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황홀 - 프롤로그(Feat 인천공항)

가난한 여행자가 뉴욕을 욕심 내다 - 2018년 10월 2일

by 박민우
제목 없음.png

“혹시 구여권 가지고 계시나요? 발권이 옛날 여권으로 되었네요.”

“없는데요?”

“구여권 사진으로라도 찍어 놓으셨나요? 확인만 하면 되는데.”


전화를 건다.


“어머니, 예전 여권 어디 있는지 아시죠? 네, 제 방 서랍. 네, 네. 그걸 펼치세요. 제 얼굴 나온 면이요. 그걸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 주세요. 어떻게 보내는지 아시죠? 어제 해 봤죠?”


기다리는 몇 분은 길었지만, 5분도 안 돼 사진이 오다니. 이제 카톡으로 사진도 보내실 줄 아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 잘하셨어요. 그런데 더 펼치셔야 해요.”


어머니는 조개처럼 반만 열린 여권을 찍어 보내셨다. 구여권이 입을 벌리고, 나를 본다.


“여권을 바닥에 놓고요. 위에서 찍으세요. 아기를 눕히고,, 얼굴을 위에서 찍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 두 손으로 찍으셔야죠. 숨을 좀 참고, 폰을 누르세요. 손 떨지 마시고요.”


“잘하셨어요. 훨씬 좋아졌어요. 그런데 숫자랑, 얼굴이 보여야 해요.”


어머니의 세상은 노안의 세상, 돋보기 없이는 언제나 뿌옇다. 죽기 전에 당신의 눈을 꼭 내게 주겠다던 어머니는, 퇴화된 눈으로 벌벌 떨고 있다.


“카톡!”


왔다. 다섯 번째 사진이다. 앞의 네 장과 확연히 다른, 압도적으로 선명한 사진이다. 어머니가 더 피 말랐을 시간.


“가는 거만 생각해. 나쁜 기억 지워버리고. 파이팅!”


어머니는 새끼의 아픔에 가시를 박아서, 온몸으로 안는다. 새끼만 무사하면 아플 일이 없다. 무사히 해결되었지만, 아들의 심장에 무리라도 갔나 싶은 어머니가 보낸 카톡이다.


가는 거만 생각해.


그래야 하는데, 담담하고, 몽롱하다. 구여권이 없었다면 비행기를 타지 못했을까? 어떻게든 갔겠지. 발권한 사이트에 전화를 걸고, 출근 전이라 전화를 안 받고, 항공사 직원끼리 수군수군, 어쩔 수 없죠, 뭐. 각서라도 쓰세요. 큰 생색을 내며, 나를 받아들일 테지. 최후의 승객이 되어 탑승했을 것이다. 못 가게 되면, 이 유가 있을 테지.


한심할 정도로 담담하다. 안 가면 그뿐. 운명을 믿는 건가? 이제 좀 다녀봤다 이거지? 겁을 너무 자주 먹었더니, 겁먹는 법을 안다. 당장은 벌벌 떨어도, 오래 떨지 않는다. 받아들일 테니까, 적응할 테니까. 괴로운 진동이 끝나길 기다린다. 진동이 끝나면, 새로운 시작. 어 쨌건 뉴욕은 간다. 운명이 허락했다. 덜덜 떠는 어머니의 손가락이 삼성 갤럭시폰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 호흡은 멈췄고, 렌즈는 여권 속 나의 얼굴과 여권 번호를 낚아챘다.


그러니까 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