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부모님과의 여행법

75세 아버지, 72세 어머니와 치앙마이에서 26일을 머물렀습니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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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부모님이 다 같겠어요? 공통점은 있더군요. 가면 싸운다. 아주 많이 싸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요. 선택의 연속이거든요. 모르셨죠? 취향이 다 다른 거. 취향만 다른 줄 아시나요? 속도도 각양각색입니다. 누군가는 속 터지는 꼴을 못 봐요. 한국의 속도에 맞춰져야 직성이 풀리죠. 길을 잃은 건 상관없지만, 빨리 해결해야죠. 스스로 해결한다고 여기 헤매고, 저기 헤매면 난리가 납니다. 물어라도 봐야죠. 아쉬운 소리 하기 싫다고요? 배부른 소리 하지 마세요. 부모님이랑 철전지 원수 안 되려면, 그냥 부모님 속도에 맞추세요. 간, 쓸개 다 빼두셨죠?


이번에 큰 효도한다는 마음으로 26일, 무려 26일을 치앙마이와 빠이(치앙마이에서 차로 세 시간 걸리는 곳에 있는 아늑한 산골 마을)에서 부모님과 있었답니다. 결론적으로는 뿌듯해요. 큰 추억을 공유하게 됐으니까요. 언젠가는 영영 이별할 텐데요. 큰 후회까지는 안 하지 싶어요. 겨우 표본 하나, 우리 가족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래도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부모님 모시고 한 번쯤은 떠나세요. 어디든요. 정말 좋아하십니다. 아, 아닙니다. 안 좋아하실 수도 있어요. 아버지가요. 투덜이 영재인 걸 이제야 알았네요. 투덜이 멘사에 가입하셔야 할 분이 왜 치앙마이에 따라오셨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만 모시고 올 걸. 그런 후회를 거의 매일 했네요. 충격 반전은 한국에 돌아와서 어머니, 아버지 금슬이 엄청 좋아졌다는 것. 어머니가 자랑을 하실 정도네요. 아버지가 어머니 비타민까지 꼬박꼬박 챙겨드린다네요. 그런 아버지가 전혀 아니셨거든요. 우리 둘 뿐이다. 믿을 건 내 아내, 내 남편뿐. 싹퉁머리 없는 아들놈이 부부금슬을 돈독하게 해 드렸어요. 제가 군기 반장 노릇 좀 했습니다. 통제는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어쨌든 부모님과 여행하기 자잘한 노하우 공개합니다.


첫 번째 따로 잘 것


방값 아낀다고 한 방에서 자지 마세요. 물론 어머니와 딸. 이렇게 둘이면 한 방에서 자야죠. 아버지와 아들. 이래도 한 방에서 자는 게 낫죠. 웬만하면 방 두 개 잡으세요. 여행도 노동입니다. 잘 때만이라도 자기 시간을 가지세요. 그래야, 아침에 반가워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안부를 진심 담아 여쭙게 된다니까요. 같이 자면, 어떻게 잔 줄 다 아니까요. 안 궁금하고요. 누군가가 이라도 갈고, 소변이라도 보면 그때마다 뒤척이게 되고요. 다음날 피로가 쌓여요. 가족이라고 한 방에서 자는 거 아닙니다. 무조건 따로, 따로.


두 번째, 계획을 공유하세요.


어떤 걸 볼지, 뭐를 먹을지 예습을 같이 하세요. 어디를 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뭘 보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참고, 기다리면 짜증이 배가 된다고요. 안 좋은 소리 나옵니다. 오늘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 위의 카페에 갈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오고 싶어도 못 와요. 왜냐면 멀거든요. 우리는 차가 있으니까, 남들 못 가는 데를 가보자고요. 이 정도로만 이야기 해도요. 어머니, 아버지 순한 양 되어서요. 유치원 모범생 되셔서요. 꿋꿋이 견디며, 봐야 할 그곳을 기대하시게 된다 이 말입니다.


세 번째, 예전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님을 명심하세요.


