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게으른 글쟁이도 책 내고 삽니다만

by 박민우

(2018년 8월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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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내역 커피랑 도서관, 여전히 잘 되나요? 궁금,궁금)


커다란 창을 벽으로, 아니 책장으로 활용했다. 책을 한 권씩, 한 권씩 눕혀 놨다. 빛은 책을 넘고 부분 부분 들어온다. 완전함보다 찬란한 불완전함. 분당 수내역 커피랑 도서관(이름이 커피랑 도서관이다)에 들어서면서, 차분하게 감탄했다. 네이버로 검색하고 온 거지만, 이토록 참한 분위기는 뜻밖이다. 음악소리마저 참했다. 들릴 듯, 말 듯. 박민우, 너! 여기서 소설 한 권 탈고해라. 내가 널 이리로 불렀다. 신의 계시, 혹은 압박. 과감하게 한 달권을 끊는다. 종일 권이 11,000원이다. 매일 오겠다.


8박 9일 인천. 인하대 놀이가 끝났다. 다시 가야지. 기지개를 켠다. 커피랑 도서관 안 가고 집 앞 이디야(Ediya)로 향했다. 수내역까지 차비, 밥값, 커피 값, 뷔페 애슐리 값, 컵떡볶이 값. 돈을 탕진한다. 돈이야 쓸 수 있지, 나는 성공한 작가니까. 반포동 래미안 실소유주니까(꺄, 작가님 성공하셨군요. 이런 독자는 정기구독 금지). 그렇게 퍼먹고 도서관에 돌아오면 일단 엎드린다. 엎드리면 양쪽 갈비뼈가 공작새처럼 벌어지고, 짓눌린 위장이 공간을 확보한다. 횡격막의 방해 없이, 트림을 할 수 있다. 피식피식 어여쁜 트림을 하고, 개운해져서는 잔다. 턱 쪽에 힘을 빼지 않는다. 침 흘리는 건 안 된다. 나를 알아보고 몰카를 찍는 스토커 독자에게, 관리된 모습을 보여주고프다. 과식, 엎드림, 컵볶이, 어묵 국물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냥 이디야를 가겠다.


본전을 뽑겠다는 마음으로 목돈을 낸다. 목돈을 낸 이후엔 짐이 된다. 가기 싫어진다. 이런 어리광은, 약속에 대한 반감일까? 그냥 게으름일까? 내 안의 약속은 늘 감옥을 만든다. 스스로를 가두고 고시에 붙는 애들은 어떤 애들인 걸까? 나는 늘 탈옥한다. 감옥이 좋으면, 그게 비정상이지. 내 돈 주고 감옥을 분양받는 건? 그래, 내가 등신이다.


이디야의 커피 값 2,800원을 아낄 순 없을까? 아파트 단지 안에 청소년 수련관이 있다. 도서관도 있고, 헬스장도 있다. 성인도 이용 가능하다. 나야 청소년과 외모적으로 구별이 안 가서, 교복만 입으면 맥주 한 병도 못 산다. 그 도서관 옆에 카페가 있다. 카페? 일반적인 카페는 아니다. 커피나 음료를 팔지는 않는다. 누구나 와서 공부하고, 수다 떨 수 있는 공간이다. 전자레인지도 있다. 창 쪽으로 툭 터진 한 방향 자리도 있다. 콘센트도 여러 개다. 2,800원을 아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다. 우주가 대동단결, 박민우 글 써라, 박민우 책 내라. 한다. 알겠다. 알겠다. 게으른 박민우 때문에 우주가 고생이 많다.


별실에서 커피 강의 중이다. 들린다. 콜롬비아, 브라질, 수프리모, 엑셀소, 커피 기름이 풍부한 커피. 잠깐씩 들리는 소리에도 귀를 쫑긋. 아침부터 커피를 배우겠다고 모인 사람들이다. 아침 시간을 쪼개서 커피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니. 구멍 난 양말과 백열등, 고드름이 어는 방, 볼록한 천장, 천장을 뛰어다니는 쥐떼를 기억한다. 푸세식 화장실의 나프탈렌 냄새를 기억한다. 2018년, 주방에서 초시계를 들고 커피를 볶는 아빠가, 우리 단지에도 산다. 한국은 선진국이다. 오늘부로 확실해졌다.


