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생에 드릴이었을까?
안 그래도 큰 눈을 무한 확장한 채, 인도 남자 한 명이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사리 분별 못 하는 바보들은 그냥 인도인이네 했겠지. 난 단번에 알아봤다. 브라만이다. 모든 브라만(카스트 계급의 가장 위)이 건방지지는 않지만, 건방 아우라를 철철 흘리는 애들은 모두 브라만이다. 내가 이런 곳에 올 사람이 아닌데. 온몸으로 억울해하는 표정 좀 봐.
“출장이라서 비싼 호텔에서 돈 낭비하고 싶지 않았거든. 이런 방이구나. 여기서 다 같이 자는 거야?”
삼십 대 중반. 인도 뉴델리 출신이고, 부모님은 뉴델리에 계신다. 지금은 미네소타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중이다.
“노숙자가 이렇게 많은 도시는 처음 봤어. 미네소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런데 모르는 사람끼리 자도 괜찮아? 이런 방에서 자는 사람들이 많아?”
“미네소타에 노숙자가 안 보인다고, 진짜 없을까? 너한테 안 보이는 거겠지. 너, 뉴델리에 있을 때 지하철 타보기는 했어?”
“응? 지하철? 딱 한 번 타 봤어. 너무 차가 막혀서.”
“내가 너보다 인도에서 지하철 훨씬 더 많이 타봤어. 인도 서민은 내가 더 잘 알 걸? 너는 정원 큰 집에서 살지? 집에는 도우미만 네다섯 명 두고 말이야.”
“아냐, 이젠 다들 그만두고 아버지 병 수발드는 사람 한 명, 살림해 주는 사람 한 명. 딱 두 명뿐이야.”
너, 겁나 부자지? 이 말을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게 묻는 남자가 이 방에 있다. 정말 아까운 재주야. 쓸모는 딱히 없지만, 박민우 일단은 대단해. 리그베다 경전을 읽는 브라만 사제처럼, 스텝의 영어가 빠르고 정신 사나웠지만, 다 들리는 척했다.
“밥 먹으러 갈래? 내가 살게.”
이 말을 끄집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이고, 장단을 맞춘 걸 브라만 너님은 모를 걸? 대놓고 동냥을 한 건 아니지만, 뼛속 깊이 나는 거지다. 국민학교(그래 초등학교 아니고 국민학교) 때 오락실 아들내미에게는 늘 웃음으로 대했다. 그놈만 보면 그냥 웃음이 났다. 그냥 다 잘해주고 싶고, 걱정되고 그랬다. 새끼 제비 정엽아, 어떻게든 너의 배를 부르게 해 주마. 메뉴까지도 우리 애기 취향으로 해줄게. 뭐 좋아하니? 아빠가 뭐는 더 못 할까. 아빠가 너무 혀를 놀려서, 얼굴이 노래졌다고? 어지럽지 않냐고? 아빠가 힘든 건, 아들 컵라면 먹일 때지. 국물에 나초칩 폭폭 담가 먹는 아들 생각하면서 김치 부리또 먹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 너를 위해 이 자리에서 쓰러지고 싶다. 뭐라도 해야 아빠지. 너는 내가 아빠가 아니겠지만, 나는 오늘 아빠 할란다. 오늘 발 뻗고 잘게. 오늘 밤 정엽이 먹는 거, 절반만 먹을게. 다 먹고, 더 먹고. 그러기야. 약속!
“정엽 씨, 오늘 같이 밥 먹자네요. 이 친구가 쏜다니까, 같이 밥 먹으러 가요(놀랍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나는 정엽이에게 늘 존대를 했다)”
“죄송한데요. 저는 얻어먹는 걸 못 해요. 부담스러워서요. 선생님, 저는 빠질게요.”
