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막글, 쓰다보니 소설을 쓰고 앉아 있군요

밤의 기운은 내게 이런 걸 시키네요

by 박민우


(2018년 8월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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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달랏의 변두리 풍경)


아침에 눈을 떴는데, 콧물이 줄줄줄. 비염인지, 몸살인지. 아이폰부터 든다. 인스타그램 맞팔을 하다가 언팔을 한 사람들을 정리한다. 인스타그램을 안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약간 설명. 팔로우는 친구 맺기. 일단 마음에 드는 이가 있으면 팔로우를 한다. 네가 나를 팔로우 해? 그럼 나도 팔로우. 그러면 맞팔. 맞팔은 서로 친구. 언팔은 친구 끊기. 너, 싫어졌어. 그러니까 언팔. 기본적으로 나를 팔로우하면 나도 팔로우. 인터넷이란 알량한 공간에서 우린 ‘맺어진다’. 허허, 먼저 팔로우를 한 이가 끊는다. 언팔을 한다. 나는 여전히 그를 팔로우한다. 외사랑이다. 동물농장에서 유기견 보호시설을 보고 나서인지, 더 울컥한다. 버려졌다. 아이고, 의미 없다. 콧물만 말라도, 이렇게까지 흥분하지 않았을 거다. 버리고, 버려진다. 유지는 아슬아슬. 이게 또 관계의 진실. 너는 요즘 좋아요도 잘 안 누르잖아. 누굴 탓해?


내게 무선 이어폰이 생겼다. 모델명 캡슐25. 선이 있는 이어폰, 헤드폰들은 곧 사라질 것이다. 날아갈 듯 홀가분하지는 않지만, 전혀 실망스럽지 않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잠시 부엌에 다녀오지만 음악은 안 끊긴다. 애초부터 선이 없었어야 해. 개선된 게 아니라, 교정이다. 잘못된 세상의 교정.


아이폰 6s는 후배가 준 거다. 새로 나오면 득달같이 사고, 나에게 구형을 준다. 배터리는 빨리 닳고, 속도는 느리다. 구형이니까. 무선 이어폰까지 쓰면, 배터리는 더 빨리 사라진다. 샤오미 보조 배터리를 산다. 보조 배터리로 가방은 더 무거워진다. 홀가분해지고 싶었으나 무거워졌다. 미련한 선택인가? 가난한 자들의 숙명인가? 둘 다다. 무거우면 또 얼마나 무겁겠어?


반짝반짝


항공권을 예약했다. 동방항공. 746,000원. 뉴욕으로 들어가서 샌프란시스코로 나온다. 들어가는 도시와 나온 도시가 다르면 항공권은 비싸진다. 이 가격에 뉴욕으로 들어가서, 샌프란시스코로 나와? 중국이기에 가능한 가격이다. 다들 중국 욕해도, 나는 좋아하겠다. 솔직히, 난 중국 사람이 안 싫다. 내가 중국에서 사랑받았다. 쓰촨지방에서 특히. 관심 가져 주고, 뭐라도 더 주는 이들을 여럿 만났다. 중국 음식까지 맛있어진 건, 쓰촨 사람들 덕이다. 티켓 가격이 그제는 730,000원이었다. 며칠 만에 16,000원 올랐다. 마음이 급해져서 예약부터 걸었다. 애초에 백오십까지 생각했으니, 여전히 싸지만, 나란 인간은 감사함을 모른다. 80만 원 아꼈네. 그런 생각 안 든다. 내 돈 16,000원이 날아갔다. 젠장, 그 돈이면 이디야 커피가 한 잔, 두 잔.. 내가 보편적인 인간이다. 보편적으로 어리석고, 보편적으로 추하다.


돌아올 때 칭다오 공항에서 14시간 있어야 한다. 오후 여섯 시에 도착. 무엇을 할까? 시내로 나가서 양꼬치에 칭다오 한 잔. 잠은? 호스텔에서 잘까? 깊이 잠들지 못할 것이다. 못 일어날까 봐 한 시간마다 시계를 확인하느니, 공항에서 잔다. 공항에는 캡슐 호텔이 있다. 3만 원 정도에 잘 수 있다. 14시간은 죽은 시간이다. 견디고, 빨리 지나기만을 바라는 14시간. 백만 원만 더 쓰면 대한항공. 100만 원이라! 그 돈이면 새 아이폰을 살 수 있다. 고민할 것도 없다. 호찌민에서 캡슐호텔에서 잔 적이 있다. 완벽한 갇힘, 절망적인 아늑함.


