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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따위 하루 때문에 평생을 떠돌지

여행의 환희를 대하는 방법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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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배정된 방은 4층. 좁고, 느려 터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복도를 지나 막다른 곳에서 우회전. 407호. 문을 열 때는 전학생 기분이 된다. 어떤 표정으로 문을 열어야 하나? 작은방에 옷장, 철제 2층 침대 두 개. 창문은 반쯤 열려서는 싸구려 커튼이 흐느적. 화장실 겸 샤워실도 방안에 있다. 방은 텅 비었다. 깨끗한 편이다. 일단은 독방. 아무 침대나 고르면 된다. 무조건 아래층, 오른쪽 침대를 고른다. 눕는다. 다시 왼쪽 아래 침대로 옮긴다. 플러그를 꽂을 곳이 왼쪽 침대에만 있다. 독방이 될 수도 있어. 그 많은 방이 다 찰 리가 있어? 한 여름 성수기도 아니다. 빌어먹을 철제 침대에서 마음껏 뒤척이고 싶다. 삐걱삐걱, 다음 뒤척임까지는 5분, 5분은 참아야 한다. 5분간 침만 꿀꺽. 그런 새벽, 그런 선잠 싫다. 그러니까 이 방은 꼭 독방이어야 한다. 깨끗한 침대 시트를 킁킁 맡고, 샤워하고, 발톱을 깎는다. 로션을 바르고, 왁스를 듬뿍 발라서 머리를 꼿꼿이 세운다. 한국 기준으로 못생기면, 왠지 미국에서 잘 생겼단 소리를 들을 것만 같다. 내 몰골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숙소에서 나와서 반 블록을 내려가면, 바로 사거리다. 왼쪽 방향이 오르막길이다. 눈이 쌓이면 스키장 고급 코스로 딱인 굴곡과 경사다. 장관이라면 장관인데, 겨우 50 미터 걸었다. 당연히 오르막 쪽으로 걷는다. 경사는 중간중간 평지를 만나고, 평지는 좌우 길로 연결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거대한 언덕을 바둑판 모양으로 길을 내고, 길이 아닌 곳은 집으로 채워놨다. 가난이라든지, 찌든 일용직을 이해 못하는 3층 주택들이 늘어져 있고, 호텔, 식당, 카페들도 포동포동 배를 내밀고 있다. 금세 숨이 찬다. 허벅지에 통증이 느껴진다. 그럴수록 더 빨리 걷는다. 곧 행복해질 것만 같다. 제법 올라와서는, 뒤를 돌아본다. 가파르다. 위에서 본 풍경도 장관이라면 장관인데, 감탄하진 않겠다. 겨우 10분 걸었다. 아직은 아직이다.

종소리가 들린다. 가로로 가지런한 계단, 회색빛 건물. 내부는 높은 천장과 시원시원한 기둥,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웅장하다. 여기가 그레이스 대성당이구나. 나 말고는 다들 일부러 찾아왔겠지. 지금까지 많은 성당을 봤고, 하나같이 웅장했다. 작아서 유명한 성당을 가본 적이 없다. 그레이스 대성당에 놀란 건, 웅장함보다도 기부 단말기 때문이다. 실내에는 신용카드로 기부를 하는 단말기가 달려있다. 한 번 긁으면 10달러. 내 주머니엔 신한 비자 카드가 분명히 있다. 카드를 끝내 꺼내지 않았다. 약간의 죄책감만 놔두고 오기로 한다. 성당은 총 10분을 봤다. 오르막을 허겁지겁 올라오면서 느꼈던 흥분이 가시질 않는다. 조금만 더 걷겠다.