선생님? 오, 이 호칭 은근 중독성 쩐다. 확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를(내 정확한 나이를 이 친구는 모른다) 어떻게 불러야 할까? 형이라 부르기엔 너무 늙었을 경우, 고민은 깊어질 테지. 스페인어권에선 띠오(삼촌)가 참 유용하다. 우리나라 정서상 초면에 삼촌은 거북하다. 아저씨는 싸우자는 것처럼 들린다. 정엽이도 나름 고민 후에 골랐을 호칭, 선생님. 선생님이라니, 선생님이라니. 난 너 앞에선 거룩해져야만 하니? 어쨌든 정엽이는 깍듯하게 사양했다. 나만 흥분하고, 나만 보람찬 일이 돼버렸다.
“그래요. 그럼!”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남에게 신세 지는 걸 극도로 못해요.”
이미 기운이 빠진 나는 아무래도 좋아져 버렸다. 내 돈 안 쓰고, 밥 한 끼 사주기. 이 목표만 보고 달렸고, 당사자가 No라고 했다. 상황은 종료됐다. 나는 사람을 확실히 못 보는구나. 정엽이를 젊은 박민우로 오해했다. 돈 한 푼 안 쓰고, 배부르게 먹으면 장땡인 부류가 정엽이는 아니었다. 내 돈으로 섣불리 밥 사준다고 했으면 어쩔뻔했나. 가슴이 다 철렁하다. 나 상처 받지 말라고 나초칩 반봉지를 받아준 거였구나. 내가 예약한 자전거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건널 때도, 마음 편치 않았겠구나. 풍선 바람이 빠지듯, 방안의 활기는 온데간데없어졌다. 나는 이 친구와 일대일로 밥 먹고 싶지 않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더 떠들 힘은 없다. 스텝은 친구 만나러 나간다며 담담하게 퇴장했다.
2
"드르르르르, 드르르르르, 드르르르르륵"
고막을 드릴로 뚫는 소리다. 새벽 한 시쯤? 스텝이 코로 울부짖고 있다. 코골이 전문가인 나도 듣도 보도 못한 괴성이다. 창엽이는 쌔근쌔근 아기 잠을 잔다. 현장을 보지 못한 이들은 내 호들갑을 의심할 것이다. 드릴로 콘크리트를 뚫는 코골이 소리, 귀에 이어폰도 안 꽂고 꿀잠 자는 정엽이. 전 세계 동시 생중계가 마땅한 광경이다. 편두통을 동반하는 굉장함이다. 나는 담요를 들고 1층 공용 거실로 도망갔다. 지저분한 소파에 몸을 눕혔다. 호텔 직원이 나를 깨웠다. 여기서 자면 안 돼요. 나는 담요를 들고, 내 방이 있는 4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4층 공용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만 있는 게 아니고, 1인용 소파가 있는 다용도실이다. 앉은 채로 졸겠다. 쉬지 않고 드릴로 벽을 뚫는 방이 너무 무서웠다. 공포와 피곤함을 곁에 두고, 앉은 채로 아침을 기다렸다. 내가 진상 코골이 숙박객이 될까 봐 늘 두려웠다. 그런 존재와 마주하니, 가장 먼저 도망을 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스텝이 사라졌다.
이불을 들고 방으로 들어서자, 3일을 묵는다는 스텝의 짐이 모두 없어졌다. 혹시, 내가 새벽에 사라져서?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다는 치욕 때문에? 인도 사막 푸쉬카르의 모래바람이 까끌까끌 내 혓바닥에 남았다. 스텝의 존재가 갑자기 커졌다. 그는 그렇게 사라지면 안 된다. 상처를 소화 못한 브라만이 샌프란시스코 밤거리를 배회할 거야. 통증이란 감정이다. 이놈아 어서 돌아와. 형이 그냥 어떻게든 버텨볼게. 그냥 와서 좀 처자 주라고!
PS 매일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여러분께 다가가고 싶어서요. 이 글이 혹 누군가의 가슴을 쳐셔, 어, 박민우의 글이 더 알려져야겠다. 박민우의 책들을 우리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신청해야겠다. 이런 인연을 기대합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9년간 방콕에 머물면서 애정 품었던 단골식당, 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소한 즐거움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책입니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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