나이를 먹으면 아기가 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요. 당연한 거예요.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것들은 멀리하죠. 뇌가 굳죠. 노화가 뇌만 피해 갈 리가 있겠어요? 예전보다 더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충격받지 마세요. 우리도 그렇게 될 거예요. 우리의 늙음을 예습하는 시간이라 생각하세요. 우리도 별 수 없어요. 평생 사리분별 정확할 것 같죠? 꼰대는 뭐,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답니까? 가족 중에 있고, 친구 중에 있고, 심지어 동생들 중에도 있는데요. 꼰대가 어느 나이에나 있듯, 생각의 노화도 못 피해요. 다그치지 마세요. 같이 싸우지 마세요. 부모님도 그렇게 늙고 싶지 않았어요. 쉽지 않았던 거죠. 아이가 공을 쫓아 차도로 뛰어들죠? 스스로 통제가 가능하지 않아요. 그 어떤 모습도 힘겹게 유지하는 겁니다. 그게 일흔, 여든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감사해요. 미리 예습하면, 우리는 그나마 조금 더 낫겠죠.


네 번째, 한식은 사랑입니다.


한식 아예 안 드셔도 되는 분 더러 계시죠. 하지만 한식 꼭 먹어야 하는 부모님이 훨씬, 훨씬 더 많을 거예요. 양념 고추장이 효자입니다. 현지에서 파는 밥에 쓱싹 비비기만 해도요, 한 끼 거뜬히 잘 드십니다. 아무리 비싸도요. 외국 음식 안 맞는 사람은, 신라면보다 훨씬 못 해요. 아버지가 향신료라면 기겁을 하세요. 헛구역질까지 하세요. 한국 라면 끓여드리면, 게눈 감추듯 드시더라고요. 한국에선 딱히 잘 안 드시던 분이었는데도요. 하루 한 끼는 한식으로 준비하세요. 한식당에 가셨다면, 먹다 남은 밑반찬은 담아오셔도 좋고요.


다섯 번째, 너무 완벽하려 하지 마세요


진상 가족 되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네요. 아버지가요. 뭘 드시면 끄억 이러세요. 아, 잘 먹었다. 뭐, 이런 제스처죠. 태국에서 고요하게 밥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버지가 국물을 드시다가는 끄어억 공룡 포효를 하세요. 얼마나 화끈거리던지요. 아버지, 그러지 마세요. 다들 흉봐요. 몇 번을 말씀드려도 안 고쳐지더라고요. 나중엔 아버지가 많이 언짢아하셨어요. 사실 태국 사람 착해요. 외국 사람이니까 그러려니 하는 관대함이 있어요. 어느 나라도 외국 사람에겐, 어느 정도의 관대함 있습니다. 세계 1등 시민 되겠다고, 어머니, 아버지께 눈 부라리지 마시라고요(네, 제가 그랬습니다. ㅠㅠ). 우리가 외국인을 보듯, 관대해지세요.


여섯 번째, 휴식 중요합니다.


이것도 구성원의 체력과 열정에 따라 많이 다릅니다. 그래도 한 템포 쉬어 주는 시간이 있어야 해요. 다음 여행 코스를 더 잘 즐길 수도 있게 되니까요. 마사지도 좋고요. 잠시 숙소에 돌아와서 눈을 좀 붙여도 좋고요. 부모님이 좋아할 만한 유튜브 동영상들을 많이 알아 놓으세요. 저는 역사 다큐멘터리, 사극 레전드, 기상천외한 서커스 등을 틀어드렸어요. 좋아하시더라고요. 가야 할 여행지를 소개하는 유튜브 동영상도 좋아요. 그렇다고 너무 찬란한 여행 동영상은 좀 삼가는 게 좋겠죠? 같은 곳이어도 여행 프로그램은 가장 이상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거잖아요. 같은 곳을 봤는데, 그 맛이 안 날 수도 있어요. 미리 다 들통나면, 싱거울 수 있으니까요. 분위기만 잘 전달되는 유튜버 동영상 위주로 틀어드리세요.


가족과의 여행은 굉장한 경험입니다. 어떤식으로든요. 우리가 이렇게 서로 몰랐구나. 그걸 실감하게 됩니다. 결국 더 돈독해질 겁니다(아닌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만). 가족끼리 여행, 이왕이면 조금은 오래 어디인가를 다녀오세요. 여러분의 여행을 응원합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재주를 넘고, 외줄을 타는 광대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손뼉 치며 재밌다, 재밌다 뒤집어지는 광경을 보고 싶어요. 그래서 매일 씁니다. 매일 놉니다. 박수소리가 제게는 들리거든요. 겁 없이 쓰겠습니다. 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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