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모든 걸 담은 제목이라 뿌듯하옵니다만
2018년 여름의 기록입니다.
1
소피스 런던 강추, 특히 3번 조말론 잉글리시페어랑 5번 러쉬 더티스프레이 향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다. 조말론만 들어 봤다. 아는 누나가 조말론, 딥디크가 요즘 잘 나가는 향수라고 했다. 소피스 런던은 쿠팡에서만 파는 페브리즈 같은 건데(지금도 파는지는 모르옵니다), 3번이 조말론 잉글리시페어, 5번이 러쉬 더티스프레이 향이다. 잉글리시페어가 뭔지, 더티스프레이가 뭔지 알고 싶다. 병당 6,900원. 페브리즈 샀다고 생각하면 된다. 3번, 5번 한 병씩. 택배야 빨리 와라. 모처럼 설렌다. 둘 다 똑같은 까만 병이다. 향이 강하잖아! 이런 향이 유행이구나. 무겁고, 기름지고, 달다. 3번이 그나마 가볍다. 5번 향은 과하다. 머리 아프다. 러쉬 더티 스프레이는 못 쓸 향이로구먼! 둘 다 패키지가 똑같으니 3번만 책상 위에. 헷갈리지 말 것. 3번이 책상 위
다음날 맡아보니 그럭저럭이다. 내 돈 주고는 절대 안 사겠지만, 나쁘지 않다. 사흘째 되니까, 아주, 아주 약간 더 괜찮았다. 3번은 그냥저냥 쓸 수 있겠어. 처음 삼십 분만 참으면 된다. 책상 위에 있는 게 몇 번이라고 했지? 3번이지. 3번 조말론 잉글리시페어
까맣고 뚱뚱한 스프레이 병이다. 향에 대한 이름이나 설명이 없다. 그냥 1번부터 10번까지 빈칸이 있고, 그중 하나에 체크 표시. 어? 3번이 아니라, 5번이다. 5번이면 러쉬 더티스프레이네. 박민우, 멍청아. 책상 밑에 있는 게 3번이겠군.
5번.
책상 밑 까만 병도 5번이다. 둘 다 5번이다. 배송 착오인가? 주문 착오인가? 어쨌든 둘 다 5번이다. 다시 맡아본다.
같은 향이다.
원효의 해골바가지를 쿠팡에서 재활용한다. 나, 깨달았다.
쿠팡은 더 치고 올라갈 것이다.
PS. 쿠팡 로켓 배송은 최소 구입액이 2만 원. 소피스 런던 두 병 사고, 떡볶이 떡 양념장을 한 봉지 사세요. 양념장은 그냥 떠오른 거라, 사실 얼마인지도 몰라요. 그냥 떠올랐어요. 저는 문어니까요.
3번을 두 병 사세요. 저랑 바꿉시다.
2
이디야! 일어나자마자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오늘은 더 덥다. 하지만 이디야가 있다. 요즘 베란다에서 잔다. 옥매트를 깐다. 온열 기능 옥매트 말고, 옥구슬 치렁치렁 차가운 매트. 그걸 깔고, 선풍기 켜고 잔다. 베란다가 아니었으면 집 나왔을 거다. 아주 약간 캠핑 온 느낌이다. 몽롱해져서는 눈을 뜬다.
Ediya
자전거를 타고 10분. 이디야가 있다. 아파트와, 공장과 논만 있는 경기도의 기묘한 시골. 흔한 프랜차이즈도 귀한 경기도 광주. 자전거 타고 십 분 거리, 무려 이디야가 있다.
