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의 칭기즈칸, 황인종이 최고시다

어찌나 그렇게 든든하게 지랄맞냐?

by 박민우


“진짜 큰일 날 뻔했어!”


땀을 한 바가지 쏟은 용주가 휴게소 화장실에서 나온다. 용케도 버텼다. 아슬아슬 변기를 찾아냈다. 아슬아슬해서 아쉽다. 성인들이 똥을 지릴 확률이 얼마나 될까? 헛된 바람이었다. 나는 입맛을 다신다. 똥을 지리고, 평생 웃음거리로 전락하면, 평생 나의 우위가 유지된다. 똥이 일상적으로 하루에 서너 번, 아니 대여섯 번 마려운 생명체가 둘이나 같은 차에 있다. 신비체험 중이다. 똥싸개 둘은 정상인으로 돌아와서는 입맛을 다셨다. 다시 출발. 미국의 고속도로는 지겹다. 휴게소도 띄엄띄엄.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휴게소 아닌 휴게소들. 시응이는 잔다. 용주가 깨운다.


“이제, 네가 운전 좀 해!”

“아, 그냥 네가 끝까지 해!”


잠이 덜 깬 시응이가 짜증을 낸다. 시차 적응의 떠오르는 별은, 지는 별이 됐다. 정말 가소로운 새끼야. 시차 적응 끝난 것 같다더니, 꺾어진 고개는 올라올 줄 모른다. 무슨 대단한 놈들이라고, 본명을 감춰? 죄지었어? 내 작명 실력에 새삼 놀란다. 시(차적)응계의 무능력한 샛별, 시응이. 트와이스 노래만 스무 번 이상 들었다. 1차선으로 바꿔야지. 아, 그럼 네가 하든가. 또 싸운다. 똥싸개 두 놈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사이좋은 것보다는 훨씬 보기 좋다. 셋 사이에서 유난히 둘만 가까우면, 그 꼴은 ㄸ 내가 못 보지. 아름답지 않고, 평화롭지 않게 적당히 갈구는 삼각관계가 가장 이상적이다. 아닌 척할 뿐, 남자 놈들의 질투도 어마어마하다. 이러다 한 놈이 차를 세우고, 갓길로 사라지는 것도 좋다. 둘의 싸움질을 응원한다. 아침의 소란, 시작의 설렘은 없어졌다. 여행의 구성은 늘 같다. 부산스럽고, 신나지만 그 감정은 이내 사라진다. 보스턴은 벌써부터 시시하다. 이 멍청하게 지루한 감정은, 일종의 양념이다. 너희들은 그냥 간다. 미국의 땅덩이는 멍청할 정도로 비대하고,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다라고 짜증 내면서…. 우리가 보는 땅, 하늘, 가게, 사람들은 언제나 같은 모습일까? 눈치 못 채게 달라지고 있는데도? 오늘은 5층 건물이 내일은 6층이 되고, 검은색 건물이 회색이 되는 식으로 말이다. 멍청한 인간은 그럴 리 없다며, 모든 변화를 부정한다. 보스턴은 지금 급격히 아름다워지고 있다. 내가 그러라고 시켰다. 하찮은 것들아, 놀랄 준비를 하렴.


“퍽!”


용주의 맥북이다. 열린 가방에서 툭, 보스턴 길바닥으로 떨어졌다. 250만 원짜리 맥북 프로다. 나는 몹시 억울한데, 도와주려고 했을 뿐이다. 몸만 쏙 빠져나오면 정 없으니까, 컴퓨터 가방을 들고 나왔다. 가방 지퍼를 왜 열어놔? 백번 용주 잘못이다. 7시간 만에 보스턴이다. 250만 원짜리가 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모서리가 흉하게 벗겨졌다.


“그걸 왜 들고 나와요?”


용주, 싸가지


“왜 가방 지퍼를 열어놔?”


시응이가 반격한다.


한 놈은 내게 짜증을 내고, 한 놈은 나를 감싼다. 남의 가방을 들어줄 땐, 지퍼부터 확인할 것. 앞으론 명심하겠다. 맥북 따위가 뭐라고, 자아성찰까지 해? 물어주면 될 거 아니야. 그깟 250만 원. 마음의 소리가 쩌렁쩌렁. 나만 듣기로 한다. 맥북은 차바퀴 밑에도 깔려보고, 냉동실에도 있어 봤을 거다. 2m 높이에서도 떨어뜨렸을 거야. 모든 충격 실험을 통과했으니까 사과 마크가 붙었지. 스티브 잡스는 대충 만든 맥북은 불로 다 태워버렸다. 하늘나라에서라고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지. 전 세계 화제는 다 B급 맥북을 태우다가 일어난 일이다.


