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명물 랍스터 샌드위치

이게 맛없을 수가 있어?

by 박민우

건물 1층엔 가구점과 발 마사지 집이다. 헬스클럽과 작은 카페, 중국인 슈퍼마켓이 주변에 흩어져 있다. 띄엄띄엄 상가들이다. 건물들은 회색, 혹은 베이지색이고 언뜻 유럽의 주택가다. 바람이 세다. 방에 있는 겉옷을 가져와야 하나? 춥지만 귀찮다. 바람이 잦아들겠지. 용주는 이미 와봤던 곳, 시응이는 해외여행이 네 번째. 당장은 거센 바람. 앞으로만 나아가기. 길을 건너고, 빌딩 사이 골목을 지나고, 큰 거리. 큰 거리 양쪽으로 더 높은 빌딩, 빌딩들. 걸어서 5분, 바로 중심가다. 삼청동 정도를 기대했는데, 느닷없이 여의도다. 맹렬한 바람. 아무 곳이나 그냥 들어가자. 눈이 감기고, 고개가 꺾인다. 보스턴 사람들도 찌푸리잖아.


“그냥 아무 데나 가자니까.”


추위와 배고픔을 가장 못 견디는 사람이 보통 가장 나이가 많다.


“옷을 살까요?”


춥다고 옷을 사? 알았어. 빨리, 빨리. 찌푸린 얼굴로 나는 다그쳤다. 보스턴의 빌딩들은 아름답지만, 구태의연하다. 고층건물이 아예 없는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이 차라리 신비롭지. 빌딩 숲은 눈이 피로하고, 혼이 쏙 빠진다. 도시는 별처럼 반짝이는 야경이 차라리 낫다. 망할 쇼핑몰은 얼마나 걸어야 해? 십 분 이상은 못 걸어, 죽어도 못 걸어. 투덜대던 나는, 멈추고, 가방을 열고, 카메라를 꺼내고, 켰다. 어디에나 있는 빌딩인데, 어디에도 없는 빌딩 숲이다. 비슷한 색, 비슷한 사각형. 도시 미관을 파괴하는 거대한 꼰대들. 통일된 거대함이, 구태의연하게 새롭다. 신세계 고속터미널점이 수십 채, 현대백화점 판교점이 수십 채다. 나는 물 위의 거위처럼, 잦아들었다. 와, 대박! 함부로 나와서는 안 되는 감탄이, 삐져나오고 말았다. 그 정도인가? 용주는 내가 더 신기하다. 좋은 거구나. 시응이는 주입식으로 맞장구를 친다. 백 명이면, 취향도 백 가지다. 하지만 여행의 신이 좋다잖아. 백종원이 맛있다고 한 라면을, 바로 옆에서 먹는 것과 같다고, 이 새끼들아! 그게 맛있든, 맛없든 무조건 맛있는 거야. 너희들은 내가 좋다고 할 때마다 십만 원씩 내야 해. 지금 이 풍경이 갑자기 더 새롭고, 특별해졌잖아. 누구 때문에? 나 때문에. 자비로운 나는 맥북 스크래치 낸 걸로 퉁치겠다.


쇼핑몰에서 용주와 시응이는 겉옷을 한 벌씩 샀다. 바나나 리퍼블릭. 그러니까 미국의 유니클로.

“형도 하나 골라 봐요.”

“아니!”


잠깐 멈칫했지만, 못 느꼈겠지? 자존심이 먼저다. BOSS나 라코스테였다면, 네깟 게 왜 옷을 사주냐며 과감하게 한 소리한 후, 입어나 볼까? 거울에 요리조리 대보다가 용주가 계산할 때 턱 올려놨겠지. 미국의 유니클로 정도지만, 바람 피하려고 옷을 사는 용주와 시응이가 멋져 보였다. 세븐일레븐 우산을 들었다 놨다 했던 나와는 근본부터 다른 분들. 나는 견딜 만하다고 했으니, 이제 아무리 추워도, 춥다 하면 안 된다.