2018년 4월 가맹점 2,500개를 돌파했다. 중국까지 진출한 한국 카페의 자존심. 광복절에 어울리는 애국 드링킹이지 뭐야. 이디야 애플리케이션 다운까지 받았다. 스탬프 1개. 오늘부터 1일. 빽다방 아메리카노가 써도 너무 써서 그냥 버린 적이 있다(아, 그러니까 이건 2018년 때 그랬다는 거고요. 지금은 맛있어졌겠죠). 박민우다운 선택. 이디야의 로스팅은 깔 게 없다. 환장할 정도인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밤새 괴롭히던 더위를 생각한다. 이디야 실내는 살짝 춥기까지 하다. 무릎 담요를 꺼내 어깨까지 덮는다. 항상 가방에 가지고 다닌다. 담요를 카페에서 뒤집어쓴 남자는 늘 나뿐이다. 남자는 몸이 뜨거운가? 나만 빼고? 카페에서 담요를 둘둘 말면, 남자가 아닌 건가? 눈앞으론 다이소가 보이고, 양옆으론 배스킨라빈스와 파리 바게트가 있다. 길 건너는 농협이다. 요즘 시골 읍내 풍경이 다 이렇지 않을까? 사실적이고, 멋대가리 없고, 커피는 맛있다. 이디야는 에티오피아말로 대륙의 황제란 뜻이다. 황제의 커피, 드링 킹!
노트북에 파워포인트를 다운로드한다. 파워포인트는 무려 119,000원을 주고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샀다. 연간 계약이라 내년에 또 119,000원을 내야 한다. 노트북에 다운로드하으려고 하니까 에러가 뜬다. 탐욕의 화신 마이크로 소프트. 서양 친구들은 내가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핫메일(hotmail)을 쓴다고 하면 놀란다. 아직도 있냐고 되묻는다. 모두 구글 지메일 쓴다. 너네 회사 이메일 아이디로 다운로드하겠다는데 왜 안 되는 거야? 에러 몇 번 나더니, 어쨌든 설치하란다. 설치 허락하겠단다. 설치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한 시간이 넘는다. 결국 설치 중간에 컴퓨터를 껐다. 카톡이 왔다. 어머니가 오뚜기 카레를 해 놓으셨다. 파워포인트가 중요해?
내가 글이 잘 써질 때가 언제였더라? 아침 안개의 스산함, 공복의 또렷함, 좋은 커피, 편한 의자와 창밖의 풍경, 배터리 낭낭한 노트북. 나의 글은 그때 나왔나? 아니요. 더는 못 쓸 것 같아. 그럴 때 나왔다. 더 이상 미루면 끝장이야. 그때 글이 빼꼼 기어 나온다.
이 더위에 어떻게 써? 이디야다. 에어컨 좋다. 유튜브 잠깐만 보자. 뉴스 잠깐만 보자. 멜론 차트랑 시청률 잠깐만 보자. 자전거 타고 왔잖아. 땀부터 식혀. 더 가벼워지고, 더 즐거워져서 쓰자. 유튜브에 몰입한다. 순간순간 이래도 되나? 잠깐 불안하다. 곧 즐겁다. 안락하다. 주기적으로 안락함 사이에 더럽게 성가신 감정이 섞인다. 불안하고, 찜찜하고, 고독하다. 안락과 불안, 안락과 찜찜함, 고독을 지나면 똥줄. 똥줄에서 기다랗게 이어진 통로를 지나면 방이 하나가 나온다. 방을 치워놨구나. 나를 기다리는 깨끗한 몰입. 이제 왔나요? 말끔한 얼굴로 묻고는, 계속 방을 닦는다. 발을 들이기 싫은 방, 와야만 하는 방, 감옥처럼 보이는 방에서 나는 포기한 채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다. 유일하게 내가 늙지 않는 시간. 그 방은 멀지 않고, 가깝지 않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숨을 쉬어야 살잖아요. 아, 글을 써야 산다. 이런 거룩함까지는 아니고요. 안 쓰면 안 될 것 같고, 뭐라도 해야할 것 같고, 쓰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해서 써요. 보세요. 그러니까 이렇게 반가운 손님과 마주하잖아요. 반갑습니다. 잘 지내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