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어머니 발이 너무도 편해지는 신발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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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조디마지오 공원까지는 30분 거리다. 거기에는 철봉이 있다. 미국이란 빌어먹을 나라는 철봉이 없다. 내게 안 보이니, 없는 거다. 철봉에 집착하는 이유는 소화불량 때문이다. 턱걸이를 하면서 숨을 내쉬면 갈비뼈가 벌어지면서 소화가 된다. 답답함이 ‘쑥’ 내려가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어깨까지 덩달아 넓어진다. 내 인생 운동이 됐다. 조디마지오 공원에서 드디어 철봉을 발견했다. 어린이용 난쟁이 철봉이라서 무릎을 꿇고, 종아리는 아예 없는 것처럼 턱걸이를 해야 한다. 애초에 적당히 먹으면 소화불량도 없다. 배가 부르다고, 맛있는 음식을 남겨? 그런 사람은 위인전에 나와야 한다. 나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다. 식탐에서 자유로우면 건강한 노년이 보장된다. 아버지는 100세까지 끄떡없으실 것이다.
어린이용 철봉이라 늘 비어있었지만, 오늘은 아니다. 흑인 노숙자가 턱걸이를 한다. 해변을 걷다 올까? 망설였지만 그냥 나도 같이 한다. 번갈아가면서 한다. 친밀감을 느낀다. 서로의 순서를 기다리고, 무릎을 구부리고 힘겹게 철봉을 한다. 이 사람도 여기 온 걸 보면 철봉이 정말 없긴 없나 봐. 어떻게든 찾아낸, 내가 기특하다. 이 순간만큼은 우리가 가장 열심히 산다. 그가 나를 보면서 웃는다. 동양인 노숙자는 처음 봐. 그런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동양인 노숙자는 딱 한 번 봤다. 쏘살리토에서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 허벅지를 벅벅 긁던 사내였다. 두리번거리다 나한테 딱 들켰는데, 나만 없으면 똥을 눴을 것이다. 딱 보면 안다. 마음이 좀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 미국에서 평균적으로 아시아인이 잘 산다. 성실하다. 한 번 무너지면 끝장이란 위기감이 아시아인에겐 공통적으로 있나 보다. 두려움을 늘 소파 곁에 두고, TV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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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s dress for less. 옷과 신발을 파는 아웃렛이다. 한국으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머니 신발을 사야 한다. 어머니는 발이 편한 신발을 원하셨다. 어머니는 신장이 좋지 않다. 그래서 잘 붓는다. 한국 전쟁 1.4 후퇴 때 갓난아기였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면서 손발이 다 얼었다. 동상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손발이 붉고, 투실투실하다. 그래서 좀처럼 어머니에게 맞는 신발이 없다.
우드버리(Woodbury) 아웃렛을 갈 기회가 있었다. 후배가 아우디를 렌트해서 보스턴을 다녀왔는데,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 할인율이 어마어마했다. 핸드백으로 유명한 코치는 우리나라 반의반 가격이었다. 라코스테 반팔 피케 셔츠가 4만 원 대다. 아니, 후배 새끼는 이런 데 오려면 미리 이야기를 해야지. 카톡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건다. 안 받으신다. 어머니, 제발 받으세요. 여기서 사야 해요. 알아요. 어머니 발 사이즈 이야기해주셨어요. 대충 들었어요. 내 여행 준비만 몰두했죠. 제발 전화 좀 받으세요. 클락스 구두로 살 거예요. 이 브랜드 아세요? 런던에서 제가 이 신발 신어 봤어요. 세상 이보다 편한 신발은 없어요. 한 켤레에 오만 원이에요. 어머니, 제발 전화 좀 받으세요.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두 치수나 작은 걸로 두 켤레나 샀다. 라코스테 셔츠는 그날따라 빨간색이 너무 예뻤다. 절대 사면 안 된다. 아니 살 돈이 없다. 비바람이 몹시 거센 날이었다. 중국인 여자가 새로 산 샘소나이트 캐리어를 끌면서 비를 몽땅 맞고 있었다. 핸드백, 구두가 저 안에 가득할 것이다. 더 사야 한다. 그 마음뿐인 여자는 우산도 없이 비를 뚫는다. 다음 목표는 버버리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시간아 멈춰라. 가게야 한 시간만 더 열어줘. 비바람이, 물욕이 너무 선명해서, 라코스테 미련이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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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제대로, 꼭 맞는 신발을 사야 한다. 카톡 화상전화를 건다. 어머니가 받으신다.
신발을 하나씩, 하나씩 보여드린다.
“때 타는 거 말고 검은색, 어두운 파란색. 그래, 그거!”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하는 신발 두 켤레. 합쳐서 55달러. 명품은 아니지만, 어엿하다. 예쁘기만 하다. 이게 나라야? 공원에 철봉 하나 제대로 없는 주제에, 신발은 이렇게 싸도 돼? 돈 한 푼에 벌벌 떠는 나는, 툭 터진 댐처럼 자유로워진다. 오늘은 마음껏 사도 된다. 키도, 발도 너무 작은 아버지 운동화는 노티카(Nautica) 아동화로 산다. 대학생 때 노티카는 강남 애들이나 입는 고급 브랜드였다. 사이즈만 작지, 디자인도 깔끔하다. 마음에 쏙 든다. 내 신발도 산다. 스케쳐스가 35달러다. 오래된 재고라서 싸다. 남들에게 버림받은 디자인은 모두 내 취향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가 너무 신고 싶었다. 돈을 모았다. 하루 백 원, 이백 원 모았다. 가격은 기억이 안 난다. 만 원도 안 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돈을 주면서,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시장 슬리퍼를 사 오셨다. 아디다스가 아니라 Dallas라고 쓰인, 짝퉁 슬리퍼였다. 그때만큼 화가 난 때가 있었나 싶다. 야생 고릴라처럼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어머니께 대들었다. 어머니는 그깟 슬리퍼로 왜 이 이리 난리냐며 나를 몰아세웠다. 나의 성실한 아디다스 꿈은 그렇게 짓밟혔다. 내가 모은 돈이다. 내가 얼마나 순하고, 모범생인지 나 스스로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꿈은 어머니의 배신으로 산산조각 났다. 어머니는, 아버지는 평생 당신들 돈으로 싸구려만 신으셨다. 그게 당연했다. 뜯어지지만 않으면 되고, 발가락만 안 나오면 된다. 자식은 내 거와 부모의 것이 다르지만, 부모는 모든 것이 자식의 것이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모든 장기를 내게 주실 분이다. 아들만 살릴 수 있으면, 당장 죽어도 되는 분이다. 그래도 그때의 어머니는 밉다. 그 돈으로 돼지고기 반 근을 사셨다. 새끼들 먹이려는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를 듬뿍 넣으셨다. 그날 나는 미치광이였다. 거품 물고 대들었다. 평소와 다르게 어머니의 목소리가 작고 힘이 없었다. 나를 몰아세우기보다, 내가 더 미칠까 봐 소극적으로 반격하셨다. 그때 어머니의 작아진 모습이 지금은 아프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린, 젊고, 가난한 어머니. 마지막 이별,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나는 그때의 고릴라보다 더 큰 소리로 꺼이꺼이 울 것이다. 오늘 산 신발 두 켤레는 어머니 발에 꼭 맞아야 한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의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제 글이 세상 모두에게 천천히 다가갔으면 해서요. 엉금엉금 기어가겠습니다. 딱 그 속도로 지금 당신께 갑니다. 반갑습니다. 아주 작고, 작은 사소한 울림입니까? 그거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