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우가 간다. 다들 꿇어! 특히 윌스미스, 브래드 피트
“나 죽으면 올 건가요?”
이 말은 몇 년간 내 안에 남았다. 선생님과 그의 아내. 댁은 뉴욕 롱아일랜드다. 선생님은 서너 번, 사모님은 딱 한 번 뵀다. 교대역 초밥집에서였다. 선생님 초밥은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고, 카스텔라보다 무거웠다. 가벼움이 묵직해져서는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원래 직업은 외교관, 두 딸의 미래를 위해 사표를 내고 초밥을 팔았다.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1년 예약을 꽉 채웠던 스타 요리사. 교대에 지점을 열었고, 지금은 철수한 상태다. 책이 나오면 늘 국제 우편으로 부친다.
“나 죽으면 올 건가요?”
책이 나올 때만 드리는 안부 전화. 사모님은 몇 년간 병치레로 휘청이셨다.
“박 작가 올 때까지 안 죽을게요.”
비행기 표를 끊고, 전화를 드렸다. 백 살까지 사셔야죠. 그렇게 말했지만, 조마조마했던 게 사실이다. 팔십을 바라보는 이의 죽음은 구체적이다. 누구나 죽지만, 속도는 다르다.
“딱딱딱”
중국 동방항공 이코노미석에서 윗니 아랫니를 부딪쳤다. 고치법이라고 한다. 지금 나의 잇몸은 무너지는 중이다. 소금물 양치, 소주 양치까지 해봤다. 잠시 안 아팠다. 한없이 어리석어져서는 완치를 믿었다. 그러다가 나빠지고, 괜찮아지고, 더 나빠졌다. 치과를 못 가겠다. 임플란트 하세요. 이 말은 사형 선고다. 어떻게 모은 500만 원인데. 세상에서 가장 물가 비싼 뉴욕, 그리고 더 비싸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45일을 지내야 한다. 수명이 다한 잇몸은 더 버텨줘야 한다. 딱딱딱. 못질을 하듯, 윗니, 아랫니를 부딪친다. 고치법으로 나도 너를 돕겠다. 부채표 잇몸 약 잇치도 싸왔다. 기내 반입은 불가. 칫솔에 잔뜩 묻혀서 배낭에 넣었다. 임플란트 하나에 이삼백만 원인 미국에서 이빨이 빠진다면? 이빨은 알코올에 담그고, 솜뭉치로 잇몸을 채워 넣겠다. 조금만 빨리 왔더라면. 치과 의사의 탄식을 서울에서 듣겠다. 잔뜩 묻힌 잇치의 절반은 칫솔통에 떼어낸다. 절반의 잇치가 남은 칫솔을 들고 기내 화장실로 간다. 잇몸은 기적처럼 살아날 것이다.
북촌동 카페 공드리에서 피자를 먹으려고 입을 벌리는데, 온몸이 감전된 것처럼 저릿했다. 왼쪽 귀밑이 안 움직였다. 다시 입을 벌릴 땐, 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턱이 빠진 것이다. 당장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혀를 앞니에 착 붙이고, 입을 최대한 벌린다. 그 상태로, 5초, 10초 버틴다. 유튜브에 나온 턱 빠짐 비법이다. 몽크의 그림 절규를 떠올리면 된다. 딱딱딱, 절규, 딱딱딱, 절규. 두 가지를 반복했다. 중국인들은 심각할 정도로 타인에게 무관심하다. 나는 한없이 자유로워져서는 이빨과 턱을 위해 몸부림을 쳤다. 몸뚱이는 고쳐서 쓰는 것이다. 늙음을 탄식할 때가 아니다.
“박민우 님이시죠? 가영이 언니가 말해줬어요.”