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새참 먹는 기분이다. 어머니 밥 잘 먹었습니다. 열심히 글 써서, 큰돈 벌어올게요. 어머니의 끝내주는 생강차를 보온병에 가득 담았다. 뉴욕 갈 때까지 따로 돈 들일은 없겠어. 이제 내 일터는 경기도 광주 청소년 수련관.


응?


아침과는 달라진 풍경이다. 거의 모든 테이블에 아이들과 어머니와 어머니들이다. 아이들 절반은 뛰어다닌다. 모두 내 고막에다 대고 조잘댄다. 소리에 밀려서 휘청한다. 말의 소용돌이, 거대한 회오리.


무선 이어폰 캡슐 25는 반품하기로 한다.


응? 갑자기 왜? 소음에 놀라서 공황장애라도 온 거야? 선 없는 해방감이라며? 건전한 오르가슴이라며? 통증이 생겼다. 어제저녁부터 귀가 욱신거렸다. 좋아서, 신나서 종일 음악을 들었다. 밤에 귓구멍 깊숙이 통증이 밀려왔다. 내일이면 나아지겠지. 아침에도 귀는 욱신욱신. 좀 쉬어줘야겠어. 하루 듣고 쉬어? 음악을 격일제로 듣게? 그러지 뭐. 가지고는 있어야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이거 꽂고 조깅하기로 했잖아. 그때 잠깐 폼만 잡아도 돈값한 거야. 눈 다래끼도 한 달 걸렸다. 약을 안 먹고, 병원 안 가고 버텼다. 그래도 한 달은 너무했다. 어금니 통증은 괜찮아지나 싶더니, 어제부로 또 시큰. 며칠 전부터 종일 재채기다. 환절기 숨었던 곰팡이들이 창궐하는지 콧물이 줄줄줄이다. 두피 가려움도 괜찮다가, 안 괜찮다가.


분노하게 된다. 나의 노화에.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겠어. 뭐든 해봐야지.


전략이 필요하다. 갈수록 더 빈번해질 것이다. 더 큰 좌절이 올 것이다. 좌절은 복구될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안다. 좌절만큼이나 위태로운 건 복구다. 회복이다. 복구는 마약이다. 치명적으로 망가지고, 가까스로 회복하고, 더 치명적으로, 더 치명적으로 치닫다가


죽는다.


죽기 전까진 수많은 회복이다. 영원을 믿지 않고, 영원한 절망도 믿지 않는다. 시간을 잘게 썰어서, 작은 목표로 채운다. 쉬운 것부터 한다. 지금 가장 쉬운 건 캡슐 25를 반품하는 것. 4일 사용 후 반품은 무료. 아슬아슬하게, 하지만 돈 한 푼 안 내고, 선 없는 자유를 누렸다. 누려봤더니, 알겠더라. 자유롭지만, 예상한 범위를 넘지 않은 자유였고, 예상 밖의 불편함을 압도하지 못했다. 9월에 애플에서 에어팟2가 나와도, 나는 평화로울 것이다.


다시 자전거를 탄다. 아이들과 어머니의 왕성한 소음이 아픈 고막에 남아있다. 이번엔 경기도 광주 교육 도서관을 찾는다. 이런 도서관, 저런 도서관. 이토록 많은 도서관이 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데, 왜 나는 부자가 아닌 걸까? 가난뱅이 작가 특유의 간헐적 발작이다. 교육 도서관 2층엔 무려 노트북 테이블이 있다. 콘센트가 있고, 의자가 있다.


떡볶이 집 셋, 봉구스 밥 버거, 쌀 핫도그, 쌀 크로켓, 라멘 집을 차례로 지나쳤다. 거기다가, 거기다가 초대형 빵집까지 봤다. 비참하고, 개성 없는 번화가라고 무시했다. 반성한다. 저 초대형 빵집은, 경기도 광주를 송도로, 판교로, 동부 이촌동으로 보이게 한다. 아침에 크루아상 하나 사서, 보온병 생강차, 아니, 생강차 말고, 까만 커피와 함께 먹겠다. 완벽한 아침, 브렉퍼스트 천오백 원. 뉴욕이 이보다 좋을 리 없다. 완전 소름 돋았다. 나도 약간 더 잘생겨졌다. 실시간으로 보여줄 수도 없고, 참!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절대 대단하지 않은 글을 씁니다. 일상의 자잘한 순간들이 쌓여서, 우리의 일생이 될 테니까요. 사소할수록, 따뜻합니다. 동의하시나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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