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 여권 사진 공개(웃고 싶습니까?) - 부자의 하루

나는 부자다. 부자다. 부자다

by 박민우

(2018년 그 뜨겁던 여름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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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반응 안 좋더군요. 쳇. 젊어진 게 어디입니까?)


저는 밝은 사람이고요. 집도 좀 삽니다. 매우 잘 삽니다. 성공은 당연한 거고요.


초대형 베스트셀러 ‘시크릿’ 혹은 ‘꿈꾸는 다락방’류의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자기 최면이라고 우습게 보시나요들? 네, 마음껏 한심해하세요. 그런 걸 믿냐고요? 네, 믿고 말고요. 일단 떼부자가 된 이후에, 믿은 적 없다고 시침 뗄게요. 자, 자, 그런 성스러운 마음으로 첫날입니다. 성공을 바라지 않아요. 부자를 바라지 않아요. 이미 그런 사람이 됐으니까요. 반포 래미안은 전세 주고요. 경기도 광주에서 살아요. 공기가 좋아서죠. 뭐!


여권신청을 어디서 할까? 원래는 분당 수내역으로 가려고 했어요. 거기에 제가 좋아하는 북카페가 있거든요. 분당구청에서 여권 신청하려고요. 아니야, 아니야. 자전거를 타고 경기도 광주 시청으로 가자. 제가 그깟 지하철 차비 아끼려고 그러겠어요? 밖에서 커피 한 잔, 밥 한 끼, 만 원은 깨지지.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절대 안 했어요. 자전거로 맞바람 좀 쐬고 싶어서요.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요트 탔던 그 시간. 지중해의 그 바람을 그리면서요.


보건소에 잠시 들러요. 아버지 흉부 엑스레이 찍은 결과를 확인하려고요. 보건소 안은 노인정이네요. 노인들로 가득. 제 차례까지 한참이겠군요. 대기표를 뽑아요. 대기 0. 응? 그래요.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이곳으로 피서 오셨네요. 같은 처지, 같은 늙음이 모여서 당당하고, 밝아요. 보기 좋습니다. 그래요. 정수기로 맥심 커피 타 먹는 거, 잊으시면 안 되죠. 커피믹스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제일이죠. 아버지의 엑스레이 결과는 모든 게 정상이네요. 이제 저는 힘차게 자전거 페달만 밟으면 됩니다.


여권 사진 15,000원입니다. 파일 보내는 건 따로 안 받아요. 15,000원만 내면 사진 파일도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분당 수내역에서 찍으면 25,000원인데 만 원이나 싸군요. 싸구려군.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굳이 25,000원짜리 스튜디오를 찾아보지는 않으려고요. 시간의 가치를 아는 자가, 부를 차지해요. 모르셨죠? 저만 따라 하세요. 반포동 자이에 아파트 한 채는 사놓으셔야 죠. 포토그롸퍼님! 셔터 딱 두 번 누르신 건가요? 여러 번 더 찍는다고, 돈 더 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필름 카메라 쓰세요? 조명은요? 조명 안 쓰세요? 바깥에서 흘러들어오는 싸구려 자연광이 다인 건가요? 잘 생긴 사람은 대충 찍어도 되나요? 제가 잘 생겼다고, 날로 드시려고 하네요? 30분 후에 오라네요. 후보정도 안 해주겠다는 건가요?


아니, 저를 이십 년은 젊게 만들어 놓으셨네요? 삼십 분 동안, 저를, 스물여섯 살로 만들어 놓으셨네요. 이런 조작을 30분 만에 끝내신 건가요?


까칠한 여권 담당 여직원이 제 사진을 여러 번 봅니다.


-딴 사진 쓸게요.


그게 무슨 소리지? 사진이 담긴 봉투에서 다른 사진을 꺼냅니다. 아, 처음 사진에 내 지문이 묻었거든요. 깨끗한 사진 하나를 꺼냅니다. 당신 얼굴에 팔자주름이랑 눈 밑 주름 어디로 갔냐며, 시비를 거는 줄 알았어요. 가슴이 철렁! 여권 사진은 6개월 이내에 찍은 것이어야 하지만, 주름을 다 지워도, 피부를 지우개로 말끔히 정리해도 돼요. 매번 여권이 갱신될 때마다, 왠지 더 어려지는 것 같아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네요. 저는 반포 래미안을 가진, 잘 생긴 작가니까요.


