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마미아를 본 날, 그때의 런던이 떠올랐어

추억은 언제나 애잔합니다. 그려

by 박민우

(2018년 8월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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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이 어디예요? CGV 어디에 있는지 모르세요? 8시 50분. 영화는 9시 정각에 시작. 영화관이 안 보인다. 그 큰 건물을 못 찾고 있다. 땀으로 옷이 젖기 시작한다. 경기도 광주에 어엿한 대형 영화관이 생겼다. 그게 눈에 안 띌 리가 있어? 아침 여덟 시에 충동적으로 예매를 했다. 7천 원. PAYCO 어플로 추가 할인. 6천 원. 6천 원에 맘마미아2를 본다. 예매를 하고 자전거를 타기까지 20분 정도를 썼다. 에어컨 바람 추울 테니까 무릎 담요, 목마를 테니까 깔라만시 워터. 그리고 소중한 무선 이어폰 Capsule25. 아침 여덟 시 이십 분. 자전거, 무선 이어폰, 제이슨 므라즈, 바람, CGV, 맘마미아2, 깔라만시 한 모금.


여기쯤 아니었나? 어? 안 보인다. 의심이 시작되면 마음은 불쏘시개다. 페달을 급히 밟는다. CGV가 어디죠? 20대 아가씨는 못 들은 척한다. 내 힘으로 찾자. 지도 어플을 켜고, 이쯤? 이쯤? 한 손엔 아이폰, 곡예 운전이다. 8시 58분. 물어봐야 한다. 아무에게라도. CGV가 어디죠? 저기요. 다행히 멀지 않다. 9시 정각에 자전거를 세우고, 쇠사슬로 감고, 자물쇠로 잠근다. 뛴다. 2층. 예매했어요. 9시 맘마미아요. 그냥 스마트폰으로 입장 가능합니다. 뛴다. 3층. 3관. F열. 앉는다. 광고 중이다. 안 늦었다. 휴, 깔라만시를 탄 생수병을 꺼낸다. 무릎 담요도 꺼낸다. 아이폰은 진동인가? 영화가 시작한다. 깔라만시를 두 모금 마신다. 내 뒤의 여자는 보온병을 가져왔다. 뜨겁고, 온전한 커피가 찰랑대겠지. f열, g열. 아침부터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 둘.


영화 첫 5분을 안 놓치기 위해 나는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다. 한 손에 아이폰, 브레이크도 잘 안 드는 자전거. 차선을 바꿔가며 도로를 누볐다. 사고는 그런 때 발생한다. 하지만 꼭 놓치고 싶지 않은 5분이었다. 나는 그 5분, 깔라만시를 마신다. 시작했다. 시작했군. 늦지 않았다. 늦지 않았으니 됐어. 늦는 것 자체가 무섭다. 사막에서 공개 처형당하는 것 같다. 아예 못 본다 해도 6천 원 날리는 거다. 과장하면 나는 6천 원에 목숨을 걸었다. 숫자와 약속에만 벌벌 떨었다. 이루었을 때, 왜, 이루려 했나요? 되물어야 한다. 그냥 무서워서요. 가장 슬픈 답이다.


메릴 스트립은 나이가 들수록 곱다. 젊을 때는 오히려 날카로웠는데. 곱고, 선해졌어. 저렇게 늙어야 해.


