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라주는 최선이 좋아요
(2018년 8월의 기록입니다)
자전거 입장 불가. 태풍이 진짜 오려나 봐. 공원 가는 길을 노란 줄로 막아 놨다. 오늘은 운동 없다. 집으로 간다. 바람이 약간 센 정도. 공포를 느끼려면, 이 정도로는 어림없지. 2004년 쓰나미로 동남아시아에서 25만 명이 사망했다. 사람들은 멀리서 밀려드는 해일을 넋 놓고 바라봤다고 한다. 속도감이 안 느껴지는 부드러움. 빵 반죽이 부풀어 오르듯, 상냥한 기운. 바닷물이 턱밑까지 달려드니까, 우왕좌왕.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미 늦은 비명. 부드러운 경고. 쟤도 태평, 얘도 태평. 나만 혼비백산은 이미 불가능. 지혜롭기가 이토록 어렵다.
쓰나미로 죽은 사람들이 바다에 둥둥 떠다닐 때, 가난한 미얀마 사람들이 시체의 옷을 벗기고, 반지를 빼고, 시계를 풀고, 주머니를 털었다. 시체가 물에 불어 옷이 안 벗겨졌다. 목걸이가 안 빠졌다. 어떻게든 벗겨서 입었다. 어떻게든 목걸이를 뜯어냈다. 시체가 훼손되는 건 당연. 산 사람은 살아야지. 짐승과 사람. 애초부터 구분이 억지. 인간은 짐승. 짐승 중에서도 악랄한 쪽.
버스 애플리케이션을 켠다. 서울 가는 32번 버스는 8분 후 도착. 충분해. 엘리베이터가 9층에서 선다. 12층에서 선다. 15층까지 올라오는 데 이 분은 족히 까먹었다. 1층까지 내려오니 5분 남았다. 아파트 단지 맨 안쪽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뛴다. 버스 도착시간 2분 후. 뭐? 버스가 질주하는 모양이야. 배차 시간 20분이다. 이 버스를 놓치면 20분 후에 온다. 20분 기다리기 싫다. 지금 버스가 내 버스. 다음 버스는 싫다. 100m 남았다. 헉헉, 더는 못 뛰겠어. 쥐가 나려고 한다. 도착 시간 20분. 2분 아니고, 20분?
이미 떠났다는 얘기. 구형 노트북, 물 한 병, 김밥 두 줄 배낭이 함께 씰룩, 씰룩. 배낭 앞으로 메고, 전력질주했다. 할 만큼 했다. 혹시 모르지. 버스는 오고 있는 건지도. 기계를 다 믿어? 어설픈 고철 덩어리. 의심하라. 다리를 질질 끈다. 버스가 도착했어요. 버스가 떠납니다. 출발, 도착하는 버스가 신호를 정류장으로 쏜다. 버스 도착 시간 안내 원리다. 10초 이상 오차가 가능하다. 뛰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니다. 빠른 걸음. 질질질. 의욕상실 허벅지로, 기듯이 간다. 그리스의 전령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40km를 달린다. 그리스가 이겼습니다. 승전보를 알린다. 마라톤의 전설. 내 버스 32번. 꼭 타고 싶습니다. 온다. 오는 게 보인다. 설마, 버스? 내 버스?
아이폰이 너 이미 떠났다고 이간질시켰어. 우리 못 만날 뻔했어.
20분을 벌었다. 기계를 의심했더니, 인간이 승리했다. 박민우의 전설. 에너지 소모가 심했는지, 머리를 창에 튕기며 잤다. 끝내 버스를 쟁취한, 뭐든 열심인 남자는 배스킨라빈스 합정역점으로 들어간다. 피스타치오 아몬드 주세요. 한 가지 맛이라도, 푸짐하게. 싱글레귤러 말고 싱글 킹. 3,500원. 싱글레귤러 2,800원에 500원만 추가하면 이달의 맛(berry sweet violet)이 하나 더. 3,500원을 핥고 나서야 봤다. 어쩌면 이리도 경솔하니? 프로모션 훑는 건 기본 아닌가? 3,300원에 두 가지 맛을 눈앞에서 놓쳤다. 후회는 무슨, 닥치고 핥아. 네, 그럼 핥겠습니다. 더럽게 맛은 있습니다. 프랄린엔크림이 없어졌다. 내가 그토록 애정했건만. 뉴욕 가면 있을까? 뉴욕에선 프로모션 꼼꼼히 챙기기.