접수도 끝났겠다, 시청에서 에어컨 냉기를 쐬며 아이폰에 올라온 결제 정보를 봅니다. Itunes로 해외에서 60달러 나갔네요. 흠, 뭘 샀지? 막 흥분하지는 않았어요. 적은 돈이잖아요. 저에겐. 그냥 7만 원을 어디다 썼는지가 궁금했죠. 정확한 사실만 알면 돼요. 돈이야 몇 백이 나가든, 제가 눈 하나 깜짝하겠나요?


Itunes로 노래 한 곡 다운 안 받은 제가, 60달러를 어디다 썼을까요?


와, 애플 대단하데요. 제가 전화 상담 신청하자마자 득달같이 전화가 와요. 초기 우울증인 분들은 애플과 통화해 보세요. 고객의 행복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심리 전담반이 애플에 모여 살아요.


-고객님 Soul reader란 어플을 다운 받으셨네요. 이번 주 60달러 결제 예정이네요. 4주 전부터 매주 나가서, 총 240달러네요.


240달러? 27만 원? soul reader? 그게 뭐지? 페이스 북에요. 시시껄렁한 어플 많이들 가지고 놀잖아요. 전생에 당신은 뭐였다. 이런 걸 올린 친구가 있었어요. soul reader란 애플리케이션을 썼더라고요. 다운 받았죠. 찜통더위에 잠은 안 오죠. 선풍기에선 더운 바람 나오죠. 박민우 너의 전생은 무엇이냐? 한겨울이 어울리는 몽고의 후예였으면… 시베리아에서 동상 걸려, 피눈물 흘리는 말갈족이었으면…. 60달러씩 빼가는 사기꾼인 걸 짐작이나 했을까요?


-환불이 가능한지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한 달 전부터 돈이 나갔어요. 확인을 안 하셨네요.


몇 푼 나갈 때마다 일일이 확인하면, 가난뱅이죠. 아프리카에서요, 어떤 초식 동물은 항문으로 물을 마신대요. 언제 잡아먹힐지 몰라서요. 그러니까 평생 쫓기며 사는 겁니다. 당당하게 입으로 마셔야죠. 잡아먹힐 때, 잡아먹히더라도요. 카드 지출을 꼬박꼬박 확인하는 행위는, 똥꼬로 물 퍼마시는 행위와 다를 게 없어요. 그래서 난 확인 안 했어요. 멍청하다 탓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그러니까 반포 래미안. 아, 좀 닥쳐. 박민우. 정색을 하네요. 박민우가 박민우에게 화를 냅니다.


푸념이긴 한데, 자본주의 참 어렵지 않나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아도, 지불 조건 꼼꼼히 봐야 해요. 그게 외국 어플이면 독해를 꼼꼼하게 해 가면서요. 해외에서 Itunes로 돈이 빠져나가면요. 아이폰에서 설정으로 들어가서요, 다시 구독이란 메뉴를 찾아야 하고요. 지출 내역을 확인해도, 다시 애플 본사 서비스 센터에 문의를 해야 하고요. 으르렁, 으르렁 사나운 미친개들 사이에서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털 빠진 토끼예요. 저는요. 우리는요. 당하지 말고, 먹히지 말고, 뺏기지 말고 살아남아야 해요. 만만치 않습니다.


5분, 6분. 음악 소리만 흘러나오는 아이폰을 꼭 붙들고 있습니다. 땀으로 얼룩진 액정 조심스럽게 닦아요. 혹 중간에라도 끊기면 안 되니까요. 그 돈이면, 에어팟을 살 수 있어요. 선 없는 이어폰. 해괴하게 생긴, 병맛 제품이죠. 스티브 잡스 죽고, 애플은 감이 떨어졌어. 비웃었죠. 써본 사람들이 신세계라는 거예요. 선만 사라졌는데, 그걸 귀에 꼽았는데, 궁극의 해방 오르가슴이래요. 저, 그 느낌 알고 싶어요. 느끼고 싶어요. 에어팟 살 돈이 날아갑니다. 희망을 걸어도 될까요? 한 달 전부터 나간 돈을, 미쳤다고 보상해 줄까요? 사나운 미친개들이 바보도 아니고요.


