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날
공항으로 갈 때는 주노(juno) 어플을 이용했다. 택시 서비스 어플이 미국엔 여러 개다. 버스를 타고 가려다 포기한다. 새벽 다섯 시, 맨해튼의 새벽을 휘젓고 싶지 않다. 택시 어플로 우버(Uber)가 유명하고, 주노(Juno)는 신생 업체다. 주노는 뉴욕에서만 서비스 중이다. 신생 업체는 할인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다. 박찬웅 셰프가 알려줬다. 어플을 깔고, 남의 나라 차를 부른다. 온다. 신기하다. 그 와중에 더 싼 어플을 기어이 찾아 쓰는 나도 신기하다. 스마트폰 없던 시절, 어찌 다녔을까? 모르고 아예 안 쓰면 몰라도, 이제는 불가능하다. 스마트폰은 전지전능하다.
스마트폰을 끝까지 안 쓰고, 죽고 싶었다. 후배 놈이 중고 아이폰을 안겨주는 바람에 스마트폰 세상에 참전했다. 방콕의 한 엘리베이터에서였다. 문이 열리고, 문이 닫힌다.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들이 일제히 스마트폰으로 고개를 떨궜다. 한 서양인만 예외였다. 아니다. 나까지 둘이 예외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이 미친 사람들 좀 보세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말세야, 말세. 우리만 빼고 모두 스마트폰의 노예로군요. 나는 끄덕끄덕, 그의 말에 동의했다. 대놓고 눈앞의 사람을 한심해하는 당신도 보기 싫어요. 꼰대 양반. 끄덕이다가 급히 멈췄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웹툰, 뉴스, 드라마, 영화, 유튜브. 수억 개의 사이트와 콘텐츠가 있지만 비슷비슷한 것만 본다. 뉴스나 페이스북을 볼 때 스크롤을 정말 빨리 내린다. 글은 말할 것도 없고, 사진도 대충 본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이들이 내 글에 열광하는 꼴을 보고 싶다. 전생이 떡볶이였던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연애 소설을 쓰고 싶다. 전생에 떡꼬치였던 남자와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한다. 두 문장 정도 썼는데, 벌써 지겹다. 딴 이야기를 쓰겠다.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샌프란시스코는 설렌다. 따뜻하고, 향기롭고, 상냥할 것이다. 아무나 내게 말을 걸어줄 것만 같다.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꼭 연락하라던 친구도 있다. 불평의 달인 박민우는 호들갑의 달인이기도 하다. 천국에선 천사가 된다. 샌프란시스코는 천국일 것이다.
알래스카 항공 비행기를 탔다. 나는 알래스카 항공만 타. 한국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열 명이나 될까? 당연히 나도 그 열 명 중 한 명이 아니다. 한 푼이라도 싸니까, 한 번 타봤다. 알래스카 항공의 불편한 점은 딱히 발견 못 했다. 깨끗하고, 공간도 넓다.
“오 마이 갓!”
뒷자리다. 내가 의자를 젖힌 탓에 음료 컵이 넘어졌다.
“오, 쏘리!”
내 쏘리에 대한 답은 없다. 그녀는 인상을 쓰고 닦기만 한다.
“리얼리 쏘리!”
다시 한번 쏘리 했다. 그녀는 성가시다는 듯 인상을 썼다. 그게 다야? 입도 뻥긋 안 한다. 승객의 60%가 의자를 젖혔고, 내가 61%가 되려는 순간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인도 풍의 옷차림. 명상과 자유로움이 잘 어울리는 여자는 여전히 화가 나있다. 나는 왜 두 번이나 ‘쏘리’라고 했을까? 내 잘못은 뭐지? 내 앞 승객은 그냥 의자를 젖혔다. 젖히지 않으면 나만 손해. 그래서 젖혔다. 내가 왜 미안해해야 하지? 언제나 굽실굽실. 노예 같은 놈, 등신 같은 놈.
내가 동양인이라서?
내가 비실비실 만만해 보여서?
못 생겨서?
여자가 평정심을 찾고, 책을 펼친다. 그녀의 평온함이 내 증오의 대상이다. 안절부절. 그녀에게 화내고 싶다. 그녀가 당황하는 꼴을 보고 싶다. 그녀의 안색이 붉으락 푸르락, 레이저 쇼처럼 급변하는 꼴을 보고 싶다.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하철에서 한 아이가 소란스럽게 뛰어다닌다. 아이아버지는 그 아이를 보기만 한다. 보다 못 한 다른 승객이 아버지를 나무란다. 아이가 저리 버르장머리 없이 뛰는데, 아버지가 보고만 있소? 아버지는 멍청한 표정을 정리한다.
-아이 엄마가 오늘 죽었어요. 어미가 죽은 것도 모르고, 저리 뛰네요. 너무 어이가 없고, 너무 가엾어서 보고만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의 해석은 늘 부분적이다. 부분적인 해석으로, 내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다시 의자를 젖힐 수 없다. 그녀도 음료 컵을 제자리에 놓을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그렇게 빼앗겼다. 우리의 잘못이 아닌데, 우리의 잘못이 됐다. 당신도, 나도 죄 없이 죄인이다. 당신의 하루가 아직 멀었고, 나의 하루도 끝나지 않았다. 당신이 전혀 미워지지 않게 됐다. 놀라운 반전이다. 샌프란시스코가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따뜻할 것이다.
향기로울 것이다.
상냥할 것이다.
답답한 채로 잠이 온다. 그럴 줄 몰랐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세상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싶어서요. 작은 오체투지라고 해두죠. 가까운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박민우 작가의 책들을 신청해 주실래요? 오체투지가 외롭지 않겠네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9년간 방콕에 머물면서 자주 갔던 단골집, 카페, 태국 음식에 대한 책이니까요. 부담 없이 즐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