이모 딸, 이종 사촌 동생 가영이는 중국 동방항공 승무원이다. 사촌 오빠가 비행기를 탄다고 굳이 귀띔을 한 모양이다. 다행히 절규를 하거나, 딱딱딱을 하지 않고 있었다. 로멩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는 중이었다. 내 책 읽는 모습에, 내가 반했다. 가영이는 대단한 여행 작가라고 했겠지. 가영이가 승무원이 된 이유는 나다. 내 책을 그렇게 파더니, 역마살이 제대로 들어버렸다.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책만 붙들고 있어야지.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자리 괜찮으세요? 승무원의 유난스러운 관심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굉장히 키가 크고 피부가 까만 아가씨(국적이 전혀 짐작이 안 된다. 굳이 짐작하자면 하와이?)는 먹다 남은 감자칩을 내게 건넸다. 사람들은 정말이지 잘 생긴 사람만 감자칩을 준다. 큰일이다. 나는 과자를 받아서 탈탈탈 비웠다. 새 걸 줄 것이지. 나는 절반만 고마워했다. 가영이의 동기는 커피와 간식을 좀 더 챙겨줬다. 비즈니스석이나 퍼스트 클래스로 이동은 없었다. 그런 특혜를 바란다. 나만 입 다물면 되는, 불공평한 특혜가 올 줄 알고 엄청 설렜다.
기내식을 다 먹었는데 모닝롤이 나왔다. 배부른 승객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여전히 따뜻하다. 동방항공 기내식이 맛없다고들 하는데, 맛없는 게 당연하다. 뉴욕 왕복 75만 원짜리 비행기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다면, 그게 이미 특혜다. 날아가기만 하면 된다. 75만 원에 뉴욕 Jfk공항 1 터미널에 내려놓는다. 심지어 돌아갈 비행기까지 약속한다. 기적을 멀리서만 찾는 바보들은, 기내식을 불평한다. 모닝롤이 이렇게 따뜻하고, 심지어 모닝롤이다. 배를 가르고, 남겨둔 버터를 나이프로 착착 비볐다.
“오오!”
“내 말이 맞잖아!”
옆 두 명의 중국 남자가 감탄 중이다. 이 빵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그 답을 내가 준 것이다. 미국 불법 체류가 유력해 보이는 두 남자는, 조심스럽게 모닝롤을 가르고, 서툴게 버터를 비볐다.
“햄튼 별장에서 글 쓰면서 좀 지내면 안 돼요?”
뉴욕에 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실 햄튼 별장이다. 선생님은 햄튼에서도 머물라고 하셨다. 곱게 키운 두 딸은 성공적인 미국인이 되었다. 큰 딸은 집이 네 채다. 햄튼에 별장도 있다. 무식한 나도 햄튼이 어떤 곳인지 안다.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자주 나왔던 곳이다. 부자들, 연예인들의 별장이 그곳에 있다. 햄튼에서 나는 글을 쓰게 된다. 될 것이다라고 쓰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된다라고 쓴다. 햄튼의 스타벅스를 찾다가 윌 스미스와 눈이 맞는다. 왓츠업 브로, 하와유. 나는 당황하지 않는다. 이런 상상을 백 번 정도 한 사람이다. 글을 쓰러 왔어. 전 세계를 20년째 탐색 중이지. 적당한 과장법으로 그를 홀리고, 그의 풀장 파티에 초대된다. 브래드 피트와 엠마 스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는, 칵테일 잔을 들어 올리며 지구를 20년째 탐색 중이야. 심드렁하게 내뱉겠다. 오마이갓, 언빌리버블. 난리를 치겠지. 새 여자 친구와는 잘 돼가? 앤젤리나 졸리는 지금도 만나? 이딴 질문도 하고 싶다. 조금만 더 친해지면, 무례함도 친근함이 되지. 지금은 때가 아니다. 칵테일은 딱 두 잔만.
모든 셀렙이 뉴욕에서 나를 기다린다. 나는 믿는다. 너무 확신해서 평화로울 정도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지구 반대편 독자가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저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유명해져야 해요. 가까운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세요. 오홋, 진심 감사합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9년 동안 방콕에서 머물면서 애정 듬뿍 쏟은 단골 식당, 카페, 그리고 태국 음식 이야기로 채웠어요. 즐거운 책입니다. 데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