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맞교환, 자유의 가치는 전부다
알카트라즈
한때의 감옥. 지금은 아님(1934~1963년). 탈옥 영화를 좋아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빠삐용, 쇼생크 탈출. 숨죽이며 봤다. 폐소 공포증이 있는 나는, 탈옥의 순간만 기다렸다. 그제야 편한 숨이 쉬어졌다. 하지만 한때의 감옥은 흥미 없다. 텅 빈 감옥은 그냥 폐허지. 많이들 가는 곳은 이유가 있다. 그 이유조차 안 궁금하다. 언젠가 또 오겠지. 이런 마음으로 돈 드는 대부분의 것들을 미룬다. 어차피 다 볼 순 없다. 이런 생각도 상당히 효과적이다. 많은 진귀한 볼거리들을 그렇게 놓아준다. 못 본 건 못 본 대로 이유가 있겠지. 어쩐지 세련돼 보이고, 덜 극성맞아 보인다.
그러니까 평소의 나라면 알카트라즈 감옥은 안 온다. 투어 바우처를 선물로 보내준 LA 독자 덕에 간다. 자부심이 나를 쓰게 한다. LA에도, 뉴저지에도, 도쿄에도, 베트남에도, 인도네시아에도, 한국에도 고마운 독자들이 산다. 박민우의 글을 기다리고, 박민우의 삶을 지지합니다. 그런 메시지가 나를 살게 한다. 독자의 선물은 감사하다. 감옥에 대한 기대는 없다. 텅 빈 회색 시멘트 건물을 왜 보러 갈까? 여기가 감방입니다. 여기가 식당입니다. 끔찍하죠? 대부분의 관광객은 무표정하게 앞사람을 쫓을 것이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나, 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온 영화 ‘더 록’을 감명 깊게 본 사람, 알카트라즈를 소재로 만든 게임에 열광했던 사람에게는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섬으로 가는 배 위에서 이미 따분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빌딩 숲이 윤곽을 드러내는데도, 하품부터 나왔다. 나나 되니까 이런 풍경에 하품도 하지. 이 짬밥에, 모든 것들에 다 감격해야 해?
첫 번째 반전은 매점이었다. 알카트라즈 감옥의 역사를 상영하는 상영관 옆에 기념품 가게가 있다. 생수를 판다. 생수 가격은 1.75달러였다. 4달러 물을 안 사 마신 내가 내내 못마땅했다. 지혜로운 자는 얼마를 쓰는지 보다 얼마나 행복해지는지를 생각한다. 어리석은 죄로, 평생 목이 마를까 봐 우울했다. 보라고! 2달러 물이 있잖아. 이것도 싼 건 아니지만, 상식적이잖아. 비싸게 팔려면 감옥이 더 비싸야지. 목마른 죄수의 기분도 절묘하게 상징하잖아. 1.75달러 생수가 나를 위로한다.
두 번째 반전은 오디오 가이드였다. 구형 핸드폰처럼 생긴 단말기를 손에 쥐고, 헤드셋을 착용한다. 한국어 서비스가 지원된다. 한국의 전문 성우가 알카트라즈의 역사를 실감 나게 들려준다. 동선을 안내하고, 그곳의 시설과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죽만 남은 미라 감옥이 생생히 부활한다. 관광이 아닌, 체험이 된다. 빨려 든다.
법을 어기면 감옥에 가고
감옥에서 또 법을 어기면, 알카트라즈로 간다.
감옥 입구 문구다. 감옥 중의 감옥, 알카트라즈. 섬에 지어진 감옥. 악명 높은 수감생활. 살아서 도망간 사람은 0명. 감옥과 샌프란시스코는 불과 2km. 주말 샌프란시스코의 고기 굽는 냄새, 놀이기구에서 질러대는 비명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알카트라즈 주변엔 상어 떼가 우글거리지만, 자유가 들리고, 냄새가 날아든다. 죽어도 좋다. 딱 하루만 KFC에서 닭다리를 뜯고 싶다. 여자와 딱 한 번만이라도,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다. 이런 욕망에 눈이 뒤집힌다. 감옥을 뛰쳐나와 바다로 뛰어든다. 그리고는 죽는다. 죽기 전까지, 그들은 사력을 다해 팔과 다리를 휘저었을 것이다. 죽을힘을 다하면, 분명히 닿을 수 있는 거리, 2km. 체온이 급격하게 내려가고, 손과 발에 마비가 찾아온다. 둔해진 손과 발은 어느새 잠잠하다. 상어는 움직임이 느려진 죄수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땅의 자유를 하루만이라도 누려 봤으면.... 그 희망의 값으로, 목숨을 썼다. 둥실 떠오른 차가운 시체는, 잠시의 희망이었다. 어두운 밤, 어둡지 않은 유일함이었다.
“독방에 갇히면 완벽한 어둠의 세계입니다. 돌 하나를 던져요. 그게 바닥에 떨어져요. 그걸 천천히 찾아요. 찾아내는 그 시간이 놀이입니다.”
이 구절이 헤드셋으로 들려온다. 하루가 멈춰서 꼼짝을 안 한다. 절대 다음날로 넘어가지 않는 하루. 그 지독한 하루를 없애기 위해 어둠 속에 돌을 던진다. 공식적으로 탈옥에 성공한 사람은 없다. 죽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셋이 있다. 시체를 찾지 못했다. 살아서 어딘가로 도망갔을 수도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암을 치료해주면 자수하겠다는 편지가 경찰서에 도착했다고 한다. 편지의 진위 여부는 모른다. 할아버지가 다 된 탈옥수가, 더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 어떤 탈옥 영화보다 생생하고, 그 어떤 소설보다 지독한 캐릭터들이 이 감옥에서 샌프란시스코를 바라보았다. 뼈에 닿는 전율이었다.
PS: 이날도 사실 울었는데, 박민우 이 자식은 맨날 울어. 욕먹을까 봐 본문에서는 뺐어요.
알카트라즈 투어 정보입니다. 미리 예약을 하셔야 해요. 성수기 때는 매진이랍니다. https://blog.naver.com/bolwang/221248872374
LA 독자님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최고의 투어였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세상의 모든 독자에게 제가, 제 글이 닿기 위해서 씁니다. 그러니까 나를 이미 만난 독자와, 나를 꼭 만나게 될 독자뿐이네요.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미래의 독자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