맘마미아


2002년 런던, 소호,


뮤지컬로 두 번 봤다.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아냐, 세 번 봤나?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We will rock you는 각각 한 번씩만 봤다. 레미 제라블은 3층 구석이었다. 동전을 넣으면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자리마다 있었다. 가난한 관객들은 그걸로 무대를 찔끔찔끔 봤다. 멀리서도 무대 연출이 장관이었다. 감탄하면서 ‘잤다’. 장발장은 분명 읽었는데, 레미제라블은 다른 이야기인가? 내가 무슨 착각을 하고 있나? 식기를 훔쳐서 달아난 장발장이, 신분 세탁해서 시장이 되고, 잡히는 내용 아닌가? 뭐가 이리 웅장해? 프랑스 시민혁명 대서사시를 동화로 대충 접한 나는, 잠이 쏟아졌다. 잤다. We will rock you는 못 잤다. 스탠드 석이었다. 종일 옛 직장(유행통신) 사람들과 런던 시내를 싸돌아다니고, 일어서서 뮤지컬을 봤다. 표가 매진이어서 그랬다. 그런 정신력으로 건설 현장에서 벽돌을 날랐다면 20만 원은 벌었을 것이다. 앉았다, 일어서다를 반복하며 봤다. 언제 끝나나? 자기 돈 내고, 끝나기만을 바랐다. 흔한 비극이다.


유명한 노래야, 삼촌?

쉿!


80년대 초. 어린 마음에도 삼촌이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자신이 서양 사람이라도 된 줄 아나 봐. 웃겨. 카세트 플레이어에선 워털루란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도 아는 노래잖아. 아바 노래는 토끼 소녀, 희자매, 들고양이들이 개사해서 불렀다, 영어 노래라고, 잘난 척하는 거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 노동자로 목돈을 손에 쥔 삼촌은, 우리 집안의 멋쟁이였다. 삼촌이 사다 준 샤넬 비누는, 향이 요란해서, 미아리 우리 집이 파리가 되고, 물랑루즈가 되고 했다. 초등학교(아니 국민학교) 학생 중에 아바의 워털루를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삼촌과 같은 표정으로, 워워워워 워털루, 음음음 음음음 음음음 했다.


뮤지컬 맘마미아는 졸리지 않는 유일한 뮤지컬이었다. 모두 아는 노래였다. 대사는 못 알아들어도, 노래는 안다. 노래만 기다리면 된다. 행복하다. 마지막 앙코르, 댄싱퀸이 나온다. 콘서트 장이 된다. 모두 일어선다. 따라 부른다. 훌쩍훌쩍 눈물을 찍어내는 사람들, 아바와 함께 70년대 청춘을 보낸 이들이다. 나팔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치던 그때의 젊음들이 지금은 운다. 사우디 삼촌! 나를 보시오. 나야말로 백인 세상의 유일한(유일하기를 바란) 동양인이오. 하하하. 그때는 백인이 마냥 멋지고 잘나 보였다. 잘 생기고, 몸 좋고, 영어도 알아먹는 백인들이 귀족이었다. 그들이 손뼉 치고 웃을 때, 난 좀 더 크게 박수를 쳤다. 테스코 싸구려 재료로 하루 세 끼를 먹는 한국인은, 웨이트 로즈(좀 더 좋은 식재료를 파는 마트) 손님들과 함께인 게 그저 영광이었다.


맘마미아의 줄거리를 알게 된 건, 맘마미아 영화 덕이다. 한글 자막으로 된 친절한 맘마미아가 아니었다면 누가 아빠게? 신선하고 막장스러운 줄거리를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7년이 걸렸다. 그 사이 가난한 유학생은 남미를 다녀오고, 아시아를 다녀왔다. 2002년 어둑한 소호의 극장에서 흠뻑 젖은 나는, 싸구려 이탈리아 뷔페집으로 향했다. 1파운드(당시 2천 원) 피자도 있지만, 좀 더 좋은 걸 먹어야지.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먹겠다. 피자며, 파스타며 하나같이 쓰레기다. 쓰레기 맛이 안 나는 쓰레기들. 그래도 양껏 먹을 수 있다. 그거면 된다. 뼈로 바람이 드나드는 런던의 겨울은, 마르고, 두렵기만 한 동양인 남자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식탐은 외로움이다. 먹어도, 먹어도 더 먹을 수 있다. 늘 본전 이상을 먹어치웠다. 2002년 런던에서 나는 푸드 파이터였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쓰고, 고치고, 그래도 오탈자가 나오는 글을 씁니다. 불완전한 사람끼리, 공감하면서 살아요. 세상의 온기가 어디에서 나오겠나요? 우리가 내뿜는 거니까요. 우리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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