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는 새끼, 첨부파일 새끼, 나만 착한 새끼
글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거친 말, 쌍욕은 쉽다. 자극은 쉽게 빨아들인다. 사로잡지만, 남지는 않는다. 여운은 없고, 뒷맛은 쓰다. 그러니까 고운 말을 써야 한다. 용주, 이 새끼가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일단 내가, 나이 세 살 많은 내가 굳이 동생들 묵는 곳으로 왔다. 나이 따지는 게 왜 꼰대? 생물학적으로 더 늙은 몸이 덜 움직여야지. 내가 이 새끼보다 어려 보이는 게 죄야? 동생이지만 앞으로 잘 얻어먹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비굴한 선서 같아서, 더 성질난다. 우리끼리일 때야 괜찮아. 한 녀석이 더 붙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카드 긁고, 형은 먼 산 보고. 더 구질구질하고, 그러니까 더 존중받고 싶다고. 센트럴파크에 가기로 한다.
“형, 밥부터 먹을까요?”
그거지, 바로 그거지. 잘 참았다. 얻어먹는 처지에, 밥부터 먹자. 이 말을 꺼내선 안 된다. 배운 거지는, 이렇게나 지혜롭다.
“그런데, 이런 데서 먹는 건 좀 그렇죠?”
뭐가 그래, 이 새끼야! 오자고 해서, 네가 오자고 해서, 온 거잖아. 다 와서는, 이런 데서 먹는 건 좀 그렇죠? 그냥 잠자코 끄덕이는 첨부 파일 같은 놈은 또 뭐야? 이 자식도 실명 공개는 반대. 하, 이것들이 진짜. 게다가 이 두 놈은 오늘부로 내 일기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어떻게 쓰나 감시를 하시겠다?
“지하철 타 볼래요? 센트럴 파크 안에서 먹을까요?”
그럼, 그럼. 나, 화 안 났어. 화 안 낼 거야. 잠깐 당이 떨어졌었어. 속으로라도 욱한 거 미안. 그 마음 다 알지. 더 좋은 곳에서 먹겠다는 거잖아. 뉴욕 지하철, 좋아, 좋아. 나도 타보고 싶었어. 그렇게 더럽다면서? 그렇게 불편하다면서?
“앗, 잘못 탔다. 내려요, 내려”
어릴 때 온 가족이 뉴욕에서 살았다며? 출장으로, 여행으로 여러 번 오신 자칭 반 뉴요커 새끼님아! 역시 속으로만 욱했다. 나는 참기의 달인!
“다운타운 방향인지, 업타운 방향인지를 봐야 하는구나.”
괜찮아, 괜찮아. 헷갈릴 거야. 뉴욕 사람들도 헤매는 게 지하철인데 뭐. 표지판에 A, B, C 알파벳이 있다. A라인, B라인, C라인이 지나간다는 의미다. 그 아래 서 있으면 된다. 거기까진 쉽다. 방향이 맞나? 이걸 알 수가 없다. 다운타운 방향인지, 업타운 방향인지만 알면 된다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걸 초행자가 무슨 수로 아냐고요. 뉴욕의 역 이름, 뉴욕 거리의 숫자를 외우고 있어야 한다. 지도 펼치고 여기가 과연 업타운인지, 다운타운인지 결론내야 한다(업타운은 street 숫자가 커지는 방향 72st, 76st, 다운타운은 반대). 종착역만 표시돼도(내가 못 찾은 건가?), 쉬워질 텐데. 그딴 친절은 여행의 긴장감을 떨어뜨릴 뿐이다. 뉴욕시의 공식적인 배려다. 배고픔은 사라졌다. 짜증이나,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센트럴 파크가 가까운 역에서 겨우 내렸다.
“식당은 그래서 어디라는 거야?”
“공원 안쪽이요!”
“공원 안쪽 어디?”
“2,30분 정도 걸어요.”
......
“그럼 애초부터 택시를 탔어야지!”
