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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늙어가는 작은 섬입니다.

유연하고 싶다. 열려 있는 노인이 되고 싶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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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택시도 이뽀)


‘안 되겠어. 우버(미국의 카카오 택시라고나 할까?)를 불러야겠어!’


구글맵을 연다. 꽤 걸은 것 같은데 45분을 더 걸어야 한다. 1시간 거리니까, 걸어 마땅하다. 손이 떨리고, 주저앉고 싶다. 아침을 안 먹었구나. 우버 택시를 부르기로 한다.

“손님, 어디세요?”


오기로 한 차는 안 보인다.

“편의점 앞이요.”

“지금 캘리포니아 스트리트랑 몽고메리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이에요. 어디 편의점이요?”

이 질문이 한국에서라면 쉬웠을까? 네, 저는 종로 3가에서 4가로 가는 길목, 세븐일레븐 앞입니다. 능숙하게 답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싸우자’로 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이었어도 나는 어버버했을 것이다. 우버 애플리케이션이 지목하는 곳이, 내가 있는 곳이려니 했다. 택시는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다. 진이 빠진다.

“CVS Pharmacy 앞이에요.”

“네, 알겠어요. 곧 갈게요.”


그래 놓고는 차가 엉뚱한 쪽으로 가고 있다.


‘취소 수수료 5달러가 부과됩니다.’


차는 안 오고, 이런 메시지가 뜬다. 택시 기사는 나를 포기하고, 딴 손님을 태우러 갔다. 차도 못 타고, 벌금까지 내라고? 억울하면서, 당연한 것도 같다. 기사 입장에선 마냥 손님을 찾아다니고, 기다릴 수도 없다. 따지고 들면 전부 내 탓이겠지? 바락바락 우기면 나만 바보 되는 거고? 나만 세상이 어렵나(나중에 안 사실이긴 한데, 어플에 Help 메뉴를 찾아서 수수료 환불을 신청하면,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거의 매일 카카오톡으로 어머니는 다급한 메시지를 보내신다.

긴급사항!!! 오늘 날짜로 미국에서 들어온 보이스 피싱 최신종 전화사기입니다. 010 5466 1542 걸려온 전화는 받지 마세요. 받자마자 1,250,000원이 차감되는 새로운 형태의 사기라고 합니다.

이런 류의 메시지다. 사실 좀 궁금하다. 어떻게 돈이 빠져나간다는 걸까? 노인들도 다 아는 정보인데, 당할 수밖에 없는 사기는 어떤 사기지? 난 1,250,000원이 없는데, 보이스 피싱 사기꾼들은 통장에 잠시 숨어들었다가, 깜짝 놀라 도망가려나? 그래서 한 번도 이런 메시지를 받은 적이 없는 걸까? 사기꾼 놈들이 사람 봐가면서 달려든다, 이건가? 70대 어머니에겐 거의 매일이다. 어머니 또래는 매일 이런 위협을 나누고, 대비하며 안심한다. 정말 어머니는 010 5466 1542 번호를 외우고, 그 번호를 피하실까? 나이를 먹을수록 섬이 된다. 굶주린 상어 떼만 득실득실. 섬을 벗어나면 죽는다. 고립에 감사하며 똘똘 뭉친다. 나이를 먹을수록 지킬 건 많아지고, 겁도 많아진다. 나이만큼 내내 지혜로워지지 않는다. 아이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섬’으로 멀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 우버를 부른다. 늦으면 안 돼. 배를 놓치면 끝장이다. LA 독자가 선물로 보내주신 귀한 여행이다. 우버가 오고 있다. 꼼짝 말고 있어야 한다. 못 참겠다. 손이 떨려도 너무 떨린다. CVS pharmacy로 들어간다. 약국(Pharmacy) 이자, 편의점(CVS convenience store)이다. 계산대 근처 초코바 두 개를 고른다. 하나는 캐슈너트가 들어간 초코바다. 두 개에 5달러가 넘는다. 박민우, 지금 들었다 놨다 할 시간이 어디 있어? 그놈의 돈, 돈, 돈. 허겁지겁 계산하고 나온다. 두 번째 우버가 마침 온다. 탄다. 무사히 탔다.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 겨우겨우 선착장에 도착했다.

“4달러요.”

생수 한 병에 4달러?

“아, 안 살게요..”

“그, 그러세요. 그럼!”


잠깐 인도에 온 줄 착각했다. 부르는 게 값인 사기꾼들의 소굴. 여기는 미국이다. 미국에서도 가장 쾌적한 도시 샌프란시스코다. 선착장 매점의 물은 4달러다. 편의점에서 1.5달러짜리다.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알카트라즈 감옥을 가려면 여기서 배를 타야 한다. 그냥 사 마셔. 이 지지리 궁상아. 이런들, 물값 4달러 아끼면, 부자 되냐? 네가 그렇게 작은 거에 안달복달하니까 거지처럼 사는 거야. 마귀의 비웃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늘이 없는 사막이 되고, 출구 없는 동굴이 된다. 나는 목이 마르다. 물은 가깝지만, 마실 수 없다. 목이 마른 채로, 감옥으로 가겠다. 감옥 구경을 왜 할까? 보고 싶기는 해? 사실 편의점엘 가서 콜라와 감자칩을 사고 싶다. 1.5달러 콜라를 한 번에 다 들이켜고 싶다.

살아서는 절대 돌아가지 못하는 감옥

알카트라즈

가장 고독한 섬이 가까워지고 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닿고 싶은 욕심으로 씁니다. 천천히 다가가겠습니다.도망가지만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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