-박민우 고객님 오래 기다리셨죠? 귀한 시간 뺐었어요. 이 더운 날에요.


애플 서비스센터, 정알 말 잘하죠? 일 잘하죠? 홈쇼핑에서 일했다면 완판이 당연한, 최고의 호스트였겠죠? 그 유능한 분이 제 걱정을 다 해줍니다.


-좋은 소식 들고 왔어요. 거의 삼십만 원 돈인데요. 25만 원은 보상이 가능합니다. 다행이죠?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런 큰 액수를요. 앞으로는 지출 내역 확인 잘해주시고요. 가끔씩 설정으로 들어가셔서 구독 내역도 봐주시고요. 오늘 같은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는 않아야겠어요. 박민우 고객님. 다행히 오늘은 좋은 하루네요. 좋은 소식 전할 수 있어서, 저에게도 좋은 하루가 되었네요.


상담원에게 이미 나는 세상에 없는 오르가즘을 선물 받았다. 에어팟 없어도 된다. 나도 모르는 종양 몇 개가 식도 옆에서 저절로 말라간다. 숨을 쉰다. 숨이 쉬어진다. 뭐야? 30만 원도 안 되는 돈 때문에 숨도 못 쉰 거야? 식은땀인 거야? 그래 박민우 마음껏 비아냥대라. 이 기쁨은 무엇으로도 훼손될 수 없드아아


저는요. 행복이 찾아온 저는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요. 정말 조심해요. 교통 신호도 꼭꼭 지키면서요. 너무나 기쁜 순간이잖아요. 호사다마요. 좋은 일, 다음에 나쁜 일. 예를 들면 불에 활활 타는 BMW가 저를 향해 달려온다든지 하는 거요. 오늘의 기쁨은요. 안암동 운동장에서 합격자 발표를 볼 때와 비슷한 기쁨이에요. 재수를 했거든요. 또 떨어지면 삼수를 해야 해요. 재수는 지옥인데, 삼수는 더 지옥이죠. 전화로 합격 여부를 알아도 되는데요. 굳이 안암동으로 가요. 촌스러운 시대라서요. 수험생 번호 적힌 달력 같은 종이를 한 장씩, 한 장씩 붙여요. 돌돌 말린 종이를 펴서는요. 하나씩 하나씩 종이가 붙을 때 마다요, 제 심장은 조금씩 조금씩 썰려나가요. 제 번호 앞, 앞이 보입니다. 제 번호가 종이에 있느냐, 없느냐. 종이가 서서히 펼쳐지면서요. 제 번호, 제 이름이, 제 이름이 보입니다. 민우야. 고생 많았다. 한 여름 백 명씩 우글대는 재수학원. 세숫대야에 물 발 담그는 여름 또 겪지 마라. 백 명의 입김으로 꽉 찬 교실 다시 돌아가지 마라.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은 하루였죠.


오늘은 그런 하루입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차가운 오곡 라테를 마실 겁니다. 평소보다 빨리 마실 겁니다. 두 잔 마셔도 되는 날이니까요. 래미안 전세 보증금은 안 올리려고요. 올려도, 조금, 아주 조금. 시세의 절반 정도만 올리려고요. 세입자가 무슨 돈이 있겠어요? 청담동 피부과 원장인데요. 의사라고 다 부자인가요? 다, 옛말이죠, 옛말!


PS 매일 글을 씁니다. 그게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었으면 합니다. 어찌나 꿈이 큰지, 화성에서, 목성에서 출판 기념회도 하고 싶고요. 안드로메다 제일 큰 별에 초대도 받고 싶고요. 여러분 제가 거기 가면 여러분 잊을까요? 초대해서 1일 가이드해드립니다. 그러니, 제 글 열심히 읽어주세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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