내 말이 틀려? 지하철 체험, 밥 먹고 해도 되잖아. 그때부터 공원 보면 되잖아. 밥 먹고 산책하라고 공원 생긴 거야. 이, 멍청아! 뉴욕 지하철 당장 안 타면 죽어? 사람이 왜 참는 줄 알아? 행복해지고 싶어서야. 너나, 네 친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가 싫어서. 왜 못 참고 짜증 내냐고? 참았더니 배고파 죽게 생겼잖아. 참아도 안 행복해지니까. 아오, 진짜 짜증 나! 내 커진 목소리에 용주가 서둘러 마차를 빌렸다. 마차에 셋이 꼭 붙어 앉았다. 센트럴 파크, 꼭 와보고 싶었던 곳. 미국 TV 시리즈 ‘프렌즈’ ‘섹스 앤 더 시티’ 때문이다. 그들의 일상이 여기에 있다. 구름이 무겁게 깔렸다. 와보고 싶었던 곳은, 날씨가 눅눅해도 좋다. 마차는 또 뭐야? 너무 관광객 같잖아. 회전목마를 타고 감격하는 촌뜨기처럼 보이잖아. 지구 최고 여행작가님은 이렇게 천진해지면 안 되는 거야. 마차가 재미나지만, 좋은 티를 어떻게든 안 낼 거야. 내가 한 소리 했다고 마차 탄 거야? 아니겠지. 이중 성질 제일 더러운 놈이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짜증이 더 솟구쳤다. 내렸다. 용주가 달러로 얼마를 낸다. 걸어도 10분이면 왔겠네. 그래서 짜증 낸 내 잘못이라고? 마차 타기 전에 얼마나 걷는지 확인도 안 했어? 구글맵에 다 나오잖아. 내가 옳다. 죽어도 내가 옳다. 화낸 사람은 필사적으로 옳아야 한다. 조금만 더 참지 그랬어. 토닥토닥. 내 안의 후회, 너는 꺼져 있어.
the loeb boathouse. 센트럴 파크 안에 있는 식당이다. 왜 boathouse일까? 보트를 탈 수 있는 작은 호수가 식당 옆에 꼭 붙어 있다. 스테이크를 썰면, 수많은 보트가 조금씩 움직인다. 그럴 의도야 없었겠지만, 보트는 최고의 장식이 되어 손님들의 식욕을 돋운다. 불친절한 매니저는 기다리라고만 한다. 테이블은 차려입은 손님들로 꽉 찼다. 섹스 앤 더 시티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있다. 이젠, 자리가 없어서 못 먹는 거야? 나의 짜증이 힘을 얻게 됐다. 실망스럽게도 우린 곧 안내됐고, 나는 에그 베네딕트를, 한 명은 연어를, 한 명은 스테이크를 시켰다. 홀란다이즈 소스를 끼얹은 달걀 요리, 에그 베네딕트는 나머지 두 메뉴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용주에게 나의 에그 베네딕트 하나를 넘겼다. 용주가 연어의 반을 내게 넘겼다. 스테이크는 말라비틀어진 꼬락서니가 슬펐지만, 넌 그냥 용주 친구. 네 것만 먹어. 우리는 잠시 음식에만 집중했다.
나는, 너보다, 너보다 더 많이 다녔고, 더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이곳이 기억될 곳임을 알지. 추억이 필요할 때, 이곳은 너에게, 너에게 찾아갈 걸 너네는 모를 걸? 추억이 자주 소환되는 때는, 현실이 메말랐을 때. 많이 늙은 채로, 뉴욕을 되새김하겠지. 센트럴 파크 그 식당 정말 좋았어요. 시간이 지나야만, 좋아요가 쉬워져. 지금 너희들은 좋아요라고 말하지 않아. 바보들!
“건배!”
형답게, 형이니까 맥주잔을 든다. 나나 되니까, 귀산 같은 타이밍에 잔을 든다.
“건배!”
“건배!”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제 글이 닿았으면 해서요. 제 책들을 널리 알리는 게, 글쟁이의 임무라고 생각해서요. 가까운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시면, 저의 오체투지는 덜 외롭겠어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9년간 방콕에 머물면서 사랑했던 단골 식당, 카페, 태국 음식에 대해 실었어요. 소소하게 즐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