성당 계단 밑에 한 남자가 있다. 성당으로 들어가기 전에도 눈에 띄었다. 성당을 나오는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너무 가까워지면 되려 놀란다. 뒤돌아선다. 그걸 몇 번 반복한다. 내가 성당에서 나왔을 땐 그냥 길가에 서 있다. 몹시 담배가 피우고 싶은 얼굴이다. 성당 계단을 내려가는 나는 그와 약간 가까워진다. 그는 곁눈질로 나를 본다. 곁눈질엔 두려움이 가득하다. 나는 그를 지나친다. 내가 지폐를 꺼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나도 가난해. 나도 힘들어.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그와 나는 팽팽하게 이성적이다. 노숙자의 표정엔 후회와 두려움이 가득하다. 초점을 잃고 헤롱 대거나, 열심히 구걸을 하는 다른 노숙자들과 확연히 다르다. 모든 두려움은 ‘걸쳐 있기’ 때문이다. 굶든지, 빌든지. 그러니까 당신은 처절하게 구걸로 뛰어들어야 한다. 당신을 윽박지르는 나는 폭력이다. 나는 당신을 오래 기억하지 않겠다. 나는 당신일 리 없다.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오고 싶어만 했지, 지식은 전무했다. 날씨가 좋다, 성소수자들의 성지다, 물가가 비싸다 정도? 아, 그리고 전차. 앙증맞은 전차가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전차가 마침내 곁을 지난다. 평지를 다니는 전차로만 알았다. 이렇게 경사진 도로를 오가는 줄 몰랐다. 전차 안의 관광객들이 내게 손을 흔든다. 너무 행복해지면 주체를 못 하겠어? 나를 아니? 왜 손을 흔들지? 반미치광이처럼 여행에 절여진 인간들에게 시비를 걸고 싶다. 자, 이제 한 시간을 걸었다. 게으른 여행자의 상상과, 눈앞의 샌프란시스코가 적나라하게 비교되고 있다. 마침 바다가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도시였구나! 샌프란시스코가 바다를 끼고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바다를 인식하고는, 놀란다. 2km? 아니 그 이상의 집들이 바다를 향해 일렬로 서 있다. 한 채가 쓰러지면, 차례로 넘어져서 푸른 바다로 쿵, 큼직하게 물방울이 튈 것이다. 팔이 유난히 긴 거인처럼, 양 팔을 닮은 집들이 나를 안는다. 나는 안긴다. 온기까지 느껴진다. 20억, 30억, 40억 원을 호가하는 집들이 스케일링이 끝난 치아처럼 반질반질. 길게 뻗은 길은 팽팽한 헝겊 같아서, 한 번 튕기면 자잘한 쓰레기와 먼지가 하늘 높이 솟구칠 것만 같다. 걸음에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날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이탈리아 영화 summer time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지금은 계약이 끝났는지 검색이 안 된다(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summertime+netflix). 이탈리아 젊은 남녀가 샌프란시스코 게이 커플 집에 머문다. 500일의 서머가 떠오르는데, 그 영화보다 더 치명적이고, 아프다. 내용은 아픈데, 샌프란시스코는 마시멜로우처럼 달고, 크루아상처럼 고소했다. 버터향이 짓이겨진 폭신함 같은 거. 어디서나 그런 향이 날 것만 같았다. 크루아상 바람과, 녹인 버터가 듬뿍 담긴 바다를 기대하며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그래 놓고는 바다를 보면서 놀란다. 나의 기억은 뒤늦게 찾아와서, 허겁지겁 내 여행을 일깨운다. 보이는 모든 것이 과장되었다. 보기 싫을 정도로, 화사하다. 가장 더러운 카페에서 가장 비싼 컵케이크를 허겁지겁 먹겠다. 여행의 90%를 채우는 지겨움, 외로움, 배고픔, 후회, 난처함은 이따위 하루에 철저히 무너진다. 이따위 하루에 미쳐서는 평생을 떠돌게 된다. 샌프란시스코가 미국의 첫 도시였다면, 나머지 도시들이 모조리 흐릿했을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한 시간 전보다 너무 확실해져서, 나는 뜨겁다. 너를 사랑한다. 주저하지 않아도 되는 아름다움은 있다. 노력할 필요도 없다. 사랑하면 된다.


그날 밤 세 명의 프랑스인이 내 ‘독방’에 들이닥쳤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하는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저를 낮추고, 세상 끝까지 천천히 닿고 싶어서요. 가까운 도서관, 학교에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세요. 저의 오체투지에 동참해 주시면, 저는 두렵지 않게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9년간 방콕에 머물면서 애정을 품었던 단골집, 태국 음식, 카페 이야기입니다. 소소한 즐거움을 드릴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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