에어비엔비로 빌린 방이다. 자신이 살던 방, 쓰던 집이 누군가의 숙소가 된다. 집주인이 기다렸다가 열쇠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방탈출 게임처럼, 암호처럼 어딘가에 숨겨 놓기도 한다. 엘리베이터 옆 복도 끝까지 가시오. 검침기가 보일 거요. 검은색 박스와 하얀색 박스가 있소. 검침기 옆에 검은색 박스 말고, 검침기 아래 하얀색 박스요. 열쇠가 있을 것이오. 이번 미션은 쉬우면서 헷갈렸다. 검은색, 하얀색을 둘 다 언급했는데 성질 급한 사람은 검은색만 읽는다. 검은색 박스에 열쇠가 있다. 열쇠가 있는 박스가 설마 또 있겠어? 그러다 보면 일이 커진다. 방문이 죽어도 안 열리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하얀 박스까지 본다. 여기에도 열쇠가 있군. 진이 빠진다. 맥북프로 소유주 용주는 잠깐 헤맸지만 훌륭히 열쇠를 찾아냈다. 5층 건물의 4층을 눌렀다. 꿈쩍도 안 한다. 엘리베이터에 열쇠 구멍이 있다. 열쇠를 꽂는다. 다시 4층을 누른다. 버튼이 반짝,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 엄청난 기술력이다. 방 탈출 게임 마니아들에겐 이런 곳이 성지. 가진 게 많은 이들을 위한, 우아한 고물. 흥미롭게 후진 엘리베이터다. 오래된 건물은 깨끗하고, 우아하다.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오른쪽 복도 끝 방. 문이 열려있다. 방문을 열려있고, 백인 남자 한 명이 손을 앞으로 모으고 현관에 서있다.



“누구시죠?”

“부동산에서 왔어요. 오픈 하우스 시간이에요. 한 시간 후면 끝나요.”


용주는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약속대로 네 시잖아요. 왜 사람이 있죠?”


원래는 내일부터 묵기로 했다. 일정을 하루 앞당겼다. 일정은 바꿔주겠다. 대신 부동산에서 사람이 온다. 네 시부터 입실이 가능하다. 집주인과 합의를 봤다. 부동산에선 네 시부터 다섯 시까지로 알고 있었다. 누구나 와서 집을 둘러보고, 관심 있는 사람은 가격을 묻는다. 미국식 집 팔기, 오픈 하우스. 용주는 왜 이리 노발대발일까? 서로 사정 봐준 건데. 한 시간 후면 끝난다는데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이딴 이야기로 맥북 주인을 자극하면 안 되니까, 나는 절대로 참고, 참겠다. 부동산 직원은 용주의 기에 눌려 쩔쩔맨다. 용주는 전생에 칭기즈칸이었나 봐. 유럽을 활개 치고 다니던 몽고반점의 영웅. 백인들이 용주만 보면 다들 그렇게 쩔쩔맨다.


“뭐야? 변기에 물도 안 내려가. 아 진짜 열 받네.”


누군가 먼저 갈긴 소변이 변기에 찰랑찰랑.


“이거, 뭐야? 유리조각이잖아. 여기도, 여기도. 미친 거 아냐?”


욕조와 변기를 나누는 미닫이 유리문(이런 게 필요해?) 파편이다. 누군가가 부쉈다. 파편이 여기저기다. 누가 깼지? 청소를 아예 안 한 걸까?


“이틀에 백만 원짜리 집이야. 환불할 거야. 고소할 거야.”


백만 원? 그 돈이면 그냥 힐튼 호텔에서 자지. 나 때문이다. 침대 세 개인 방은 흔치 않다. 셋이 화장실 나눠 쓰고, 드라이기 나눠 쓰면 불편하다. 깊이 못 잔다. 스무 살 때야 함께면 무조건 좋았지. 마흔이 넘으면 안락함이 최고다. 나 때문에 굳이 방이 두 개인 곳을 찾았겠지. 힐튼 호텔 스위트룸을 그냥 잡지 그랬어. 소파에서 자도 되는데. 그런다고 내가 안 삐질 사람은 아니지만, 또 먹는 거 있으면 풀리잖아. 용주는 배려의 아이콘, 따뜻한 새끼, 지금은 고릴라처럼 발광하지만, 발광도 아예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니까. 맥북 이야기는 일절 없는 걸 보니까, 잊은 게 분명하다. 이런 자잘한 문제는 사실, 내게도 유리하다. 시응이도 함께 발끈 중이다. 나도 화가 나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래지질 않는다. 하루 50만 원짜리 방은


아름답다.


실용적 가치는 개나 줘 버린 길쭉한 직사각형 거실이다. 집이 크면 뭐하나. 방 두 개, 화장실은 한 개. 한 달만 살아도 정 떨어질 공간. 하지만 거실은 완벽한 카페다. 귀부인의 서재다. 잡지사 기자였던 나는 공간의 가치를 안다. 인테리어 꼭지를 찍으려면 전국 곳곳 부잣집 거실을 뒤져야 한다. 부분, 부분은 근사해도 통으로는 그저 그런 집이 많다. 가구를 옮기고, 끄집어내고, 인공조명과 반사판을 이용해서 겨우겨우 비슷한 분위기를 만든다.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가장 비싼 오렌지와 포도를 사 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10초만 보고 넘길 페이지를 위해, 종일을 바친다. 이 집은 그럴 필요가 없다. 찍으면 화보다. 어느 각도에서도 아름답다. 배치된 가구와 소품 역시 완벽하다. 연예인의 얼굴이다. 연예인은 예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정면, 측면이 다 좋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예쁜 사람도 방송 카메라에선 오징어가 된다. 측면, 후면이 입체적이지 않아서다. 거실의 모든 창이 보스턴을 바라보고 있는 16억 집은, 하루 50만 원을 쓸 가치가 충분하다. 여기서 글을 쓰고 싶다. 거실을 한 달만 쓰게 해 주면, 노벨상을 타서 이 집을 널리 알릴 텐데.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닿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겠습니다. 가까운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세요. 저의 오체투지를 응원해 주세요. 미리 감사드립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습니다. 9년 차 방콕러가 추천하는 맛집, 음식 이야기입니다.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맨해튼에서 보스턴으로 가자, 쓰레기들아! 나는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