. 가까운 도서관, 다니는 학교, 복무 중인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세요. BTS 다음은 박민우입니다. 팍팍 밀어줍시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여행서의 레전드가 되려고 기지개를 켜는 중입니다. 껄껄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공포를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