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은 꼭 앉아서. 소변 흔적 안 됨. 마신 물 잔 그때그때 씻어두기. 신발엔 파우더 뿌려두기. 발 냄새 따위는 없는 사람이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까. 실내화는 처음 쓴 것만 쭉 쓰기. 내 발, 네 발 섞어 쓰면 언짢아하시겠지?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CIA(미국 첩보원 CIA 아님) 졸업한 셰프님이니까 깐깐하실 거야. 잘 보이고 싶다. 뭐 얻어먹으려고 그러는 거다. 거지 근성 아니고, 상식. 문 열리는 소리 듣고, 안녕하세요. 당분간 같이 지낼 박민우라고 합니다. 나답지 않게 들이밀었다.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아, 네, 네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놀랐는지, 문 닫는 소리가 컸다. 부끄러움이 많으셔. 우린 작은 주방 겸 거실을 사이에 두고, 지내게 된다. 맨해튼의 하우스 메이트. 열쇠는 세 개. 방문 열쇠, 집 문 열쇠, 건물 입구 열쇠. 셰프님 하찮은 내 방 관심 없는 거 다 알지만, 방문 꼭꼭 잠그고 다니기. 쓰레기는 비닐봉지에 담아서 그때그때 내다 버리기. 분리수거도 없고, 따로 쓰레기봉투도 필요 없다. 미미한 음식 쓰레기 냄새도 셰프님 계시는 곳까지 흘러가면 안 되니까, 비닐봉지 쓰레기도, 꼭꼭 묶어서 두기.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서 5층에서 4층, 3층, 2층, 1층. 그로서리 스토어(뉴요커는 가게란 말 모른다)부터 간다. 샌드위치, 스무디, 커피, 빵, 샐러드, 컵케이크, 물, 치즈. 없는 게 없다. 베이글 한 개,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하나, 아메리카노 작은 거 한 잔. 커피 1.25달러, 베이글 1달러.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2.99달러. 거의 6천 원 돈. 크림치즈는 두고두고 먹을 거니까, 한 끼로 4천5백 원 정도 쓴 셈. 크림치즈는 원래 3.5달러인데 세일이라고 쓰여 있다. 길 건너 던킨에 막 들어온 베이글이 있지만, 종류도 다양하지만, 굳이 가게(웁스,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산다. 조금이라도 싸겠지. 20일 방값으로 1,500달러 쓴 사람이야. 나는 통 큰 사람이고, 어쨌든 살아남아야지. 셰프님 깨우면 안 돼. 곱게 곱게 연어 크림치즈를 베이글에 펴 바르고, 뜨끈한 커피도 한 모금. 1.25달러 커피는 이미 끓여놓은 커피. 콜롬비아 커피콩(그로서리 스토어 메뉴판에 그렇게 쓰여 있는데, 설마 멕시코 커피겠어? 온두라스 커피겠어?)이 제법 구수하다. 싸구려 아침식사. 뉴욕 싸구려는, 그냥 싸구려 아니고 미니멀, 킨포크라고 하는 거지. 딱히 미국 낙농제품에 호감 없지만,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연어 맛은 충격적으로 호감적이다. 내가 전생에 왕족이어서 아니 왕이어서 안다. 근본 없는 것들은 못 먹는 음식이다. 기상 이변이 연어를 멸종시키기 전에, 인간들아 연어에게 좀 잘 하렴.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연어 맛은 전생과 환경의 특강 선생님이다. 정신 차려라, 미국 것들아. 분리수거 좀 하고 살아. 수요 미식회가 20분은 나불대야 하는 맛으로 한 끼를 해결했다. 고요하고, 검소한 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하고, 머리카락과 물기를 꼼꼼히 제거하고, 머리에 헤어젤을 바른다. 잘 생긴 애도 가는데, 관리해야지. 누가 알아? 보스턴 잘 생김의 기준이 나일지. 세상 잘 생김 모르는 거야. 팔자 주름도 옅어졌어. 여행 자니까 여행할 때 가장 잘생겨지지. 보스턴에서 이틀 자고 온다. 속옷, 양말, 충전기, 노트북. 짐을 싼다. 긴 여행 중, 작은 여행. 맨해튼에 내 방이 엄연히 있지만, 보스턴 간다. 무슨 돈지랄인가 싶지만, 나는 약간 신나 있다. 9번가에서 8번가로 가기 위해선 조니네 파니니, 인도식당 인디아 키친, 이발소, 이탈리아 식당 Il punto, 세탁소, 그로서리 스토어 빅애플. 길을 건넌다. 우즈베키스탄 식당, 한국 치킨 집, 아이리시 펍, 미얀마 사람이 하는 일본 라멘 집과 1달러 피자집 2bros, 2달러 커피 Corvo를 지나친다. 1달러 피자는 치즈 피자만이고, 나머지는 2.5달러. 2달러 커피 Corvo도 차이 라테는 4달러. 보스턴에서 돌아오면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를 두 개 더 사놔야겠어. 세일이 끝나면 어쩌지? 초조하다. 아홉 시까지 힐튼호텔 타임스퀘어 1층.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겠다. 형은 대륙 같은 존재니까. 든든하고, 너그럽지. 여행이니까 크고 작은 기다림이 있을 거고, 대체로 지겹고, 가끔 좋을 것이다. 가끔이면 된다. 그걸로 나머지를 산다.
