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었다. 맨해튼의 첫날밤- 나는 악마일까

강렬하게 아무것도 아닌 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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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었다.


죽었나? 죽었다. 확신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았다. 9번가에서 네 블록을 올라가 우회전. 8번가로 들어서는 사거리. 살집이 있는 백인이 서있고, 흑인이 머리로 그를 민다. 부드러워서, 위협적이지 않다. 힘없이 밀리다가 넘어졌다. 주차된 검은 차에 뒤통수부터 쿵. 목이 꺾여서 그대로 멈춤. 사지를 늘어뜨리고, 눈을 뜨고, 입을 벌리고, 목은 구십 도로 꺾였다. 쓰러뜨린 흑인은 꺾인 사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다음부터 조심해, 이 새끼야. 그리고는 뒤로 몇 걸음. 그 걸음은 두려움이다. 죽은 척하지 마, 이 새끼야. 연기하는 거 다 알아. 빨리 일어나,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해, 말린다. 흑인은 더 크게 소리를 지른다, 누군가의 제지가 안전벨트처럼 여겨지는지, 다시 기세 등등. 제발 일어나, 죽으면 안 돼, 제발. 고함은 그렇게 들린다. 흑인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꺾인 사내는 완벽한 정지. CC TV에 찍힐 수도 있다. 나는 재빨라졌다. 30m 떨어진 곳으로 간다. 누구라도 나서야 한다. 인공호흡을 하거나, 몸이라도 흔들어 줘야지. 25m, 20m, 15m 다가간다. 하얗게 커져있는 얼굴엔 구멍만 있다. 숨도, 혼도 없다. 다시 물러선다. 40m 정도 벗어난 곳에서 지켜만 본다. 인공호흡을 할 줄 모른다. 몰라서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발을 동동 구른다. 초조해서일까? 초조한 척이라도 해야 해서일까?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 중 유일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됐다. 작은 호텔 도어맨이 그에게 다가간다. 어깨를 으쓱하더니 제자리로 돌아온다. 안 건드리는 게 상책. 목격자가 되어도 안 되고, 도움을 줘서 경찰서에 불려 가도 안 된다. 도시의 슬픈 상식. 이제 막 시작된 죽음이다. 혼은 주위를 맴돌며, 모든 일들을 부정 중이겠지. 영혼의 무게 21g. 죽고 나면 사라지는 21g. 과학자들에 의해 허구로 밝혀진 21g을 나는 믿는다. 믿게 됐다. 터키의 큰 명절 바이람. 가족이 나서서 가축을 잡는다. 신에게 바친다. 보통 소나 양을 잡는다. 목을 따면 엄청난 피가 치솟고, 울부짖음은 천천히 잦아든다. 내장도, 껍질도 덩어리일 뿐. 생명과 생명 아님은, 지구와 태양만큼이나 멀다. 피 한 방울 없는데도 사지를 떠다, 삶에 대한 미련 21g, 미련한 관성 21g. 그때 21g은 빠져나간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알라딘이 끝났는지 관객들이 극장에서 쏟아진다. 모든 관객들이 그를 외면한다. 램프를 빠져나온 지니는, 그의 죽음을 알아볼 것이다. 브로드웨이에서 그가 죽었다. 가장 넓고(Broad), 가장 밝은 죽음이다. 전광판의 빛이 너무 밝아서, 그의 목은 너무도 불편하다. 두 명의 젊은 남녀가 그에게 다가간다. 그를 눕힌다. 나도 숨을 편히 내쉰다. 죽음이라도 편해진다. 고마운 사람, 고마운 사람. 이미 늦은 구급차가 유턴을 한다. 눕혀져서는 눈이 감긴 남자는, 이제야 살아있는 얼굴이 된다. 사람들이 몰리고, 나도 용기를 낸다. 구급대원들이 내려서 그를 흔든다. 심장에 귀를 대본다. 그의 살아온 모든 시간들이 빛의 속도로 지나치겠지. 뒤뚱뒤뚱 금발의 아기가, 집 없이 거리를 떠돌게 되는 일생이 각각의 화면으로 펼쳐질 테지. 그는 받아들인다. 안녕


번쩍


그의 눈이 떠진다. 내가 가장 먼저 뒷걸음질 친다. 굉장히 큰 눈이다. 일어선다. 한쪽 팔씩 경찰에게 맡긴 채 일어선다. 살았다. 살아있다. 절뚝절뚝, 분명히 죽었던 사람이다. 안도감이 아니라, 놀라움이다. 그럴 리가 없다. 살았을 리가 없다. 15분이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15분이다. 남자가 구급차 안으로 사라진다. 표정만 보면 어떤 뇌손상도 없다. 나를 지배하던 공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배신감이 든다. 내 감정을 모독했다. 연기였나? 죽었어야지. 내 안의 악마는, 섭섭하다. 네이버에서 갑자기 검색 1위에 오른 인물이 ‘불타는 청춘’이나 ‘나 혼자 산다’에 나온 인물이라면 실망스럽다. 죽은 게 아니네. 죽음은 일상이 되어, 내 안의 악마와 친구가 됐다. 어머니를 욕한 적 있다. 흉을 보는 거 말고, 쌍욕. 어머니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다. 절대로, 절대로 그러면 안 돼. 그 ‘절대로’에 시비를 걸고 싶었다. 벗어나려고 해도, 유혹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래서 대뜸 어머니에게 욕을 했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생각으로 ‘분명히’ 했다. 그때가 중학생 때였다. 어머니가 세상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어서, 나를 죽이고 싶었다. 이런 면까지 고백해야 하나? 이 글을 보내고 나면, 나는 후회할 것이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하는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오체투지를 합니다. 가까운 학교, 도서관,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세요. 더 많은 독자와 만나고 싶습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9년간 방콕에 머물면서 알게 된 단골 식당, 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편한 마음으로 즐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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