아늑하다. 나는 우주를 떠도는 비행사.


늙지도 죽지도 못하는 우주비행사. 캡슐 속에서의 시간. 우주에서의 시간? 시간이랄 게 없다. 기준이 사라졌으니. 지구는 까마득히 멀다. 우주에 부유하는 플랑크톤을 반죽해서 먹는다. 허기질 일은 없다. 구조 신호를 보내지만 답을 받아본 적도 없다. 매일 똥을 누면, 그게 하루의 단위. 그렇게 시간을 센다. 얼추 300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형수보다 못한 삶이다. 매일 손끝을 따고 피 몇 방울을 채취한다. 현미경으로 본다. 재미있다. 내 안에 작은 우주, 작은 동물원. 꿈틀대는 세포들, 하루의 큰 낙이다. 텔로미어라는 게 있다. 염색체의 말단 부분이다. 분열을 할수록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진다. 짧아지다가, 세포가 죽는다. 새로운 세포가 생긴다. 세포의 죽고, 살기가 반복되면서 늙는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그대로라면, 세포는 죽지 않는다. 지금 내 몸의 세포들이 그렇다. 매일 가장 젊은 세포다. 어쩌면 300년 전보다 더 젊어졌는지도 모른다. 죽으려고 혀를 깨문 적이 있다. 100년 전쯤 일이다. 피가 철철 났다. 지금껏 못 느껴본 고통이다. 숨도 안 쉬어진다. 당해낼 수 없는 충격, 해볼 도리 없는 고통. 죽겠구나. 잠시 후회했고, 그 뒤론 평화로웠다. 이렇게 죽겠구나. 완전한 휴식. 자고 일어나서 나의 혀는 온전해졌다. 떨어져 나간 살점은 딱딱해져서, 말라 있었다. 몇 달 후에 부서져서, 사라졌다. 다시 보드랍고, 뽀송뽀송한 혀다. 죽을 수도 없다. 영원에 갇혔다. 아는 이들의 이름을 모두 불러본다. 너무 빨리 부르면, 또 할 게 없어지잖아. 매일 한 명씩, 친구를, 애인을, 가족을 부른다. 부르고, 그 사람 생각만 한다. 얼굴이 기억이 안 난다. 이름만 생각나고,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이란 게 이리 하찮은 건가? 노래도 기억나는데, 얼굴이 왜? 내 얼굴은 어땠지? 여자였나? 남자였나? 몇몇은 기억에 남는다. 기억에 남는 인간들은 왜지? 왜 기억에 남지? 나쁜 사람은 왜 나빴지? 사랑하는 사람은 왜 사랑했지? 기억 속에 살아남아 줘. 무엇으로라도 살아남아줘. 악랄하고, 모진 기억들이 더 자주 오르내린다. 응급실에 실려 간 아들을 보면서, 죽었네. 주머니에서 스니커즈를 꺼내먹던 의사 놈. 개새끼. 그 새끼도 죽었겠군. 제 명을 다하고 평화롭게 죽어서는 안 될 놈인데. 김원기, 개새끼. 김원기 개쌔끼.


천 년 후에 그는 딱 한 번 지구에 불시착한다. 뚜껑이 열린다. 내려와서는 땅에 엎드려, 작은 키스. 흙 안 움큼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다시 우주선으로 올라간다. 죽을 수 있는 기회다.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이상하지. 아늑한 우주선, 내 세상, 내 공간에 눕고 싶어진다. 일상이랄 것도 없는 일상이 그립다. 죽은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흙 속에 씨앗 하나라도 담겼다면, 꽃까지 피우는 민들레라면, 나는 흙과 평생 놀 수 있다. 민들레는 늙지 않고, 민들레는 부유할 것이다. 꽃 씨를 세고, 꽃 털을 세고, 매일매일 하나부터 천 개의 씨앗을 세면 하루가 게눈 감추듯 사라지겠네. 시간은 버티는 게 아니라, 주무르는 것. 반죽해서, 빵을 만드는 것. 멋진 빵을 매일 만드는 시간. 앞으로 천 년은 더 살아보고 싶다. 불시착한 별 어딘가에 민들레 씨앗을 뿌려줄 거야. 새로운 행성에서 사랑받는 꽃이 될지도 모르지.


PS 매일 씁니다. 작은 운동 에너지를 느끼면서요. 답을 기다리지는 않으려고요. 순간의 몰입에 감사하려고요. 누군가가 귀담아 들어주시더군요. 그것조차 모른척 하려고요. 더, 더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몰입의 끝에, 홀린 글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흠, 기대가 너무 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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