“형, 빨리요. 빨리요. 차 세워뒀어요.”
용주가 힐튼호텔 1층에서 뛰다시피 걷는다. 아휴, 이 새끼만 보면 정신이 없다. 굳이 아침을 챙겨 먹은 이유다. 뱃속이 든든해야, 열 덜 받는다. 똥도 일부러 안 눴다(셰프님 쓰실 화장실, 흔적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휘둘리지 않아야지. 내가 발끈하는 게 이놈의 낙일지도 몰라.
“아예 체크아웃을 한 거야?”
큰 짐은 호텔에 맡겨둘 줄 알았다.
“빨리요. 빨리!”
네, 네! 서두를게요. 그럼요. 용주를 쫓았다. 대로변에 아우디 SUV가 서 있다. 안녕하세요. 용주 친구다. 응, 그래, 안녕. 말 편하게 해야지. 그러라고 했으니까. 여기에 차를 세워둔 거야? 지구에서 제일 혼잡하고, 비싼 뉴욕 타임스퀘어다. 브로드웨이 인기 TOP3 뮤지컬 알라딘 전용극장 앞, 상주하는 경찰만 최소 수십 명. 여기에 무단 주차를 하는 이놈은, 세계를 주름잡을 놈이야. 이런 새끼가 세상을 주름 못 잡으면, 주름 잘못이다.
“방향이 반대쪽이네. 어쩌지?”
신호가 정지한 틈을 타서, 용주는 반대쪽 차선으로 빙그르르. 이제는 불법 유턴이다. 불법 주차, 불법 유턴. 무대는 뉴욕 타임 스퀘어. 준법정신을 그토록 강조하더니, 쓰레기 같은 새끼. 크게 되실 쓰레기. 트와이스의 Dance the night away가 흘러나온다. 볼륨이 올라간다.
“용주가 요즘 꽂힌 노래예요.”
이 자식은 꽂히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듣는다. 나도 트와이스 노래 좋다. 랩까지 외우고 싶지는 않다. 허드슨 강을 가로지른다.
If you wanna have some fun
짭짤한 공기처럼 이 순간의 특별한
행복을 놓치지 마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지난다.
오늘이 마지막인 듯 소리 질러 저 멀리
끝없이 날아오를 듯 힘껏 뛰어 더 높이
오늘이 마지막인 듯 소리 질러 저 멀리
쏟아지는 별빛과 Let’s dance the night away
트와이스가 이 순간을 귀신처럼 아는구나. JYP가 이토록 놀라운 기획사라니까. 아우디, 뉴욕, 허드슨 강, 보스턴, 쓰레기, 트와이스, 쓰레기 친구, Dance the night away. 이런 조합, 이런 여행. 꿈꿔본 적 없다. 누군가는 꿈꿔볼 만한 순간이다. 누군가의 꿈에 내가 있다. 안전벨트를 꼭 맨다. 세트장만 없지, 영화다. 배우처럼 생긴 놈도 한 명. 영화처럼 극적으로 죽을 수도 있다. 내 목숨이 새삼 소중하다. 이 여행은 끝까지 맛봐야겠다. 끝까지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제 글이 닿을 테니까요. 가까운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시면, 저의 오체투지는 한결 따뜻하겠군요. 미리 감사드립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9년간 방콕에 머물면서 사랑했던 단골집, 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소소하게, 군침 좀 삼켜가며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