“여기도 좀 먹을 만해요. 출장 오면 들르는 곳이에요.”


james hook. 조립식의 허접한 건물이다. 세금도 못 내는 가건물 같아서, 왜지? 의심부터 했다. 거대한 랍스터들이 수조에 가득했다. 크기가 성인 상반신만 한 것도 있다. 세계 테마 기행 촬영 중 여러 번 랍스터를 봤지만, 이만한 랍스터는 처음이다. ‘어마어마’란 단어는 이런 랍스터에만 붙여야 한다. 어마어마하다.


“사면 조리해 주나요?”

“문 닫을 시간이에요. 여섯 시면 닫아요.”

“그럼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요?”

“클램 차우더랑 랍스터 샌드위치는 가능해요.”

“그냥 내일 먹자!”

“그래도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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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를 모르는 절대 고집 용주, 포기가 세상 제일 쉬운 박 작가. 빈손으로 나오는 건 용주 사전에 없다. 테이블 정리도 끝났다. 비까지 내린다. 나가서 먹어야 한다. 랍스터 샌드위치 둘, 클램 차우더 큰 거 하나를 들고 나왔다. 가는 빗방울이 천천히 내리고, 괴로운 바람은 잠잠해졌다. 으슬으슬하다. 이런 날은 따끈한 온수 매트 위에서 몸살을 앓아야 한다. 진라면 매운맛이 없는 보스턴에선, 절대로 아프면 안 된다. 식당 주차장 옆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시응이는 표정이 없다. 표정이 밝아질 땐 치킨이 있을 때고, 표정이 없을 땐 치킨이 없을 때다. 어른 새끼가 치킨만이 내 세상이라니. 치킨이 없으면 세상 무너지는 표정은 열세 살까지 만이다. 우린 동시에 클램 차우더에 손을 댔다. 고소한 크림 맛, 짭조름한 조개 맛. 싱싱한 바다가 크림수프 구석구석에 월세를 내고, 눌러앉았다. 기다림 없어도 계속 고소하고, 줄기차게 진하다. 아무리 피곤해도, 추위에 떨어도, 바나나 리퍼블릭 바람막이 재킷이 없어도 내 혀는 예리하다. 비범한 맛을 비범하게 알아본다. 이건 놀랍잖아. 자루에 금을 쓸어 담아라, 이 멍청이들아! 한 술, 한 술이 모두 금이다. 두세 번 먹고 숟가락을 놓는 시응이 덕에 상대적으로 수프의 양이 늘었다. 고맙다, 멍청아. 샌드위치는 안 건드리고 싶었다. 입을 벌릴 수가 있어야지(턱 빠진 채 뉴욕 온 거 다들 아시죠?). 랍스터니까 가재구나. 속만 긁어먹자. 양파도, 오이도, 토마토도 없다. 오직 가재 살코기뿐이다. 삶아서 드레싱에 버무리기만 했다. 입을 악어 새끼처럼 쫙 벌렸다. 당장 병원에 실려 가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먹어야 한다. 주어진 쾌락을 내일로 미루지 말 것. 내일은 내 것이 아니다. 오늘만 내 거. 그러니까 짐승처럼 달려들어서 오늘의 살점을 낱낱이 뜯어먹어야 한다. 민우형은 호들갑이 심해. 용주 새끼가 감히 나를 분석한다. 정말 너희들 십만 원씩 내놔. 라코스테 셔츠를 입고 먹으면 딱인데. 이 우아한 맛은 주인을 참 잘 만났다. 빠진 턱이 비명을 지른다. 그래 한 번 뒈져 봐. 나는 혀끝의 쾌락만 편애 중이다. 인생 샌드위치를 먹은 날이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작은 재미, 작은 위로가 되는 글이고자 해요. 가까운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세요. 작은 응원은 큰 힘이 됩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이 책으로 방콕이 두 배, 세 배 더 특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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