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우리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는 이백 개의 꿈을 미약하게 꾸고 있어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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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시간으로 여덟 시 오십 이분에 글을 쓰기 시작해요. 보통 때는 아홉 시 땡. 한 시간 안에 쓰자. 그 한 시간은 고요해요. 그윽하기까지 하죠. 잡념도 도망가네요. 누가 알았겠어요? 천하의 게으름뱅이가 매일 써요. 저도 못 해낼 줄 알았죠. 누군가는 일주일에 두 번 꾸준히 글 올린 걸 자랑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더군요. 그러면 저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야죠. 돈방석에 앉아야죠. 돈방석에 앉으면 좋죠.

누군가에게는 동네, 누군가에게는 꿈


돈방석에 앉으면요?


평소에 가난하니까, 가난을 변호해요. 심지어 찬양까지 하죠. 못 가져서 그래요. 부자인 적이 없어서요. 내가 가진 게 가난뿐이라서요. 누군가가 그러대요. 가난을 찬양하는 사람은 부자였던 적이 없다. 부자라고 행복한 건 아니다라고 여기는 건, 가난뱅이들의 짐작일 뿐이다. 야, 그 문장을 보고는, 무릎을 탁 쳤어요. 제 이야기네요. 제가 그렇게 함부로 짐작했어요. 부자가 팩트로 저의 뺨을 찰싹찰싹,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부자 친구들이야 있죠. 그들도 별로 안 행복하던데? 이렇게 반박한다고 해서, 제가 이기는 건가요? 친구인 거지. 제가 그 놈들 마음 안에 앉아 있는 것도 아닌데요. 저는 한계가 분명한 공허한 행복 타령꾼입니다.


꿈이 뭐예요? 부자인가요? 안정인가요? 명성인가요?


대학교 합격이 제겐 가장 큰 꿈이었어요. 당시 인기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내일은 사랑'에서 장동건, 이병헌이 드러눕는 잔디에 나도 드러누울 수 있는 거야? 1993년 봄은 꿈이었죠. 일부러 잔디에 드러누우려고, 수업에 안 들어갔어요.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낭만은 봄의 캠퍼스에서 눕고, 자는 거였죠. 지금도 안 믿겨요. 매일 너무 좋았으니까요. 두세 달 갔나? 매일 꿈이다. 아이고 좋다. 그러면 미친놈이게요? 몸이 아프기도 했고, 군대도 있고, 미래도 그렇고, 끔찍한 사랑도 있었고요. 대입 하나로 평생을 채워주지 못하더군요. 12년을 요거 하나로 달려왔는데 말이죠. 꿈이 최소 백 개는 있어야, 평생 행복하겠더군요. 혹시, 이런 의심 안 해보셨어요? 꿈이 우리를 파괴하는 건 아닐까? 꿈 하나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죠. 평생을 바치고, 때론 양심을, 때론 목숨을 바쳐요. 그거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꿈을 이루면, 그때부턴 완벽한 이후만 기다릴 것 같잖아요. 그 이후는요? 대책이 없어도 너무 없네요. 가성비가 엄청 떨어지는 가치에 전부를 걸지 마세요. 꿈은 그 정도로 대단하지 않아요. 그런 마음 자세로 꿈을 잘도 이루겠다. 저의 태도가 너무 한심한가요? 이백만 원으로 온가족이 안 아프게 살면 굉장한 거지. 이 정도로는, 전국민 10%에게나 칭찬 받겠죠?


이루지 않아도 되는 꿈 백 개는 어때요?


오늘 저녁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을 끓이고, 이번 주말엔 유튜브에서 추천하는 백종원표 떡볶이를 완성하고, 이번 여름에는 캠핑카에서 자보고요. 어딘가에서 한 달도 살아보고, 내가 만든 고추장에 날짜를 적어 놓고요(8년이 지나면 천하의 약고추장이 된대요). 이런저런 자잘한 기다림으로 채운 삶은, 여전히 꿈이 건물주인 사람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겠죠? 없이 사는 놈의 조언은 약발이 너무 약하네요. 저에게 이젠 안 이뤄도 되는 꿈만 있어요. 올겨울에 부모님과 한 달 살기를 하고 싶고요. 내년엔 멕시코로 뜰 거예요. 가고 싶죠. 안 가면 엄청 속상하겠죠. 그래도 이런 걸로 분하고, 죽고 싶고 그러지는 않아요. 당장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꿈이 이백 개 정도 있어요. 내 이름으로 만든 장아찌 항아리 백 개가 태국 시골에서 익을 거예요. 항아리 하나당, 꿈 하나. 이백 개 꿈이 과장이 아니죠? 이루세요. 이루면 좋죠. 쉬엄쉬엄 핑계도 대세요. 누구 좋으라고, 혼자만 아파요? 꿈은 자기를 위해서예요. 이룰 때도 좋아야 하지만, 이루기 전도 좋아야죠. 에휴. 제가 좀 더 유명해져야 이런 말도 씨가 먹힐 텐데요. 아무래도 세상 씹어먹는 글쟁이가 될까 봐요. 마지막 문장에서 급 반전이 이루어지는 해괴한 글이로군요. 세상에 없는 글쟁이가 되겠습니다. 약속!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조금씩 다가가고 싶어서요. 제가 마라톤을 하는데, 여러분이 막 박수를 쳐주고 계세요. 그런 상상으로 글을 써요. 박수를 친다가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준다와 같은 뜻입니다. 우하하.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9년간 방콕에 머물면서 자주 갔던 단골 식당, 카페, 그리고 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즐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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