9월 18일 아침 비행기로 뉴욕 간다. 오늘 신한 카드로 지불 완료했다. 뉴욕 여행기를 쓰시려고요? 안 어울려요. 뉴욕 책 이미 많잖아요. 걱정하는 말들을 들었다. 가고 싶은 곳은 간다. 이것만 생각한다. 그런 걱정을 들으니, 더 좋은 책을 내고 싶어진다. 나의 뉴욕 책이 실패한다면, 뉴욕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못 써서다. 1만 시간 동안의 미아리(내가 태어난 곳)를 쓴다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보다 재미없을까? 그곳에 원룸을 얻고, 1년 내내 작고, 작은 이야기만 모으면, 지루할까? 작고, 작은 시간을 핀셋으로 헤집고, 솎아보기. 대단하지 않고, 격렬하지 않기. 먼지처럼 떠다니는 1분 1초. 그것들을 다이슨 청소기로 빨아들여서, 하나씩, 하나씩 걸러본다. 먼지만이 아니구나. 아름답고자 했던 것들. 알아봐 주기만을 기다렸던 것들. 그것들을 모은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끄덕끄덕. 뉴욕 가고 싶다. ‘하고 싶다. 가고 싶다’. 이런 마음이 내게 있다. '싶다'가 있다. 큰 복임을 알고 있다. 뉴욕의 바에서 재즈를 듣고 싶다. 칵테일을 한 잔 홀짝, 두 잔 홀짝. 세 잔은 안 돼. 비싸!
화요일 열 시까지 숙제를 내세요. 다산북살롱 여행학교. 부암동에 다녀온 이야기를 화요일 밤 열 시까지 제출해야 한다. 함께 쓰고, 함께 보기. 우리의 여행 수업은 ‘함께’다. 열 시를 아슬아슬하게 지킨 사람. 강의 직전에 보내는 사람. 그 마음 알지. 끝의 끝까지 다듬어서, 조금이라도 나은 글을 내고 싶은 마음. 여행을 일로 하고 싶어서, 글로 먹고살고 싶어서, 잘 생긴 박민우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마지막 1분까지 쓰는 마음. 나는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그들은 내게 잘 보이고 싶다. 여행하며 먹고 살기! 도둑 심보, 누구나 원하는 삶. 그래서 더 아득한 욕심. 다르게 살기로 했으니, 우리 제대로 질러 봅시다. 우리가 잘 돼야, 세상이 날라리가 됩니다. 몸에 홀씨를 묻히고, 지구별 구석구석 민들레를 피워 봅시다.
강의가 끝나고 지하철역으로 달려간다. 어머니의 김밥, 마지막 한 줄을 꺼낸다. 세 조각 먹었다. 지하철이 온다. 다 먹고 탈까? 지금 타도 밤 열두 시 넘어서 도착. 일부러 경로석에 앉는다. 경로석은 텅텅. 가방으로 김밥을 가리고, 하나씩, 하나씩. 목이 왜 막혀? 허기지면 침이 콸콸. 일기는 절반 정도 써 놨다. 나머지 절반을 아이폰으로 쓴다. 깨알 화면에 손가락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스위스 시계 조립공의 정밀함을, 손끝으로 느낀다. 오늘의 삶, 오늘의 순간들. 딱딱딱. 윗니, 아랫니를 딱딱딱 부딪힌다. 고치법이라고 한다. 잇몸이 튼튼해지는 입 체조. 떨리는 손으로 김밥 한 조각, 아이폰으로 한 글자, 입 체조 딱딱딱, 졸리다. 이마에 열꽃도 살짝. 부슬비를 맞았다. 비가 폭우가 되어 퍼붓지 말기를. 무사히 집에 가서, 오늘의 일기를 잘 마무리하기를. 편한 맘으로 잠들기를. 당장은 자고 싶고, 쓰기 싫다. 그 마음을 지나서, 자포자기의 평화로움에 닿아야 한다. 평화로움 안에서 더 솔직해진 내가 한 글자씩 써 내려가야 한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추하지만, 김밥 냄새 민폐 덩어리지만, 나는 아름답다. 약간 찡해졌어. 눈물 나오면, 그땐 진짜 목이 막힌다. 눈물 금지, 감성 팔이 금지. 문단 사이사이 반짝반짝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러고 싶어서다. 반짝반짝 빛나고, 반짝반짝 흔들리고, 결국엔 반짝반짝 예쁜 별. 지금 내 모습은, 아주 멀리서, 아주 먼 행성에서 지켜보면 기가 막힌 별이다. 이토록 발버둥 치면, 찌꺼기가 안 남는다. 완전연소.
반짝반짝.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이 곧 말이죠. 저는 원래 떠벌이여서요. 이렇게라도 해야 살아요. 주절주절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제게 위로가 되어주셨으니, 저도 작은 위로가 될게요.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